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러보면] 5·18, 이럴 거면 차라리 잊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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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대 남성이 지난 5월에 <광주일보> 지면을 그대로 흉내 내 제작·유포한 5·18 왜곡 폄훼 게시물.
5·18, 이럴 거면 차라리 잊어달라
이황미(노동자역사 한내 기획국장)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은 계엄군에 진압됐다. 광주 민중을 학살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5·18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불순분자와 폭동 세력의 난동이라고 했다. 광주의 실상에 관한 언론 보도는 전면 금지됐다. 진실을 알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외치면 잡혀가고,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구속됐다. 유가족도 피해자도, 광주 사람 그 누구도 그날을 이야기하면 모두 불법이었다. 1987년 민주화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새로운 대통령 역시 광주학살의 주범이었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도 5·18 광주민중항쟁은 ‘광주 소요사태’였다.
그래야 했다. ‘북한군이 개입해 일으킨 소요’였어야 자신들의 진압과 학살이 정당화되고 지배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죽음의 시대, 그렇게 민중은 “굵은 눈물 붉은 피”를 흘려야 했다.
법 제정 후에도 끊임없는 조롱과 폄훼
김영삼 정권 시기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1995년)이 제정됐다. 이를 계기로 학살자 전두환과 노태우는 15년이 지난 그제야 구속됐다. 물론 민중운동진영이 끊임없는 진상규명 투쟁을 벌인 결과다. 그러나 처벌도 잠시, 1997년 12월 20일 대통령 김영삼과 당선자 김대중은 ‘통합’을 이유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했다.
김대중 정권 시기 명예 회복과 보상, 기념사업이 본격화됐다. 2000년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5·18민주화운동 공식 기념식에 참석했다. 2002년 1월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망월동 묘역은 국립묘지로 승격됐다. 노무현은 대통령 시기 매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참여정부는 5․18 광주의 위대한 정신을 계승해 개혁과 통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했다. 광주민중항쟁의 위상이 자리잡히는 듯했다.
정권은 다시 바뀌었다. 5·18 국립묘지를 찾은 2004년에는 ‘유영봉안소’에서 활짝 웃고, 2007년에는 홍남순 인권변호사의 묘역 상석을 밟고, 대선 후보 시절 공식 석상에서 세 번이나 5·18을 ‘사태’라고 말했던 이명박도 대통령 취임 첫해에는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국가보훈처는 매년 불러온 ‘임을 위한 행진곡’을 2010년 30주년 행사부터 공식적으로 제외했다. 행정안전부는 전국공무원노조가 광주 순례에 나선다고 하자 ‘불법’이라며 참가자 처벌을 외쳤다. 2013년 국방부가 북한군의 5·18 개입설이 사실무근이라고 공식 발표했음에도 보수성향 단체와 매체의 5․18 왜곡과 폄훼가 계속됐다. 박근혜 정권은 제재하지 않았다. 도리어 5․18의 역사적 의미와 위상을 축소하며 왜곡을 부추겼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2017년, 기념식에서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졌다. 2018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비로소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한 조사 활동을 시작했다.
한편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전두환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8년 시작된 1심 판사는 현재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이었다. 그는 ‘고령’과 ‘거동 불편’을 이유로 전두환이 신청한 불출석 허가를 받아들였다. 거동이 불편한 전두환은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라운딩을 즐겼고 12월 12일에는 군사 반란 가담자들과 서울 강남의 고급 음식점에서 샥스핀이 포함된 1인당 20만 원 상당의 코스요리와 와인으로 12.12 내란을 기념했다. 분노한 국민은 전두환을 강제 구인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장동혁은 받아들이지 않더니 2020년 1월 총선 출마를 위해 판사를 그만두고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후 1심(2020년 11월)은 군의 헬기 사격을 인정했으나, 항소심 진행 중 전두환이 사망해 버렸다.
법원도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출판물이 허위 사실임을 명확히 판시했다. 2002년부터 “5·18은 북한 특수부대가 주도한 폭동”이라는 주장을 들고나와 책까지 펴낸 지만원에 대한 명예 훼손 혐의는 2023년 1월, 5·18 관련 단체에 대한 손해배상은 2026년 1월에 각각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국회에서 민중항쟁을 왜곡해도 괜찮은 나라
그리고 2026년 8월 13일, ‘대한민국 국회의원’ 이진숙이 국회에서 이른바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을 열었다. 부제는 ‘모두의 역사,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학술적 성찰’이다. 5·18 특별법에 따라 5·18을 허위 사실로 왜곡·폄훼하면 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지만 예술·학술, 연구, 보도 등 공익적 목적의 행위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토론회 제목에 ‘학술’이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일 게다.
이진숙과 함께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새역사국민운동의 공동대표 이영훈은 인사말에서 “광주에서 있었던 10일간의 ‘소요 사태’”라고 표현했다. 주동식(국민의힘)은 “대한민국의 정통 주인은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맥락”이라며 “5·18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느냐. (…) 대외적으로 고립시키고 내부적으로는 분열시켜야 한다”고 했다. 온라인매체 <펜앤마이크> 기자 김용삼은 전두환이 ‘살인마’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회가 이 지경이니 기업(스타벅스코리아)은 상술로 5·18을 모욕하고, 고등학교 야구선수들은 그걸 따라 하며 광주에서 온 또래 선수들을 조롱할 수 있었다. 이진숙은 광주제일고 야구선수들을 조롱한 배제고에 응원 화환을 보낸 바 있다.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라인상에서 “5·18은 폭동”, “북한군이 개입했다” 등의 허위 주장과 비하 표현은 반복되고 있다. 5·18기념재단이 인공지능(AI) 기반 온라인 모니터링을 벌인 결과 2025년 2월부터 11월까지 포착한 5·18 왜곡·폄훼 게시글·댓글·영상은 총 5,182건이었다. 전년도 같은 기간 1,728건보다 크게 늘었다. 파급력이 큰 유튜브 왜곡 콘텐츠는 같은 기간 34건에서 217건으로 급증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5·18 특별법 처벌 조항 신설 이후인 2021년부터 올해 4월까지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은 120명, 이 중에서도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송치된 인원은 67명뿐이라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원수를 무슨 수로 갚는다냐!”
오월이 오면, 아니 지금 팔월에도 “우리 가슴에는 붉은 피”가 솟는다. 정권 따라 평가와 위상이 달라지고, 지배계급과 정치세력은 조롱하고 폄훼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국가가 가해자다. 국회는 가해를 이어가도 괜찮다. 그러면 국민은 무슨 수로 원수를 갚을까.
“나중에 느이 작은형이 그러드마는. 총을 맞고 피를 너무 흘려서 네 얼굴이 그리 희었다고. 그래서 관이 가벼웠다고. 네가 아무리 덜 컸다고 해도, 그렇게 관이 가벼울 수는 없었다고. 그람스로 두 눈에 핏발이 서드라이. 이 원수는 내가 갚을랍니다. 그것이 뭔 소리다냐. 깜작 놀라서 내가 그랬다이. 나라에서 죽인 동생 원수를 무슨 수로 갚는다냐. 너까장 잘못되면 나도 따라 죽을 거이다. 그라고 삼십년이 흘러가도록, 너하고 느이 아부지 기일에 그 자석이 가만히 서서 입 다물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이상해야. 네가 죽은 것이 저 때문이 아닌디. 왜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어깨가 굽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을까이. 저것이 아직도 원수 값을 생각을 하고 있단가, 생각하면 가슴이 내려앉아야.” (한강, 『소년이 온다』 181~182쪽, 창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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