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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와글] ‘걷고보니 역사였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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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70회 작성일 25-08-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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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은 (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양평지회)

 


최근 '사람 책'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한 사람의 삶이 한 권의 책처럼 구성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오히려 '책 사람'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책 속에 담긴 개인의 생애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사회적 기억으로 기능하며 역사로 전승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걷고 보니 역사였네는 일상의 기록이 어떻게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를 성찰하게 하며, 기록 행위 자체가 기억을 잇는 실천임을 일깨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내가 이름만 들어본, 그러나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던 인물인 양규헌 전 전노협 위원장이다. 그는 위대한 투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책은 그의 고민, 미숙함, 가족에 대한 미안함 등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영웅화가 아닌 인간적 서사로 구성된 이 회고록은 노동운동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투쟁과 성취만이 아니라 실패와 흔들림까지 서술함으로써, 노동운동의 진면목을 전한다.

 

책을 읽는 동안 전태일 열사 이후 구로공단 등지에서 이어졌던 노동운동의 궤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노동조합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전노협과 1980~9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는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졌으나, 이 책은 그러한 역사적 사건들이 실제로는 불과 몇십 년 전, 바로 우리 곁에서 벌어졌던 일임을 상기시킨다. 역사가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 책이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다.

 

양규헌의 서술은 투쟁 현장의 긴박감과 개인의 내면을 동시에 담고 있다. 중간중간에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더욱 반가움과 현실성이 느껴져서 회고록의 참 맛을 느끼게 해준다. 전노협 깃발 앞에서의 눈물, 감옥에서의 소소한 장난, 동지들의 죽음을 마주한 비통함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며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노동자 자기 역사 쓰기"라는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고통스러운 기억까지 외면하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 쓰기라는 인식은 노동운동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노동조합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요구를 받아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활동을 통해 요구와 분노를 조직하여 투쟁으로 관철하는 조직"이라는 구절은 노동조합의 실천적 의미를 명확히 한다. 이는 조합의 역할이 단순한 대리기구가 아님을 환기하며, 현장 중심의 실천이 노동운동의 생명력임을 강조한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은 제도적 틀 안에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지켜내야 할 가치임을 다시금 각인시킨다.

 

또한 이 책은 '역사의 현재성'을 역설한다. 전노협은 1995년 공식 해산되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오늘날 노동운동 현장에서 소환된다. 이는 단순한 향수가 아닌, 당시의 기백과 실천이 지금도 필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해산된 조직이 여전히 정신적 자산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현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걷고 보니 역사였네는 한 개인의 자전적 서술을 넘어, 노동운동이라는 집합적 역사 속에서 개인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오늘 우리가 걷는 길 또한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역사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삶과 실천을 기록하고 반추하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이 책은 후대에 남길 '노동자 자기 역사'의 방향을 묻는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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