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의 독서] 밥 짓는 여자들, 세상을 짓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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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다정, <밥 짓는 여자들>, 산지니, 2026
밥 짓는 여자들, 세상을 짓는 여성들
양돌규(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지방선거가 불과 두 달도 남지 않았다. 후보들이 선출되고 거리에 플래카드가 넘쳐난다. 매일 여론조사를 하는 전화벨이 울린다. 뉴스를 보니 15년 전 무상급식을 반대하다가 사퇴했던 서울시장이 또 5선을 하겠다고 출마했다. 몇 년 전 그는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유치원 무상급식 추진’을 외치며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이기도 했는데, 그가 달라진 만큼이나 무상급식은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에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떤 책들 한 귀퉁이에서나 볼 수 있는 문구였는데, 지금은 유치원부터 직장인들까지 식판에 밥을 받아먹는 시대가 됐다.
이 책은 12년 차 급식 노동자를 어머니로 둔 필자가 2022년에 쓴 대학원 석사 논문 「학교 급식 노동자의 모순적 경험과 대응」을 바탕으로 한다. 저자는 그동안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담론화될 때 주로 이야기되던 △열악한 노동환경 △부당한 처우와 저임금 △산재 등의 내용 말고도 급식 노동자들이 얼마나 ‘숙련된 기술과 전문성을 가진 노동자’인지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어머니와 이모를 통해 40~60대 기혼 유자녀 여성을 인터뷰했고, 또 직접 학교 급식실에 시간제 배식원으로 일하면서 동료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대부분 1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급식 노동자 16명의 인터뷰가 이루어졌고 그 증언을 바탕으로 논문을 썼다.
한국 학교 급식의 확대와 급식 노동자의 탄생
한국의 학교 급식은 1950~1960년대 외국의 원조기관 지원을 통해 마련된 탈지분유, 빵, 수제비, 건빵 같은 ‘구호 급식’ 형태로 시작됐다. 1973년에는 외국의 원조가 종료됐는데, 1977년 서울 시내 학교에 제공된 빵으로 인한 식중독 사태로 급식이 전면 중단됐다. 하지만 1981년 학교급식법령이 제정되면서 학교 급식이 재실시되었고 점차 대규모 인원을 위해 밥을 짓는 전문 설비를 갖춰갔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여성의 가사 분담 완화를 통한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라는 정책적 목표 아래 ‘가사와 육아의 사회적 분담 체계’ 마련을 위한 세부 과제로 ‘학교 급식의 전면 실시’를 추진하기에 이른다. 이는 기혼 여성의 고용률 확대를 통해 당시 ‘노동력 부족’을 타개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또 1990~2000년대 여성인력개발센터 등을 통한 직업훈련이 제공됨에 따라 미용, 봉제, 웨딩플래너, 판매 및 사무 등 ‘여성 적합 직종’에 학교 급식 일자리 역시 포함시킴으로써 학교 급식 일자리가 급속히 확대됐다. ‘학교 급식 일과 집안일 간의 유사성’, ‘비교적 빠른 퇴근 시간으로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에 적합’ 등의 이유로 주부 재취업에 적당한 직종, 기혼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로 홍보됐다.
그 결과 학교 급식 일자리는 여성이 99%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대표적인 ‘기혼 여성 직종’이 됐다. 이 밑바탕에는 “기혼 여성이 일과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고 그래서 이들을 ‘부수적 노동자’로 여기게 만들면서 저임금을 정당화하고 일용직 채용을 정당화했다.
급식 노동자는 일과 가정 모두를 잡을 수 있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급식 노동자들은 서로 닮아 있다. 특히 살아온 과정이 그렇다. 학교 교육을 마친 후 판매직, 생산직, 서비스직 등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들은 결혼과 임신을 계기로 노동시장에서 퇴장했다. 이후 자녀를 양육하면서 주부로 지내지만,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여성들은 다시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하게 된다.
