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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 생존 문제는 남녀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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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63회 작성일 26-03-3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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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전국 노동자신문> 20(1990년 3월 9) 2면 기사.



생존 문제는 남녀가 다르지 않다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여성 평등으로 나아가

 

68혁명이 기폭제가 되어 성장한 여성해방운동 실천의 결과, 세계적 흐름은 여성의 평등한 권리 보장으로 나아갔다. 그 흐름에서 UN은 남녀평등권 보장을 목적으로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선포하고 197912월에 여성차별철폐협약을 채택, 가입국에 남녀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입법, 행정, 사법 조치 의무를 부과했다. 여성 노동이 세계 노동인구의 34%를 차지했지만 대부분 임금 승진 차별을 받고 있던 현실을 반영한 조치였다. 한국도 19835월에 서명, 1985126일부터 국제협약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발생했다. 이어 198710월 개정헌법에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서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차별 금지(32조 제4)와 여성의 권익향상 및 복지증진(34조 제3), 모성보호(36조 제2)를 위한 국가의 노력 의무규정을 신설했다.

 

1975UN 여성의 해를 맞아 한국의 여성단체, 여성 문제 전문가들은 교과서 내용 개정, 대학 전공 선택에서 이과 계통 진출 기회 보장, 여자대학교 교과과정에 여성 문제 연구 과목 신설, 교육 시설 평준화 등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이때 경제적 균등을 주장했는데,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승진 기회균등, 결혼 퇴직제 폐지, 여성 조기 정년제 개정, 재해보상에서 남녀 차별 폐지, 직장에서의 기술교육 과학교육의 남녀 기회균등, 여성단체 및 종교기관에 근로자보호위원회 설치 건의, 근로 여성을 위한 정기 교육 등이었다. 그러나 유신 정권 아래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변화 움직임은 노동현장에서 시작됐다. 1975년 현재 한국노총 가입 70만 조합원 중 23만여 명이 여성조합원이었다. 당시 산별노조 중 여성노동자가 많았던 자동차노조에선 안내양의 인격 대우 문제, 금속노조에선 여성노동자의 건강관리 문제가 제기됐다. 체신금융노조는 차별정년 폐지와 임금인상을 내걸고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벌이기도 했다. 몇몇 은행에서는 여은행원 공개 채용 요구를 관철하기도 했다.

 

이후 1987년까지 한국 사회 여성노동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여성 고용률은 44.1%에 이르러, 남녀 격차는 25.6%였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 대비 51%의 임금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1987년을 전후로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 부여와 모성보호 차원에서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등장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건전한 체제 내적 근로자 세력의 육성은 특히 그 체제의 흥륭과 존망을 가름하는 아킬레스건이라며 민정당 이상재 의원이 화합 국가체제 우월성 확보를 저해하는 요소의 하나로 임금구조를 꼽았다. 학력 간 임금 격차, 직종 간 임금 격차, 더욱이 취업 보수 승급 승진 등 모든 측면에서 남녀 간의 차별이 문제라고 했다. 이러한 격차와 차별은 노동운동의 급진화를 불러온다는 지적이었다(12대 국회 131회 정기회의, 1986.10.30).

 

다음 해, 우려한 대로 화합대신 전복을 꾀한 세력이 6·10 민주화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을 일으켰다. 그해 겨울 국회에 노동쟁의조정법, 근로기준법, 의료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노사협의회법 개정안 등 이른바 국민 화합을 위한 법안들이 줄줄이 상정됐다. 그중에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건도 있었다.

국회에 상정된 남녀고용평등법안은 고용에 있어서 남녀를 차별하는 고용 관행을 바로잡고 육아휴직을 제도화하며 여성의 직업능력을 적극 개발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하게 하기 위해제안됐다(137회 국회 본회의 회의록, 1987.10.30). 1643분에 상정된 안건이 5분 만에 이의 없이 원안 통과됐고 124일 공포돼 198841일 시행됐다.

법은 여성노동자의 채용 및 교육, 승진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모성보호를 위해 육아휴가 보장, 탁아소 설치 등을 규정했으며 근로 분쟁 조정을 위해 근로여성위원회, 고충처리기관, 고용문제조정위원회 등의 설치를 규정했다.

