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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의 독서]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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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1,306회 작성일 23-03-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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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의 독서]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양돌규(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 김윤영,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후마니타스, 2022


산포된 가난, 몰각된 가난

 

서울은 예나 지금이나 ‘가난’을 먹고 산다. ‘가난’ 없이는 한 순간도 유지될 수 없는 도시가 서울이다. 도시가 유지되는 데 있어서 저임금 불안정 도시 노동자의 인구는 절대적이다. 그 ‘가난’을 기초로 건설된 문명이고 유지, 보수, 단순 또는 확대 재생산에 있어 이들 노동력은 소용을 다한다.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가난의 풍경’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1966년에는 서울 시민의 38%이 살았고, 1980년에만 해도 10%의 시민이 살았던 ‘판자촌’, 체비지나 개발제한구역에 들어선 비닐하우스 같은 것들이 그 ‘가난의 풍경’들이다. 그것들이 사라져 버리자 마치 가난이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착시다. 가난은 도시 풍경에 섞여 들어갔다. <기생충>에 나오는 것 같은 ‘반지하’로, 아니면 ‘옥탑방’으로, 단지마다 입출구도 따로 만들어진 ‘임대아파트’로 스며들었다. 요컨대 공간적으로 결집해 있던 가난은 분쇄되었고 산포됐다.

분명 가난은 사라지지는 않았다. 눈에도 보인다. 하지만 이제 가난은 인지되지 않는다. 눈을 뜨고 있고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망막에 맺힌 상을 인지하지 못하는 맹점에 가난은 위치한다. 이 시대의 감각 체계는 웬만큼 자극적이고 화려하지 않으면 이제 몰각(沒覺) 하고 마니까.

몰각되어버린 가난을 다시금 인지할 수 있도록 드러내주기 위해 이 책이 쓰여진 것 같다. 빈곤사회연대 14년차 활동가인 저자 김윤영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지금은 사라진 것, 기억 속에 남은 것들을 찾아 산책에 나섰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 써내려가 일종의 ’가난 답사기‘를 묶어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종의 ’안경‘에 비유할 수도 있겠고, 또는 그 산책을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그가 가난을 찾아 발품을 팔며 걸었던 산책지를 열거해 보면 이렇다. 경의선숲길, 용산, 아현, 독립문, 상계동, 서울역, 청계천, 광화문, 종로, 잠실…

 

싸움의 1라운드, 합동재개발과 상계동

 

책은 경의선숲길을 따라가며 시작하지만 상계동을 다룬 글부터 읽을 수도 있겠다. 1960년대부터 무지막지하게 도심 내 판잣집을 때려부수고 강제로 이주시키던 정부 정책은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을 계기로 한계에 부딪쳤다. 그 이후 서울시는 판잣집들의 ‘점유권’을 인정하면서 개량을 권장했고 시멘트나 블록, 붉은 시멘트 기와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88 서울올림픽 유치 후인 1982년부터 합동재개발사업으로 강제 철거가 시작되었는데 글쓴이는 그 전형적인 사례로 상계동을 들고 있다.

‘합동재개발’은 주민들이 조합을 결성해 토지를 제공하고, 건설사는 아파트를 지어 조합원에게 배정한 뒤 나머지는 일반 분양을 하는, 지금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방식의 재개발이다. 여기서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제공되지 않았다.

 

“이윤은 개발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피해는 여기서 쫓겨나는 이들에게 정확히 분담되었다”. “어제까지 한 동네 주민이던 건물주와 세입자가 적이 되고, 건물주가 고용한 깡패들이 집을 부쉈다.” (131~132쪽)

 

1986년 6월 26일, 상계동에는 가옥주 1000명, 폭력배 500여 명, 경찰 500여 명과 사복형사 10여 명이 들이닥쳤다. 빈집이건 사람이 사는 집이건 가리지 않고 굴삭기가 내리찍었다. 우는 아기를 창밖으로 집어던지기도 했다. 이날 주민 1명이 사망하고 41명이 중상해를 입었으며 60여 명이 연행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진행된 합동재개발로 집에서 쫓겨난 시민들의 숫자는 상계동을 포함해 총 72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이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투쟁은 사당동, 오금동, 가락동, 도화동, 양평동, 돈암동 등 100여 곳에서 벌어졌고, 1987년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 1990년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주거연합)이 결성되기도 했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로 1990년 동소문, 돈암동 철거민 투쟁을 통해 개발 지역 세입자들은 영구 임대주택 입주권과 3개월분 주거 대책비를 얻어냈다. 부족하지만 임대주택 쟁취로 철거민들의 지난했던 싸움의 한 흐름이 마무리된 것이다.

 

적준과 뉴타운, 그리고 ‘용산’이라는 푯대

 

글쓴이는 그 이후를 다루는 데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예컨대 1998년 용산구청에서 노숙농성을 전개했던 도원동 철거민들 같은 경우이다. 정부는 이전부터 재개발사업 분쟁에 민간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하면서 발을 뺐고 재개발조합은 직접 폭력 조직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재개발 현장에서 악명을 떨친 것이 다원건설(적준)이었다. 1997년 7월까지 적준이 수주한 서울시 내의 철거 용역 규모는 총 40개 구역, 사업비 570억에 달했다. 이들은 도원동에서 여성을 성추행하고 주민들을 폭행했으며 지프차를 몰고 주민들을 향해 돌진했다. 철거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폭력을 피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망루‘였다.

