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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의 독서] 우리가 우리를 조직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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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178회 작성일 25-11-1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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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조직하는 방법


양돌규(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1.

노동운동사와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눈물 나는 투쟁기가 참 많다. 한 사업장의 투쟁기든 산별노조사이든 갈피마다 사연 없는 노조가 없고 노조가 맞닥뜨린 고비를 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이 펼쳐진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책을 읽으라고 던져 준다면 글쎄, 선뜻 노동조합의 길로 들어서기가 저어될 지도 모르겠다. 높은 수준의 결의는 좀 이따가 해도 괜찮다. 그보다는 초심자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서 구체적 방법을 일러주는 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책이 지금까지는 마땅하게 없었다. 딱 마침 나온 책이 바로 <퇴사 대신 노조 만들기>(송영수, 신지은 지음, 회화나무, 2025)이다. 


물론 옛날에는 이런 ‘구체적 실무’를 알려주는 책들이 많았다. 이 책에서 송영수의 서문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는데, 그 연유에 대한 설명도 동감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석탑의 <노동법 해설> 말고도 수십 종의 책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튼 인용해보자.


“1987년 789월 노동자대투쟁 직전에는 석탑출판사의 <노동법 해설>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노동조합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다. 그 바람을 타고 노동조합 관련 실무 서식,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과 조직 활동 등 노동조합 활동가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지만, 지금은 모두 절판되어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교섭과 같은 실무가 노조 상근자나 전문가에게 맡겨진 지금은 보통의 노동자가 접하기 힘든 정보가 되어버렸다.” (14~15쪽)


그래서 이 책을 구성하는 1, 2부 중에서 1부가 그야말로 노동조합 ‘실무의 ABC’를 압축했다. 낫 놓고 기역자를 배워둬야 가나다라를 할 수 있다. 1부는 딱딱한 설명보다 신지은 LG헬로비전 지부장이 첫 노조와 두 번째 노조를 만들었던 경험이 바탕이 되어 풀어가기 때문에 재밌기도 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1부의 주된 내용은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하는 방법 조합원을 교육하고 회의 진행하는 방법 교섭을 준비하는 방법 교섭 결렬시 조정신청과 쟁의행위 개시 절차와 방법 집회 신고와 진행 교섭 타결시 유의 사항 등처럼 그야말로 아주 기초적인 ‘야전 교본'이면서 경험 속에 나온 지혜가 담겨 있다. 딱딱한 실무서는 아니다. 이런 내용이 있다. 


“몇 차례 노조를 만들고 해산하는 걸 반복하는 동안 나는 회사에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었다…… 요주의 인물이 된다는 것은 감시와 미행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회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파업 중엔 미행이 일상이었고, 그때의 경험 덕에 나는 근태를 병적으로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늘 있는 지각도 나에게는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절대 지각을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도 칼같이 지켰고, 외근 중에 개인적인 일 같은 것도 보지 않았다.” (47쪽)


이런 내용은 딱딱하고 규범적인 <간부활동론> 같은 책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 가는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것 같다. 이 책에는 이처럼 구체적 경험들이 많이 담겨 있다.


2부는 주로 송영수 동지가 일반노조 활동을 하며 만들고 활용해 다듬어 왔던 교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이 교안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노동운동의 혁신’이고 그 혁신의 내용은 ‘전노협 정신의 계승’이며 전노협 정신이란 노동운동의 기치를 개혁에서 다시 변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2부의 내용은 노동조합 이해하기 노동자의 철학 한국 사회의 현실과 자본주의 노동법의 원리와 체계 노동조합 활동과 노동운동 노동조합 조직활동론 우리가 바라는 세상 등의 내용들이다.



2.

세상이 바뀌었으니 노조를 조직하는 방식도 물론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저자들은 산별노조가 주된 조직 형태로 자리 잡고 나니 노조가 간부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관료화되고, 조합원이 수동적으로 됐다는 문제 제기를 한다. 어쨌거나 조합원들이 노조 운영의 실제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바뀐 것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노조 설립과 관련한 것도 그렇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옛날엔 사측이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사람을 납치, 감금 하기도 했고 의문의 교통사고가 난 적도 있다. 다른 역사서를 들쳐보면 그래서 여관방에 모여 노조 창립총회를 열고 규약을 만들고서 다음날 노조 설립 신고서를 낼 때까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회의 참석자 모두 집에 못 가게 하고 같이 자면서 보안을 유지한다든가 하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 사이에 보안이 새 나가 회사가 먼저 설립 신고서를 제출해 어용노조를 결성, 선수치는 얘기도 많다.


