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오늘] 백년 동안의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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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원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방사능 정도야
인류의 가장 끔찍한 기억 중 하나인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알린 것이 무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이었음에도, 한국에서는 원자력이나 방사능이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은 듯하다. 도시를 잿더미로 만든 위력을 가진 것이었지만,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인류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은 것일까?
1954년 12월에는 방사능 보도가 있었다. 김장용 무, 배추에서 방사능이 발견되었다는 기사였는데, 초점은 미국에서 많이 발생하는 폐암 환자가 방사능의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과 방사능에 노출된 생선을 먹지 못하도록 판매를 금지했다는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는 정도였다. (경향신문 1954.12.3.)
1960년대 들어서는 먹을거리를 조심해야 한다는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다. 소련의 초대형 핵실험 폭발 이래 방사능 낙진이 발견되었다거나 1964년 이래 중공의 핵실험이 있을 때마다 그 낙진이 늘어 서울에 내린 빗물에서 허용농도의 2천 배에 달하는 방사능 낙진이 검출되었으니 빗물을 절대 마시기 말 것, 배추는 세 번 이상 씻어서 먹을 것, 비를 맞지 말 것,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세수할 것 등을 고지했다. 마치 방사능이 조금만 신경을 써서 위생적 생활을 하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다뤄진 것이다. (조선일보 1961.11.9.)(경향신문 1973.7.2.)
잊히는 것들
인류는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원자력 발전을 마구 도입했다. 한국에서는 이미 1978년도부터 고리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했으며, 1986년 4월 26일에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방사능이 대량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원자력‧방사능에 관한 인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유럽 등지에서는 “오늘은 체르노빌, 내일은 우리 차례”라는 슬로건으로 반핵운동이 시작되었고, 서독,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수많은 군중이 핵발전소 폐쇄와 새 핵발전소 건설 중지를 요구했다. 미국에선 제인 폰다, 존 바에즈 같은 연예인도 반핵운동에 앞장섰으며, 일본에서도 반핵 관련 도서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인류는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을 설계와 시공 수준이 낮았던 것, 기계를 다루는 이들의 실수, 방사능의 위험성 은폐라고 결론 내리고, 세계 각국은 그 수준을 넘는 ‘안전한 원전(?)’을 구축해 왔다.
체르노빌이 그 무엇도 다시는 자랄 수 없는 ‘쑥대밭’이 되었다는 사실은 잊혔다.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과 헬리콥터 조종사, 잠수 장비와 인공호흡기를 달고 원자로 아래 지하로 내려가 수문 밸브를 열고 지하실 물을 뺐던 노동자들은 어찌 되었는지 잊혔다. 수습팀 노동자들이 어찌 되었는지,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원자로 아래에 땅굴을 판 광부들은 또 어찌 되었는지. 인류는 정말 안전해진 걸까?
백년 동안의 재난
1976년 11월 6일 태릉 한국원자력연구소 대단위방사선조사실에서 한 대학원생이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원자력연구소는 이를 은폐했다. 경황없는 유족에게 장례 일체, 보상금 6백만 원, 형제 중 한 명의 원자력연구소 취업을 보장했단다. “안보상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되는 일”이라 그의 죽음은 극비리에 보고서도 병상일지도 없이 처리되었다. (경향신문 1988.10.27.)
영광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부인은 뇌 없는 아이를 두 차례 유산했고, 영광의 원자력발전소 1호기 방호부 세탁실에서 3년 6개월 동안 근무하다 전신무력증과 현기증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피폭 논란을 일으킨 김모 씨도 결국 사망했다. 이는 모두 방사능과 원자력과 관련한 죽음이었음에도 제대로 조명받지는 못했다. (경향신문 1989.8.7.)(한겨레신문 1992.8.21.)
이후로도 방사능 유출 사고가 있었지만 개별적 사고일 뿐, 그것이 일상을 위협하거나 사회 전체를 위협하지는 않을 거라 여겨졌다.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원인은 성급하게 단정할 수 없는 것, 그 정도 방사능은 일상 어디에나 있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 이후 일본에서 원자력 냉각수 유출 사고가 자주 일어났고 피폭 노동자들이 사망하기도 했지만, 사고 원인은 실무자의 안전 규칙 무시로 결론 나며 마무리되곤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그 어디쯤에 있었다.
연일 후쿠시마가 거론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비하면 10% 수준이란다. 그렇다. 도쿄전력의 오염수는 바다를 돌고 도는 동안 자연 정화되어 한반도 해역으로 온다 하니 오염 수치를 근거로 제기하는 이들의 말대로 정말 안전할지도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이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방류를 중단하고 우리 측에 그 사실을 알려 달라”고 했다 하니 일본 총리가 친절하게 알려줄지도 모른다. 정말 안전할 것인가?
수많은 재난이 초‧분 단위로 벌어진다. 그렇지만 기후와 환경의 위기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지 않고,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에 걸쳐 진행한다. 우리는 모두 이미 알고 있다. 재난의 진원지가 분명함에도 시간이 갈수록 책임이 옅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만 기억할 뿐이다. 재난은 언제나 계급적이고. 재난은 분명 역사적이다.
[사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8일 뒤 수습팀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자신들을 밖으로 실어나를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가브릴로프 촬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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