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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내의 새 책] 긴 투쟁 귀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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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242회 작성일 25-06-1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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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이라는 말은 낡은 표현이 되었다. 노동자는 훨씬 많아졌고 노사관계는 더욱 첨예해졌는데, 이제 그 단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름난 정치인이나 비평가들의 회고나 후일담에서나 가끔 등장할 뿐. 그런데 한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오래 일하고, 불안정하다. 성별 임금격차는 어느 사회보다도 높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말할 것도 없는 수준이며, 산재 사망은 수십 년 동안 지구의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만약 노동지옥의 올림픽이 있다면 한국은 어느 시대건 메달권 국가에 들 것이다.

그런 한국에도 분명 노동운동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역설적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가장 잔혹하게 짓밟히던 시대였다. 그리고 그 시대를 가장 열렬하게 열어젖힌 주역들이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었다. "똥을 먹고 살지는 않았다"는 노동자들의 악다구니는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국가권력과 자본에 맞선 격렬한 투쟁 끝에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해고자’와 ‘블랙리스트’라는 사회적 낙인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노동자의 존엄과 명예’로 바꿔내기 위해 수십 년을 싸우고 행동해 왔다. 그들이 살아낸 삶은 회고나 추억이 아닌 현실이었다. 자신을 가둔 수많은 사회적 시선을 스스로 걷어냈을 때 진정한 노동운동의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운동’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싸우는 투쟁의 어떤 첨예한 국면만을 떠올린다. 미디어나 언론이 노동운동을 다루는 방식 또한 노사정 간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투쟁에도 ‘가격’을 매기는 습관 때문일까. 그러나 운동(movement)의 본질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다. 시대가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 그 사회가 의미를 발굴하는 데 실패해버린 어떤 지점을 계급적으로 돌파해버리는 것이다.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면에서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해고일기와 복직투쟁기는 보이지 않는 권리와 존엄을 드러내는 노동운동의 본질에 충실히 복무해 왔다. 그 어떤 세월도 그들의 노동운동을 막아서지 못했다. 그들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노동운동의 시대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싸웠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동일방직 노동운동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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