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AI가 철도노조 아카이브를 다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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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철도노조 아카이브(archive.krwu.or.kr) 화면 캡쳐
AI가 철도노조 아카이브를 다운시킨다
김병구(철도노조 80년사 편찬위원)
퇴직 후 무던히도 돌아다닌다. 천년의 길 산티아고 길을 시작으로 서유럽을 종단하고, 실크로드로 천산산맥을 넘어 천산북로와 남로를 이어 걷는다. 오렌지색 푸르공으로 몽골의 사막과 초원을 달리고, 국경을 넘어 바이칼호 거쳐 하바롭스크, 연해주까지 내려간다. 뚜렷한 이유나 목적 없이 그냥 걷고 싶어서 다닌 1년간의 여정이다. 한 갑자를 살았지만 삶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난 ‘길 없는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아주 익숙한 것을 보게 된다.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17만 명의 나라 잃은 민족이 있다. 중앙아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서로의 몸을 포개어 살아남은 그들은 고려인이라 불린다. 이제는 50만이 넘고 그중 일부가 90년대 초에 연해주로 돌아온다. 우수리스크의 고려인들은 그 험한 세월을 잊지 않기 위해 기념관을 만든다. 그곳에서 그들의 진정성을 만난다. 작은 공간이지만 살아온 세월에 대한 자긍심과 애절함이 절절하다. 죽비로 얻어맞은 듯 무언가를 각성하게 된다.
20년 전부터 철도현장에서 자료를 모으고 노조 사업으로 자료전산화작업을 시작한다. 전자도서관도 만든다. ‘철도노조 60년사 편찬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이명박 정부의 극심한 노조탄압으로 사업은 중단된다. 어렵게 만든 전자도서관도 유명무실해진다. 다행히 2024년 4월 철도노조 최명호 집행부에서 아카이브 구축을 포함한 80년사 편찬사업을 추진해 이제 마무리 단계다. 당위로 진행한 사업이지만 성과에 대해서는 늘 회의적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서버 용량이 충분하다고 생각한 아카이브가 자꾸 다운된다. 서버가 다운될 정도의 폭풍 검색이 일어나고 있다. 대박이다. 그 범인은 사람이 아니고 AI이다. AI는 엄청난 속도로 철도노조 아카이브를 검색해 의뢰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철도노조 역사편찬사업은 이미 AI시대에 맞춤한 미래사업이 되었고, 생존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AI는 필연적으로 정보 및 데이터베이스 전쟁을 전제로 한다. 이제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일부 연구자들의 관심사를 넘어서서 노동자 선전과 이데올로기 투쟁 전선에서 핵심적인 사업이 되었다.
‘노동자역사 한내’에서는 총력을 기울여 그동안 수집한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를 전산화하고 있다. AI시대에 노동자 사상투쟁을 선도하고 있는 한내의 진정성은 대단하다.
그러나 어렵게 구축한 철도노조 아카이브와 한내 아카이브의 미래는 밝지 않다. 이미 구축된 초보적 단계의 철도노조 아카이브는 이후 사업계획이 없어서 유지 및 확장이 쉽지 않을 듯하다. 두 노총을 비롯한 대부분의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들은 AI시대의 이데올로기 전쟁에 관심이 없다.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 프로젝트 등으로 유지해 온 ‘노동자역사 한내’도 이제 한계에 봉착한 듯하다. 각종 자료와 노동박물관 설립을 위한 박물들을 보관하고 있는 고양시 설문동의 건물을 유지하기에는 누적적자가 너무 크다. 한내도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AI시대의 노동자에게는 좀 더 개방적이고 체계적이며 글로벌한 보물창고가 필요하다. 각종 노동관련 아카이브를 연계하고 집적하여 모두가 생산자이면서 소비자가 되는 놀이터가 필요하다. 그곳에서 신나게 놀다 보면 AI는 노동자의 친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곧 이데올로기 투쟁이다. 그 투쟁의 중심에는 20년 동안 묵묵히 일해 온 ‘한내’가 있다. 기로에 선 ‘한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죽비로 맞기 전에 각성하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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