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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 ‘기후재난 생존휴가’가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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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70회 작성일 26-07-2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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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동과 세계]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가 1일 폭염감시단을 발족했다.

 


‘기후재난 생존휴가’가 필요한 때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산업혁명과 함께 휴식, 휴가 개념이 바뀌었다. 농번기 농한기처럼 자연의 이치에 맡기던 휴가 대신 공장 생산 흐름에 따르는 휴가가 자리 잡았다. 노동과 휴식의 확실한 구분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휴가를 둘러싼 투쟁이 격화되었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해 노동시간 줄이기 투쟁을 전개했고 8시간 노동, 나아가 유급휴가를 쟁취했다.

1936년 프랑스에서 법으로 유급휴가를 보장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어 날씨가 좋은 여름에 휴가를 즐기는 문화가 등장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곳곳으로 확산했다.

 

노동 효율과 에너지절약을 위해 시작된 한국 노동자의 여름휴가


1960년대 한국의 섬유공장은 24시간 돌아갔고 노동자들은 112시간 노동했다. 근로기준법에는 18시간, 4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정하고 당사자 합의로 60시간 한도로 근로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던 때였다. 노동보호 입법의 취지는 노동시간 제한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선진국에서 한국의 노동력을 수입하겠다는 보도나 신문광고가 날 때마다 많은 이들의 가슴이 설렐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짧은 노동시간, 좋은 후생시설, 여름휴가 보장은 노동자를 혹하게 하는 요소였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7, 8월이면 구두닦이들도 휴가 중이라는 팻말을 걸어놓고 피서지로 간다바캉스를 소개하고 있던 터라 더 그랬다.

 

1970년대 근로기준법 제48조는 “1년 개근한 근로자에 대하여 8, 9할 이상 출근한 자에 대하여는 3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2년 이상 계속 근로한 근로자에 대하여는 1년을 초과하는 계속근로연수 1년에 대하여 전항의 휴가에 1일을 가산한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부 국영기업과 금융업계를 제외하면 법적으로 보장된 유급휴가를 누릴 수 있는 노동자는 없었다.

 

노동청은 하계휴가 지침을 매년 냈고 해를 거듭할수록 강화했다. 휴가를 주지 않거나 휴가를 무급으로 하거나 휴가 대신 돈으로 지급하는 것을 단속한다고 지침을 내렸다. “여름철 30도 이상의 무더위가 계속되면 초조, 권태, 주의력감퇴 등 지나친 피로를 일으켜 생산성이 오히려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산업재해가 연중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지적하며 사업주의 각성을 촉구했다(경향신문 1977.6.28). 정밀근로감독까지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기업주들은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


여름휴가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다. 1985년부터는 여름 동시 휴가 기업이 확 늘어났다. “정부가 에너지절약 시책의 일환으로 715일부터 831일까지 회사 전체가 쉬는 경우 기본요금에서 30%까지 할인해주는 전력요금 할인제를 실시함에 따른 것이다. 이 해 전국 938개 업체, 서울 112개 업체가 여름휴가를 실시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만여 명, 조선공사부산조선소 5천여 명이 일제히 휴가를 갔다. 태평양화학, 대한중기, 아남산업, 원풍모방 등에서도 동시 휴가가 실시됐다. 구로공단에서는 385개 업체 중 70% 이상이 725일부터 83일까지 휴업했다(매일경제 1985.7.26). ‘라인을 세우고 일제히 휴업하면서 ‘78여름휴가가 퍼져갔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단체협약으로 유급휴가 확보


19877, 8, 9월 노동자대투쟁 당시 노동자들은 어용노조 퇴진, 임금인상을 주 요구로 외쳤다. 여기에 여름휴가비로 급료의 100%를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사업장이 많았다. 노동자에게 온전한 휴가는 업무로부터 자유롭고 임금이 보전되는 휴가였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노조는 198711월 임단협을 시작해 다음 해 2월 조인했는데, 휴식과 휴가가 쟁점이었다. 심야 휴게시간과 연장 휴게시간을 10분에서 15분으로 연장키로 했다. 휴일은 법정공휴일, 노조 창립일, 하기휴가 4일을 유급휴가로 합의했다.

 

서울지하철노조는 198710월 특별휴가 1, 1988년 말 특별휴가 2일을 쟁취했다. “입사 이래 처음으로 휴가라는 것을 받은 노동자들은 이 귀한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서울지하철노동조합 30년사, 한내, 2017) 이후 노조는 인력 확충을 통한 휴가 확보, 하계 휴양지 확보 등으로 확장해갔다.

 

모든 노동자에게 생존을 위한 여름휴가를


노동현장에 여름휴가는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생계를 위협받지 않는 휴가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사회보험의 산재휴업 및 휴업급여, 출산전후급여 정도를 쉴 수 있는 권리로 보장받고 있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누릴 수 있는 휴가는 휴가가 아니다. 기온이 체온보다 높고 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져도 일해야 하는 노동자가 그래서 있다. 밭에서 일하다 쓰러지고 배달하다 목숨을 위협받아도 쉴 수 없는 노동자가 그래서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주체로 단체교섭, 사회적 협약을 통해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왔다. 기후재난 시기 모든 노동자에게 국가 책임 아래 생존을 위한 재난 휴가를 보장하라 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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