이들이 학교 급식 일자리에 취업한 가장 큰 이유는 ‘자녀가 학교를 마친 후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학교 급식 노동자는 보통 아침 7~8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하는데 이는 자녀가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과 비슷하다. 주말, 공휴일, 방학 등의 일정도 똑같다.
이 바탕에는 가사노동뿐만 아니라 양육과 돌봄이 전적으로 여성의 일로 맡겨지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 급식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은 여성을 둘러싼 실질적 제약들과의 복합적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내 자식이랑 똑같이 생활이 되잖아. 내 자식이 학교를 안 가면은 우리 급식도 안 하잖아. 그리고 또 내 자식이 시험 때 쉬면은 학교 급식도 시험 때 쉬잖아. 그러니까 애들이 집에 있을 때는 나도 집에 있고, 애들이 학교 가면 나도 출근을 하고 그게 좋으니까 학교 급식을 한 거지.”(58~59쪽)
그렇다면 여성들은 급식실 취업 후 일과 가정 양립에 성공하였을까? 저자는 오히려 이것이 여성들을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급식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여성들은 다시 ‘집안일’을 시작한다. 저녁식사 준비, 청소, 빨래, 자녀 케어 등 ‘산더미 같이 쌓인 집안일’을 해치워야 한다. 학교 급식 업무와 집안일의 유사성은 ‘퇴근 없는’ 일의 연속일 뿐이고 그 가운데 이들은 체력적, 정신적으로 소진되고 있다.
더구나 ‘주부 노동자’라는 호명은 이들의 임금을 낮추는 효과를 낳고, 또 방학 때는 급여가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방학 때 단기 아르바이트 같은 일자리를 구하곤 한다. 처음 이 일자리를 구했던 이유였던 ‘자녀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한 일자리’는 온데간데없어지고 미로 속에 갇힌 셈이다.
학교 급식 노동의 숙련
학교 급식이나 집안일이나 비슷하다는 인식은 사회 일반의 인식이기도 하지만 노동자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급식실에서 일을 경험하고 나면 가정에서의 가사노동 경험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집에서는 쓰지 않는 도구, 노동 과정, 재료의 양, 무거운 중량, 전혀 다른 조리 기구, 대용량 음식 조리법 등에서 차이가 있다.
그 노동 과정을 거치면서 급식 노동자들은 숙련 노동자로 거듭나게 되는데, 그러나 이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는 학력, 학벌 같은 교육 수준이나 자격증 등으로 숙련을 판단하곤 하는데 ‘한낱 집안일’로 취급되는 이들의 노동은 기존의 숙련 개념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학자들은 숙련 개념을 재구성해 그동안 비숙련으로 간주해 온 노동을 재평가해 왔다고 한다.
급식 노동자들이 노동 과정에서 체득하는 지식과 노하우는 대부분 ‘경험적 지식’에 해당한다. 이는 실전에서 시행착오 등을 겪으며 얻는다. 그리고 새로운 노동자에게 말과 시연을 통해 전수된다.
학교 급식 노동과 안전
한국의 친환경 무상급식은 학교 급식 노동자의 헌신과 희생 없이는 운영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학교 급식실의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각종 산업재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근골격계질환도 가장 대표적인 질병 중 하나인데 노동강도가 높다고 알려진 조선업종의 근골격계질환 발생률이 70~80%인데 비해 급식 노동자들의 그것은 95.8%로 극악한 수준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발병 비율은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2022년 국회에 제출된 교육부 자료 ‘학교 급식 노동자 폐암 건강검진 현황’ 분석에 따르면 건강검진 결과를 통보받은 노동자 5,979명 중 61명에게서 “폐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는 2019년 한국 여성의 폐암 발생률보다 28배 정도 높은 수치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노동자들이) 고온의 튀김·볶음·구이 요리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에 노출됐다. 이런 조리행위가 폐암 발생의 위험도를 높인다”고 판단했다.