 

법이 통과된 시기가 12·16 대통령 선거 즈음이었으므로 여성 유권자를 겨냥한 선거용 아니냐, ‘체제 수호를 위한 조치가 필요해 내어 준법안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반영하듯 법은 출발부터 한계가 명확했다. 차별임금 금지규정이 빠져 있고, 법의 실효성을 보장해주는 벌칙 규정도 근로기준법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법 제정과 동시에 개정 운동이 시작됐다. 19893월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듭하며 적용 대상, 차별 개념 등이 확장됐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2007)로 개정됐다.

 

여성노동자, 차별철폐 방안 단체협약에 담아 


1987년 당시만 해도 여성노동자가 결혼하면 사표를 내는 게 관행으로 여겨졌다. ‘결혼 퇴직은 은행이나 보험회사, 병원처럼 여성노동자가 다수인 곳에서도 벌어지던 일이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혼인임신출산을 퇴직 사유로 예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했지만, 현장에서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 공장, 학교, 은행 등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했다. 이들은 노동조합을 뒷배로 남녀고용평등법 적용을 주장했고, 누가 그만두라 하지 않더라도 눈총 때문에 그만둬야 하는 상황을 헤쳐나갔다. 범한화재해상보험(KB손해보험)에서 한 노동자는 산전산휴 휴가를 쓰며 버티기를 했고, 임산부 작업복을 회사로부터 제공받기도 했다. 동산의료원 여성 간부는 결혼을 앞두고 벌어진 부당한 인사이동에 항의하여 투쟁했다. 울산대병원에서는 여성 직원의 근무는 결혼 후 1년까지로 한다는 성차별 정년을 없애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대한상의노조에서도 여성노동자의 산전산후 출산휴가를 보장하는 단체협약을 맺었다.

 

여성노동자들은 전노협 건설과 활동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전노협은 직종, 남녀, 학력 간 차별 임금을 철폐하고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쟁취한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철폐와 모성보호를 위해 투쟁한다는 강령을 채택했다.

남녀 임금 차별철폐는 1990년 이후 민주노조 진영의 요구로 안착했다. 단체협약으로 여성의 정년을 늘려나갔고 호봉제도 개선했다. 모성보호권 확보를 위해 모성보호 주간을 선포하고 투쟁했으며 기혼 여성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위해 탁아입법 제정 투쟁을 전개했다. 서울대병원 등 여러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에 탁아시설 설치를 명기했고, 마산에선 공단 내에 공동탁아소 설치를 요구했다. 이러한 여성노동자의 요구가 3·8 여성대회 실천 과제로 제기되기도 했다.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 노조를 만들었고 여성부를 두었다. 여성노동자의 요구가 무엇인지 조사해 정식화하고 교섭과 투쟁에 나섰다. 고충처리기관을 통한 개별적 권리 요구를 넘어 노동자들은 단체협약 체결을 전체 여성노동자의 차별을 없앨 방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또한 여성 자신뿐 아니라 남성노동자의 인식 변화를 꾀했다. 전국각지에 만들어진 여성단체와 손잡고 구체적 권리 쟁취 투쟁을 벌이며 경제적 평등 인식을 전파했다. 남녀 고용평등에 관한 법은 현장에서 투쟁의 최저 기준이 되고 투쟁을 통해 제기된 요구는 또 법개정 투쟁의 근거가 되었다.

 

불안정노동 심화로 한국 남녀 임금 격차 여전히 29%

 

198841일부터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됐지만, 한국 여성의 경제적 평등은 현재의 과제임을 말해주는 지표가 있다. 2025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3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유리천장 지수를 발표했는데, 한국이 OECD 회원국 29개 중 28위를 했다. 여성의 노동 참여율, 소득, 유급 육아휴직 현황 등 10개 지표를 반영한 결과란다. 특히 여성 노동 참여율 조사 결과는 남성보다 15%포인트 낮게 나타났다. OECD 평균 성별 임금 격차는 11%까지 줄어들었는데 한국은 29%였다.

지수가 수년간 최하위에 머문 이유는 여성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성과 낮은 최저임금이 큰 이유다. 실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23년 여성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규모가 45.5%라고 발표했다. 이는 남성의 1.5배에 달하는 규모다. 정년퇴직하는 여성노동자는 5% 미만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불안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성별에 따른 경제적 평등 실현은 요원하다. 남녀 경제적 평등은 생존의 문제고 여성노동자의 요구이자 모든 노동자의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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