[거슬러보면] 민주노총 출범 30주년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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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정용] 1995년 11월 12일 전국노동자대회.
민주노총 출범 30주년에 거는 기대
이황미(노동자역사 한내 기획국장)
1995년 11월 11일 민주노총이 출범했다. 출범 당시 민주노총은 노동조합법상 복수노조 금지 조항에 따라 법외노조 상태였음에도 생산직과 사무직, 민간과 공공부문을 망라해 861개 노조, 조합원 418,154명을 포괄했다.
노동자대투쟁 이어 민주노조 총집결을 향한 여정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어용노조 민주화, 신규노조 건설, 한국노총 탈퇴 등을 통해 확대와 발전을 거듭했다. 그렇게 권력과 자본에 기생한 한국노총이 주도해 오던 이전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운동을 형성했다.
노동자들은 개별 단위노조로는 정권과 자본의 탄압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마산·창원지역을 필두로 지역노조협의회(지노협)를 결성하는 등 조직적 대응을 시작했다. 마침내 1990년 1월 22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를 결성했다. 전노협은 전국 14개 지노협과 2개 업종협 소속 총 602개 노조, 20여만 조합원을 포괄했다. 사무전문직 민주노조들도 전노협 출범과 KBS 파업을 계기로 연대의 수준을 한 단계 진전시켜 1991년 5월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를 결성했다. 13개 업종연맹·협의회 소속 690개 노조 173,000명을 포괄한 업종회의 역시 민주노조의 전국조직건설 주체로 나섰다.
한국의 ILO 가입에 즈음하여 전노협과 업종회의는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전국노운협), 전국노동단체연합(전국노련)과 공동으로 1991년 10월 ‘ILO 기본조약 비준과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ILO공대위)’를 구성했다. ILO공대위는 국제적 수준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공동 실천과 조직적 단결을 모색했다. 노동법 개정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대응뿐만 아니라 총액임금제와 노·경총 임금 합의에 반대하며 민주노조 총단결 투쟁을 확대 강화해 나갔다.
재벌그룹 대기업노조들도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현총련)과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대노협)를 결성해 전국조직 건설의 주체로 참가했다. 1992년 10월 ILO공대위는 ‘1992년 전국노동자대회 조직위원회’를 구성, 현총련과 대노협까지 포괄해 전국노동자대회를 치렀다. 이러한 단결의 성과를 계승해 1993년 6월 1일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대노협 등 민주노조 진영이 결집한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를 결성했다.
전국조직 건설 완료하며 대중운동의 시대로
전노대는 노·경총 임금합의 반대 투쟁, 한국노총 탈퇴 투쟁, 노동법 개정 투쟁 등 전국적 공동투쟁을 전개했다. 민주노조 진영의 공동투쟁 성과는 곧바로 민주노조 총단결의 구심체인 전국 중앙조직 건설 논의로 이어졌다. 1994년 여름 단위노조 대표자 수련대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해 9월에 민주노총건설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1994년 11월 13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건설 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민주노총 준비위원회는 1994년 12월 여러 차례의 대표자회의를 거쳐 1995년 상반기에 임금인상 투쟁과 사회개혁 투쟁을 결합해 전개했다. 상반기 투쟁이 마무리된 7월부터 민주노총의 강령․규약 초안을 작성하고 단위노조 대표자 수련대회에서 본격적으로 토론을 시작, 10월 대표자회의에서 강령․규약(안)을 확정했다.
1995년 11월 11일 대의원 366명 중 326명이 참석한 창립대의원대회(연세대)에서 7대 강령과 20대 기본과제, 규약을 의결하고 초대 임원을 선출했다. 다음 날 전국노동자대회(여의도)에서 자주적·민주적 노동조합의 전국 중앙조직으로서 민주노총이 건설됐음을 대중적으로 선포했다.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노동자·학생·시민 3만여 명은 1,200만 노동자와 함께 역사적인 민주노총 출범을 열렬히 환호했다.
이렇게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전노협, 업종회의, 재벌그룹별 노조연대체로 나뉘어 있던 민주노조들이 하나가 되어 드디어 내셔널센터를 건설했다. 광주민중항쟁 이후 시작한 한국노동운동의 조직적 과제인 민주적·자주적인 노동조합의 전국조직 건설이 완성된 것이었다. 이로써 한국 노동운동은 대중운동의 시대로 비약하게 됐다.
120만 조합원과 함께 전진할 방향
민주노총의 선언·강령·기본과제는 광주민중항쟁 이후 자본과 정권, 그리고 어용노총에 맞선 치열한 투쟁 과정에서 한국노동운동이 발전시켜 온 자주·민주·통일 이념을 계승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민주노총 출범은 변혁을 향해 걸어온 한국노동운동의 대장정에서 변곡점이기도 했다.
민주노총 출범 전까지 전노협으로 대표되는 한국노동운동은 ‘노동해방’과 ‘평등사회’를 기치로 전진해 왔다. 전노협은 노동자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평등사회’를 지향했다. 이에 비해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 향상으로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 보장되는 ‘민주사회’를 지향했다.
민주노총은 출범과 함께 두 가지 운동 방향을 세웠는데, 바로 ‘사회개혁운동’과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다. 1996년 2월 13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노사관계 민주화와 사회개혁을 위한 제안’을 특별 결의로 채택했다. 노동운동의 지향은 ‘사회변혁’에서 ‘사회개혁’으로 대체됐다. 또 같은 회의에서 민주노총은 사업방침을 결정하면서 “전체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노총”으로 자리 잡아야 함을 강조했다. ‘계급적 노동운동’과 대립하는 기조였다.
민주노총 출범 당시 이런 기조 변화에 우려가 제기됐다. 민주노총의 이념과 운동노선에서 변혁성이 약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 변혁적인 노동자정당건설 운동 실패, 시민운동의 확대, 전노협 약화 등으로 나타난 전체 변혁운동노선의 후퇴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 지난 30년을 지나오며 주요 고비마다 우려는 현실화했다. 노사정위원회 정리해고 합의를 시작으로 사회적합의주의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총파업을 철회하는 등 반자본 투쟁 전선은 약화됐다. 비정규투쟁에 대한 정규직의 배반과 기업별 이익에 안주한 ‘무늬만 산별노조’ 건설로 계급적 단결은 더 취약해졌다. 야권연대에 안주해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실종될 위기에 처했다. 민주노총이 출범할 때 우려됐던 것보다 훨씬 더 우경화해온 지난 30년이었다.
그렇게 30년이 지났다. 민주노총 홈페이지에는 민주노총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와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조직현황’에 따르면 2025년 현재(2023년 6월 30일 기준) 조합원 수는 120만 명이라고 한다. 출범해서 조합원 수가 3배 가까이 늘어나는 30년 동안 민주노총은 어떤 가치를 추구해 왔는가. 30주년, 민주노총이 전진하고자 하는 방향을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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