지금은 정부24 홈페이지에서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할 관청이 어딘지 검색하면 된단다. http://www.gov.kr 게다가 요즘은 고용노동부 노동포털 http://labor.moel.go.kr 에 접속하면 온라인으로 필요 정보를 입력하고 신고서를 제출할 수 있단다. 또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같은 상급단체에 연락하면 수월하게 노조 설립이 가능하기도 하다. 



3.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 알고, 공부하고, 토론하고, 결정하고, 만들어가야 할 것들이 훨씬 많다. 그런 경험을 상급단체에서도 알려주지만 비슷한 업종, 지역, 직종에서 먼저 만들어진 노조에 연락하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도 한다. 


며칠 전 출간된 학술지 <산업노동연구>에는 IT, 게임산업에서 노조 조직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 실려 있다. 연구자들의 관심과 노조 조직가들의 관심은 좀 다르겠지만 어쨌든 IT, 게임산업 노조 조직화 확산 과정은 2018년 대표적 IT, 게임산업의 대기업에서 선발 조직화가 있었고, 2020~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중견 기업들로 확산이 있었던 시기, 그리고 2023~2024년에 중견 기업들로 지회 결성이 이어진 시기 등의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한 군데에서의 노조 결성이 다른 사업장에 영감을 주고, 또 어떤 노조 결성 이후의 성과가 다른 노조의 결성이나 성과에 영향을 주는 ‘연쇄적 확산’의 과정이 무척 인상적이고 고무적이다. 

(이 논문은 다음과 같다. 전누리, 김우식, [“우리도 노조 만들 수 있는 거였어?” : IT 게임산업 노조 조직화 확산 연구], 한국산업노동학회 학술지, <산업노동연구>, 2025년 31권 3호, 45~94쪽)



4.

IT, 게임업계 노조 조직화 과정처럼, 비슷한 노조와 먼저 경험을 가진 지회 등은 우리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 책 <퇴사 대신 노조 만들기>처럼 일종의 자습서 역시 필요하다. 노동 관련 실무 책 치고는 기대 보다 훨씬 많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만큼 노동조합 결성의 구체적 실무적 지식에 대한 수요가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역사 가운데서 ‘제3의 물결’이라 불리울 만큼 광범한 노동조합 설립의 확산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최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1의 물결은 1973~1978년으로 50만 7천 명이 조직된 시기(증가율 14.0%), 제2의 물결은 1986~1989으로 89만 6천 명이 조직된 시기(증가율 23.1%), 그리고 지금인 제3의 물결은 2017~2021년으로 조합원 수가 84만 4천 명이 조직된 시기(증가율 8.9%)이다. (다만 이 노조 조직화의 ‘제3의 물결’이 멈췄는지, 지속되고 있는지는 후속 연구를 기다려봐야 하겠다. 표면적으로는 2022~2023년에는 조직률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는 한다.) 이 제3의 물결 시기에 비정규직과 청년, 여성 노동자들의 조직이 크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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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환, [전략조직화 평가 : 활동가 면접조사를 중심으로], 민주노총 민주노동연구원,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20년 평가와 전망>, 2023, 505쪽)



5.

돌이켜보면 학생운동 청년운동 등 여러 대중운동이 부침을 겪거나 형해화되고 해체되는 2000년대 초반을 경유하고 나니 대중적 보수화의 경향도 짙어진 것 같다. 그렇다고 정당운동이 자리잡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도 노동조합 조직률이라도 높아진다 하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대중적 차원에서의 보수화를 막는 유일한 길은 조직화 말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학교와 언론이 지배적 생각을 주입하는 가운데서 그나마 대중조직의 경험과 활동이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를 낳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에서는 최근 “청년 조합원은 보수화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금속노조 조합원들 1,000여 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두고 분석한 이슈페이퍼를 냈다. 거기서 눈에 띈 대목은 한국사회 전체 시민들의 주관적 정치 성향 조사에서 20대 남성의 보수 성향 응답이 38%였던 반면, 금속노조 20대 이하 조합원 중 보수 성향은 23%였다. 또한 금속노조 조합원 안에서도 간부 경험이 있는 집단과 없는 집단은 모든 조사 항목에서 뚜렷한 인식 차이를 보여주는데, 이는 노조 활동과 교육, 투쟁의 경험이 조합원의 의식을 형성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김우식, [청년 조합원은 보수화되었는가? 2025 금속노조 청년 조합원 정치의식 설문조사 결과], 전국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e-금속이슈, 2025년 10월호)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면, 그게 바로 지금 같은 때가 아닐까 싶다. 노동자의 방패이자 조직적 무기의 하나인 노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는 방법과 관련한 ABC를 배울 수 있는 책은 비단 이 책 <퇴사 대신 노조 만들기>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 고민을 시작할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책으로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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