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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목격한 사회] 날개 환상통(Phantom Pain 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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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43회 작성일 26-03-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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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아비정전’(왕가위 감독, 홍콩, 1990) 스틸컷.



날개 환상통(Phantom Pain Wings)

 

왕의조(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원)


미국 언론·출판계의 평론가들은 한 해 동안 영어로 출간된 도서 중 최고의 책으로 선정한 작품에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여한다. 2023년 김혜순 시인의 시집 날개 환상통은 한국 작가 최초로 시 부문에서 이 상을 받았다.

 

한 사회의 언어나 문화가 다른 사회에 깊은 공감이나 반향을 일으킨다는 가장 큰 단서는 그 사회에서 생산된 시가 읽히고 있다는 일이다. 그만큼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사회의 언어나 문화가 집약된 체계에 접근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끈다는 호들갑스러운 소식의 저변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완전히 다른 언어와 세계에 공감하고 연결되는 인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BTS의 공연이 전 지구에 생중계되는 풍경보다도 놀라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새의 시집, 날개 환상통

 

시적인 언술은 당대의 일반적인 문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모호한 암호 같다거나 난해한 추상화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현대시의 문법은 얼마든지 지배적인 규율을 파괴하고, 언어가 가리키는 사물과 현상의 일반을 배신하기 때문이다. - 아버지가 기타를 부수자, 나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 이처럼 많은 경우에, 문학적 언술은 일반적인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꾸준히 그들이 목격한 사회를 시집에 담아 전위적이지만 아주 날카로운 현실을 반영해왔으며, 또한 그들의 기록에는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첨예하고 폭력적인 갈등의 여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러한 갈등은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이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공감과 보편성을 확보하면서 시의 세계는 현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날개 환상통의 수상은 문화적 생산물이 가지는 광범위한 인식의 확장과 언어를 통한 사회적 연결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여고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울면서

나가 나가 내 방에서 나가

행진할 때 제일 눈물이 났습니다


, 날개 환상통

 

날개 환상통의 수상은 전미도서비평가협회가 설립된 지 50년에 가까운 기간에 최초의 한국작품이었으며, 번역된 시가 수상한 일도 최초였다. 김혜순 시인은 시상식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젠더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라는 말로 수상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환상통은 신체 일부가 절단되었거나 원래부터 없는 상태인데도 그 부위와 관련해서 체험하게 되는 감각이다. 그러니까 날개 환상통이라는 것은 외연적으로는 잃어버린 혹은 꺾여버린 날개에 대한 통증이라는 뜻이고, 내연적으로는 시집의 곳곳에 등장하는 새도 아니고 날개도 아닌 환상화 한 시적 화자가 감각하는 사회적 통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힐을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날개 환상통, 날개 환상통

 

시집의 세계관 안에서 새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상처받거나 슬피 울고 있다. 하물며 시인은 젠더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했다. 이러한 전제는 젠더를 둘러싼 권력 체계와 세계관을 확장하면서 세계 안에서 고통받는 인민들을 단지 여성들로 국한하지 않고 더 넓은 존재로 확장한다. 나아가 새하는 여자들은 세계의 진실을 감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읽는다면, 이들이 보는 세상의 민낯이란 고통이 엄습하고 억압이 증폭하는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화장실엔 숙녀용과 신사용이 있었다.

(중략)

여자아이는 숙녀용

남자아이는 신사용

 

우리에게는 흑백으로 재생되는 추억밖에는 없어

이토록 추운 추억

결국엔 모두 흑의 노리개

 

화장실 영원, 날개 환상통

 

문학 안에서 목격한 세상은 이상하고 그로테스크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현실보다 적확하기도 하다. 문학은 허구의 뼈대로 진실에 접근한다. 문학의 세계에서 신문이란 거짓의 나열이며, 정치인의 자서전이란 진실의 은폐고, 미디어란 이데올로기의 저수지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날개 환상통은 이분법적이고 적대적인 세상의 모습을 이른바 새하기(환상적 날갯짓)’를 통해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 세계를 모든 인간이 단지 죽어가고 있는 사회, 작별의 공동체라고 명명하기에 이른다.

 

요컨대 문학은 실용을 배격한다. 실용적 관점은 사물과 현상을 단지 쓸모와 용도로 나누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문학일수록 쓸모없거나 쓸데없는 것에 주목한다. 이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담배꽁초나 비닐봉지, 사람들의 걸음에 치인 작은 돌멩이 같은 것을 유심히 살펴보는 일과 같다.

 

그게 대체 현실사회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물과 현상을 쓸모만으로 파악하는 세계에서는 이해관계의 인과만이 포착될 뿐이다. 한국 사회에는 오랫동안 실용주의라는 망령이 배회하고 있다. 실용의 눈으로 전망하는 세상에는 의 이익이 넘쳐나는 듯하지만, 역사의 결핍은 실용에 있지 않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아프다. 그 모든 날개 환상통.

 

우린 이미 죽음을 시작했으므로

모두 평등이었는데

그땐 왜 몰랐을까

 

작별의 공동체, 날개 환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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