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러보면]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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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하철에서 진압 당하는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연합뉴스
이황미 (노동자역사 한내 기획국장)
4월 17일 윤석열을 지지하는 청년들이 모인 단체 ‘자유대학’ 회원들이 서울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사전투표 폐지 및 부정선거 검증 촉구 시위’를 벌였다. 이어 “윤 어게인” “중국으로 꺼져” 따위의 구호를 외치고 욕설을 내뱉으며 양꼬치 거리를 행진했다. 4일 파면당한 뒤 11일 사저로 돌아온 전직 대통령을 기다렸다 껴안으며 눈물 찍어내던 자들이다.
“중국 유학생은 100% 잠재적 간첩” 따위 혐오․허위 주장이 담긴 현수막도 전국 곳곳에 조직적으로 내걸렸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이날(4월 22일) 기준 총 719개의 ‘애국 현수막’이 ‘내일로미래로’ 정당명과 함께 게시됐다. (중략) 기한 만료된 것을 포함하면 누적 게시 수는 2,261건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해 12월부터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던 집단이다.
윤석열이 불법계엄을 선포하고 ‘중국인 간첩’ 운운한 뒤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손팻말과 고함이 아스팔트 위는 물론 대학교 안까지 들어갔다. 전직 대통령의 천박한 가치관이 생각보다 넓게 한국 사회를 잠식했다. 혐오는 빨갱이에 그치지 않고,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어린이, 노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 모두를 향해 파고든다.
‘혐오’를 ‘용기’로 내세우는 이들
장애․인권․노동․사회단체로 구성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집회를 열어 “이번 대선에서는 반드시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강고한 투쟁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다음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2021년 12월에 시작해 2024년 4월 8일 중단했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다시 시작했다. “1년간 기다림에도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장애인권리입법 제정, 장애인권리약탈자 오세훈의 약탈 행위에 대한 사과, 400명 일자리 복원을 촉구하며 다시 출근길 지하철을 탄다”고 밝혔다.
장애인들의 외출을 단 하루도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일까.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는 페이스북에 이들의 투쟁을 “인질극”이라고 비난했다. 또 “정치란 인기와 원칙 사이에서 결단하는 일”이라며 “이 부조리에 침묵하는 자들이 대통령을 한다면 대한민국을 제대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라고 썼다. 자신을 부조리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 있는 정치인이라고 스스로 추켜올린 거다. 기실 그는 장애인,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만 집요하게 공격하며 ‘혐오 정치’를 동력 삼아서 여기까지 온 터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그가 대선 후보가 돼서 내놓은 메시지는 결국 다시 ‘혐오’였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은 정부의 공식 기념일인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 정책에는 침묵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김재섭은 “전장연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처벌의 대상”이라며 ‘전장연 방지법’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권성동(국민의힘)은 2022년 12월 8일 페이스북에 “시위가 예상되는 역은 무정차하고 지나가야” 한다고 썼다. 이후 “서울시가 다음 주부터 시위가 벌어지는 역사는 무정차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로 이어졌다. 대체로 ‘대통령실 관계자’ 또는 ‘여권 핵심 관계자’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해석했다.
권성동은 같은 글에서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고통을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며 “불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처벌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도 같은 해 그즈음인 11월 29일 국무회의에서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어떠한 불법과도 타협하지 않겠다”고 했다.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돌아갈 말들이다.
여하튼 그들은 그렇게 장애인 투쟁을 무력화했고, 이번에도 지하철은 무정차 통과했다. 4월 22일에도 혜화역에서 출근길 선전전을 벌이던 전장연 활동가들은 강제로 끌려나왔다. 권성동은 2024년 말 국회에서 열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이해와 바람직한 장애인거주시설 운영방안을 위한 토론회’ 중 전장연 활동가 3명이 “탈시설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치자 강제로 끌어내도록 지시했다.
혐오는 너희 정치의 동력
자당의 대통령이 위헌과 불법을 일삼다 파면돼서 벌어지는 조기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은 뻔뻔하다. 사과나 반성까지 기대하진 않았지만, 품위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인간의 자격을 갖췄는지조차 의심스럽다.
4월 20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홍준표는 다른 후보의 신체적 특징을 꼬집어 공격하고, “재미있으라고 하는 거”라며 낄낄거렸다. 16일 경제정책 비전 발표 과정에서는 <뉴스타파> 기자의 질문에 반말로 “답 안 해”라고 자르며 나가버렸다. 더 기괴한 장면은 그런 후보를 보며 다 같이 웃는 그 캠프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가 “극단적 페미니즘이 전염병처럼 공동체를 잠식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흔들리는 가정과 가족의 역할을 다시 세워야 할 때”며 “차별금지법에는 단호히 반대하고 ‘패밀리즘’으로 따뜻한 공동체를 세우겠다”고 한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을 깔아뭉개고, 인신공격을 일삼으며 차별을 단호하게 숭상하는 그가 세우는 ‘따뜻한 공동체’는 상상만 해도 기괴하다.
그렇게 한국 사회 정치권은 차별과 혐오를 모아 여론을 호도하고, 언론이 가세하고, 마침내 부풀려진 솜사탕을 마치 국민 정서인 양 자신들의 기반으로 삼아 왔다. 지금도 그렇게 상대를 조롱하고, 약자에 대한 혐오를 긁어모아 정치를 이어간다. 그런 정치로 만들고자 하는 세상,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은 또 과연 어떤 모습일까. 녹아서 푹 꺼져버린 솜사탕은 달콤하지도 않을뿐더러 치우기도 괴롭다.
연대와 품위는 우리의 힘
우리는 품위를 지킬 권리와 자격이 있다. 소외된 이웃에 손 내밀고,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사회적 참사를 겪은 피해자와 연대하고, 모든 영역에서 차별에 반대하며, 모두가 평등하고 불편 없는 세상을 만들어갈 권리와 자격.
지난 4월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한국 방문 당시 제의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유족에게 다가가 위로를 건넸다. 그런 행동들이 정치적으로 오해될 것을 우려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차별과 혐오 앞에 중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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