2025년 10월에는 근로복지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 ‘학교 급식 종사자 폐암 산업재해 신청 현황’이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학교 급식실 폐암 산업재해 신청은 213건, 승인은 178건이며, 이 가운데 15명이 사망했다. 한국 사회 전국 평균 산업재해율은 0.66%인데 반해, 학교 급식실은 3.7%에 이르고 이는 사회 평균보다 5배나 높은 형국이다.
급식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세상을 짓다
지금은 여당에 가 있는 한 국회의원이 2017년 국민의당 의원 시절 당 회의에서 급식 노동자들을 두고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 비하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 학교 현장에서 보통 ‘행정실’에 소속돼 있다. 하지만 이들은 행정실의 다른 직원들과 동료로서의 관계를 맺고 있지도 않으며 소속감도 느끼지 못한다. 비정규직에서 공무직으로 전환되고 나서도 여전히 학교의 교직원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학교 안에서 여러 정보로부터도 소외되고 고립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노동자로 호명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져 왔다. 노동조합은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학교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됐고 개별 학교 차원에서 할 수 없는 정책적 제언과 요구까지 해나갈 수 있게 됐다. 노동조합은 노동조건 개선, 급식실 내 환경 개선 토론회, 각종 수당 지급, 고용 형태 변경 등 급식 노동자들의 실질적 삶과 노동의 개선을 위해 싸워왔다.
급식 노동자들 투쟁의 성과로 2023년 윤석열 정부의 방치 속에 일몰 폐지됐던 공무직위원회가 2026년 2월 12일, 공무직위원회법 법제화로 다시 세워졌다. 이에 따라 학교비정규직 차별 해소의 근거가 마련됐고 정부의 사용자 책임이 명시됐다.
또한 2025년 10월에는 41개 시민사회단체와 제 정당, 그리고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에 속해 있는 여러 노동조합이 힘을 모아 ‘안전한 노동 행복한 급식 100만 청원운동본부’를 결성하고 학교급식법 개정 운동에 돌입했다. 운동본부는 △급식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보장 △최소 조리 인력 기준 마련 △학교급식위원회에 학부모와 노동자 참여 보장 △민간위탁 중단 및 직영 급식 유지 △방학 중 무임금 문제 해결 △폐암 산재에 대한 범정부 종합대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급식 노동자들은 학교급식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 대통령실 앞과 국회 앞 농성, 108배 행진, 총파업 등 투쟁을 해나갔다. 전국적으로 322,896명의 시민이 참여해 국민 청원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개정 학교급식법은 마침내 2026년 2월, 국회에서 99.57%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울긋불긋한 앞치마를 차려입고 국회에서 방청하던 학교 급식 노동자들은 손을 모아 얼굴을 감싸 쥐고 눈물을 흘렸다.
학교급식법 개정에 따라 이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학교 급식 종사자의 건강과 안전 보장에 대한 시책 강구 △3년마다 교육부 장관이 학교 급식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 △학교 급식 시설·설비·인력배치 기준 마련 시 학교 급식 종사자의 건강과 안전 고려 △학교 급식 종사자 1인당 적정 식수 인원 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해 이를 준수하도록 한다는 등의 내용이 시행될 것이다.
공무직위원회 출범, 그리고 학교급식법 개정이라는 새로운 조건 아래 급식 노동자들의 새로운 실천의 순환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맞상대가 될 이들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될 시·도교육감들이다. 노동자들이 이들과 때로는 대화하고 때로는 싸워가며 ‘지어갈 세상’이 자못 궁금해진다. 이 나라에서 매일 식판에 밥을 받아먹는 사람들이 몇천만 명은 될 것이다. 그 밥을 먹은 이들이 일을 해서 세상이 굴러간다. 그렇다면 이들이 먹는 밥을 하는 노동이 원초적인 셈이다. 밥 짓는 노동이 먼저 있었다. 밥 짓는 노동자는 오늘도 세상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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