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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내레터 다시읽기] ‘노동귀족’이 춤을 췄던 암흑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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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103회 작성일 25-07-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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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2 세계노동절민중의 소리



'노동귀족'이 춤을 췄던 암흑시대

 

김영수(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



1961516, 군부쿠데타 세력은 서울의 밤을 포탄과 총성으로 수를 놓으면서, 19604.19혁명 이후 추진되어 왔던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적 열망과 환희까지 사라지게 하였다. 1961522, 군부쿠데타 세력은 포고령 제6호로 노동조합운동의 반관료성, 자주성,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던 모든 노동단체들을 해산시켰다.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노동운동단체들도 해산되었다. 군부쿠데타 세력은 4.19혁명 이후 생존권 확보 및 민주노조 결성을 위해 노동쟁의를 폭발적으로 전개하고 있었던 노동자들을 강제로 잠재우려 하였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더 이상 대한노총의 노동귀족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지배세력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1950년대의 노동귀족은 다음과 같이 묘사할 수 있다. ‘노동조합 또는 노동조합 간부가 그 주체인 조합원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위에 군림하였다. 이런 노동귀족은 조합원의 권리에는 무관심하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조합원을 이용한다.’ 그런데 19618,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1950년대 노동귀족이나 어용간부들은 새롭게 태어났다. 군부쿠데타 세력은 이승만 정권에서 정치권력의 촉수로 활동했던 대한노총의 노동귀족을 대신할 새로운 노동귀족을 만들었다. 그들은 1961820일에 공포된 근로자의 단체활동에 관한 임시조치법(법령 제672)’에 무임승차하였다. 바로 노동조합운동의 새로운 전국적 조직체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노동귀족과 어용간부들이었다. 이들은 고지식하지 않거나, 혹은 소위 말하는 정치력을 앞세우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재주꾼들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국노총은 대한노총의 결성방식과 마찬가지로 지배세력 및 군부쿠데타 세력의 의도대로 결성되었다. 당시 중앙정보부와 박정희 군정당국은 한국노총의 설립 발기인이었던 ‘9인 재건위원회의 명단을 자의적으로 지명하였고, 이렇게 지명된 9명이 한국노총의 결성을 주도하였다. 한국노총은 창립 이후 줄곧 조합원들의 제반 이해를 추구하기보다는 국가의 정책을 수용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 힘은 한국노총이 보유했던 노동조합의 쟁의권이었다. 1960년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합법성을 부여받으려면, 쟁의행위 이전에 상급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노총은 박정희 세력의 5.16 군부쿠데타 및 신군부 세력의 19802.12 군부쿠데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가 하면, 197210월유신을 찬성하는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하면서, 노사협조주의의 기수로 등장하였던 것이다. 한국노총은 1960-70년대의 군부쿠데타 정권 및 유신체제, 1980년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등장한 새로운 전두환 쿠데타세력, 더 나아가 19874월 전두환 정권의 호헌선언을 두 팔 벌려 환영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노총의 노동귀족과 어용간부들이 개인적인 출세주의와 배금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부쿠데타 세력들은 한국노총의 활동을 두 가지 차원, 억압적 국가기구 및 재정적 지원으로 관리하였다. 한국노총은 보안사(현 기무사), 안기부, 치안본부, 서울시경, 영등포 경찰서, 노동부등의 통제를 받으면서 활동했고, 정부(국제노동기구 포함)로부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을 지원받았다. ‘1994년 한국노총 중앙본부의 자체 예산은 10억 원 안팎이었지만,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던 액수는 총 753천 만 원에 달했다. 그리고 한국노총이 중앙교육원 건립과정에서 1990­93년 동안, 156억 원을 지원받았고, 1994년에도 28억 원을 지원받았다.’ 1997년 당시, 한국노총의 재정국장은 ‘1960­70년대 한국노총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의 규모를 어떻게 밝힐 수 있습니까. 자료도 없을 뿐만이 아니라, 자료가 있다 하더라도 공개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노동귀족이 즐겼던 또 다른 춤판은 지도부들의 권력지향적인 정치적 출세주의였다. 1950년대 대한노총의 대의원대회를 둘러싼 지도부들의 정략적 파벌투쟁이나, 대한노총이나 한국노총의 중앙 간부들의 임기를 전후로 한 국회 혹은 관료로 진출했던 것이 그것을 잘 웅변하고 있다. 즉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강화되고, 노동조합운동의 관료화를 유도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료화는 국가권력에 기생하는 노동조합운동의 구조를 정착시켰다.

 

노동조합운동의 노동귀족과 어용간부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성과 자주성이 탈각되는 순간, 노동조합운동의 지도부나 간부들은 곧바로 노동귀족으로 바뀔 수 있다. 국가와 자본이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성과 자주성을 전략적으로 탈각시키려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노동귀족이나 어용간부들은 언제든지 노동조합운동을 국가와 자본에 의존하게 하려고 한다. 민주노조운동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법과 제도의 개선을 조합원들이 요구하기 때문에 정치권력에 의존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돈이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정책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정부의 관리와 통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논리, 그리고 산업별 노조의 중앙으로 집중된 쟁의권과 체결권을 내세우면서 노동현장의 다양한 요구와 내용을 관료적으로 처리해도 된다는 논리 등이 그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지도부와 간부들이 이런 논리에 대해 최소한의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는 순간, 노동귀족과 어용간부들만 남아 있고 조합원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암흑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아니, 민주노조운동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우리 모두 그 암흑시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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