도원동의 망루는 용산 망루로 이어진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6시 25분, 용산 남일당에서 경찰 특공대의 진압 작전이 시작되었다. 경찰을 태운 컨테이너를 크레인이 들어올려 옥상에서 작전을 펼쳤고, 건물 아래에서는 경찰 특공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진압 40분 만인 7시 5분 1차 화재가 발생했고, 15분 뒤 2차 화재가 났다. 그리고 7시 25분, 망루는 쓰러졌다.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후 투쟁은 오래 지속되었다. 시신이 안치된 순천향대병원, 각종 집회와 시위 현장, 청와대 근방 기자회견장, 광화문과 서울역 등지가 무대였고 용산 4구역 철거민들과 전철연, 그리고 이에 연대하는 시민, 사회단체는 오랜 시간동안 싸웠고 이제는 그 투쟁의 시간이 일단의 매듭을 지었다. 돌아가신 분들은 마석 모란공원에 모셔졌다. 용산 이후, 쫓겨난 이들에게 이제 “용산”은 하나의 “푯대”가 되었다.

글쓴이는 용산 투쟁의 의미와 배경, 그리고 우리에게 남긴 의미를 담담하게 짚는다. 아직 세상이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용산 참사가 던진 ‘이 도시가 어떻게 변화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남아 있음을 지적한다.

철거민은 가난의 일부일 뿐이다. 다른 가난의 얼굴들이 있다. 마포구를 대표하는 대장 아파트인 ‘마래푸’, 즉 마포래미안푸르지오가 들어선 이후 30년 넘게 장사하던 터전을 잃은 아현포장마차 상인들, 아현2구역 용역폭력에 좌절해 목숨을 거둔 1981년생 청년 박준경, 서대문형무소 건너편 옥바라지 골목, 서울역의 홈리스들과 청계천에서 화재로 7명이 사망한 국일고시원, 2012년 8월 21일부터 1842일동안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걸고 광화문역 농성을 전개한 장애인들, 종로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 롯데타워가 들어서면서 사라진 잠실포차 등이 그들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이들 가난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름, 살아온 이력과 가족들, 이들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글쓴이가 읊어주는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더 이상 이들이 그냥 ‘가난한 사람’이 아니게 된다. 너무 당연하지만, 요컨대, 우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산책의 이유

 

서울이라는 도시를 두고 그 역사를 짚어보고 되돌아보는 책들이 쏟아지는 추세다. 한때 ‘아파트’가 주제였다가 ‘아파트 단지’로 주제가 바뀌었다가 이젠 ’대도시 서울‘ 그 자체가 관심사고 아예 일제 강점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대서울 기획’이니 뭐니 톺아보기 바쁘다. 코로나19도 도시 덕택에 종식되었다고 주장하는 건축가도 있고 그도 알쓸이 어쩌고 신잡이 어쩌고 하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같은 이름의 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 책들이 잘 팔리는 건지, 그들이 잘 팔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 잘 팔린다.

나는 이 같은 유행이 단순히 공부하겠다는 열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2000년대 인문학 유행이라는 게 자본의 악세사리였듯, 지금 도시, 역사, 각국사의 유행이라는 것 역시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투기꾼들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며 스타가 된 인문학자들은 자기들이 ‘투기꾼들의 독선생’에 불과하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인문학자가 직접 고른 살기 좋고 사기 좋은 땅’이라는 어떤 책의 부제는 그 사실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이들에게 ’답사‘라는 것은 부동산 ‘임장’(臨場) 같은 것으로, 직접 가서 눈으로 그 매물을 살펴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자 김윤영의 ’산책‘은 그들의 ’임장‘과는 다르다. 어떤 땅이 돈이 될 땅인지 살피려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일어났던 역사와 싸움을 기억함으로써 이 비열한 쟁투를 멈출 비기(祕技)를 얻고자 하는 여정이다. 그건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폐절시킬 비기와 다른 것이 아니다. 애초에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 철거민, 홈리스, 장애인, 쪽방촌 주민들 등은 다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을 달리하지만 같은 존재의 다른 얼굴들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일란성 쌍생아, 아니 다생아이다. 노동이 가난의 풍경과 얼굴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이 쳇바퀴 같이 돌아가는 체제를 바꾸어낼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가난이 불쌍해서도 스스로가 더 우월해서도 아니다.

김윤영의 책은 우리의 산책이 어떤 눈을 가지고 걸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 땅에 살다 떠난 약하고 선량했던 이웃, 하지만 그냥 당하지만 않았던 용기 있었던 사람들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납게 솟은 아파트로 나날이 채워져 가는 서울에서 아파트숲에서 쫓겨난 이들을 찾아나서는 산책길, 이 책을 읽음으로써 지난 30여 년 가난한 서울의 역사를 한 차례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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