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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와글] 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 투쟁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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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54회 작성일 26-10-0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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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마침내 제자리로

- 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 투쟁의 연대기

 

정용재(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2026년 9월 9일,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소속기관 설립을 위한 5차 노사전문가협의체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 연내 기관 설립, 2027년 중 개소 등 전환 일정을 확정하고, 임금과 고용 등 큰 틀의 전환 조건에 최종 합의했다. 2021년 10월 민간위탁사무논의협의회가 소속기관 설립과 고용전환을 결정한 지 6년 만이다. 마침내 6년, 아니 무려 20년 만에 건강보험 상담노동자들이 애초에 있어야 했던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더 싸게, 더 많이

 

2000년 출범한 국민건강보험공단에는 직원들이 순번을 정해 지사로 걸려 오는 상담 전화를 받는, 속칭 ‘전화방’ 업무가 있었다. 공단의 업무와 역할이 확대되면서 상담 횟수가 급증했고 악성 민원도 늘어났다. ‘서비스 품질 향상과 효율성 확대’를 앞세워 공단이 선택한 방법은 공공기관 최초의 상담업무 외주화와 비정규직화였다.

2006년 설립된 고객센터 2곳에서는 상담원 600명 가운데 공단 정규직인 전문상담원 180명과 외주업체 소속 상담원 420명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업무를 했다. 센터는 이후 전국 12곳으로 늘어났고, 그 자리는 1,6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애초 약속했던 차별 없는 임금과 노동조건 보장이 거짓말이었음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효율성과 전문성, 경제성을 내세웠지만 외주화는 효율적이지도, 전문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았다. 12곳으로 쪼개진 센터마다 관리 인력과 비용이 중복됐고, 이윤·일반관리비·부가세를 보장해 주느라 도급업체만 살찌우는 구조였다. 2년마다 바뀌는 업체에 전문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업체들은 원청인 공단의 지시에 따라 콜 수 실적 경쟁만 요구하며 상담사를 쥐어짜다 사라졌다.

5,100만 명의 가입자가 연간 3,500만 건의 전화로 건강보험 자격, 보험료, 보험급여, 건강검진, 의료급여, 장기요양, 4대 보험 징수통합, 코로나 재난 상담 등 1,091종의 상담을 받아 왔다. 가입자의 재산·소득·질병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만큼 공공의 통제가 더욱 필요한 업무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에서 “함께하는 건강보험 상담사 ○○○입니다”라며 인사를 건네는 전문상담사가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상담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외주화의 시간에 비례해 바닥을 향해 갔다. 지난 20년 동안 변한 것은 2년마다 바뀌는 소속 업체와 날로 늘어나는 콜 수와 업무량이었고, 변하지 않은 것은 최저임금과 실적 경쟁, 그리고 열악한 노동환경이었다. 폭언과 성희롱, CS 업무평가, 실적 강요, 끝없는 업무공부 속에서 공황장애와 스트레스, 근골격계·청력·비뇨기계 질환으로 몸과 마음은 갈수록 망가져 갔다.

 

“고객에게 친절하고 세심하게 상담하는 상담사가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콜 수로만 평가하기 때문에 그 상담사를 저성과자로 분류해 관리대상자로 취급했습니다. 매일 콜 수 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10시간 50분을 김밥 한 줄로 버티면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콜을 받았습니다. 이 친구는 몇만 원 인센티브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상담사들도 저성과자가 되지 않으려고 콜을 열심히 받다 보니, 악을 쓰고 콜을 받아도 하위자 꼬리표를 떼지 못했습니다.”

 

2019년 12월 21일

 

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며 생명·안전 업무와 상시·지속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대책을 발표했다.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의 비정규직 상담노동자들은 직접고용되었다. 그러나 같은 사회보험기관인 건강보험공단은 깜깜무소식이었다. 정부 정책을 깔아뭉개고 버티기로 일관했다.

2년간의 희망고문 끝에 상담사들은 노동조합으로 권리를 찾고자 나섰다. 그러나 교섭, 원청 이사장 면담 등 노동조합을 만들면 으레 하는 요구조차 철저히 외면당했다. 노사전문가협의체 회의도 중단됐다. 그 와중에 정규직 노조는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를 핑계로 “직접고용 사업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투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6차례 총파업, 농성, 집단 단식, 청와대 행진…끝없이 이어진 투쟁

 

2021년은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무시와 차별을 끝내야 한다는 의지 앞에서 코로나도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2월에는 원주 공단본부 앞에서 꼬박 한 달간 전 조합원 1차 파업을 벌였다. 이후에도 지회별 순환파업과 시한부 파업을 쉼 없이 이어갔다.

6월 11일 2차 전면파업에 돌입하자 전국의 조합원들이 침낭과 짐을 싸 들고 공단 앞에 모여 농성 파업에 들어갔다. 천막 수십 동이 들어선 천막촌이 생겼고, 공단 본부 로비에서도 농성이 벌어졌다. 공단 이사장이 로비에 자리를 깔고 함께 단식에 들어가는 희대의 일까지 있었다. 원주에서 청와대까지 행진도 시작되었다. 버티고 또 버텼다. 이 싸움은 코로나 시기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표적 투쟁이 되었다. 지원과 연대가 줄을 이었고,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의 헌신적인 활동도 투쟁을 이어 가는 큰 힘이 되었다. 마침내 그해 10월, ‘공단·전문가·정규직 노조·고객센터지부’로 구성된 민간위탁사무논의협의회에서 공단 직접고용을 우회하는 방식인 ‘건강보험공단 내 소속기관 설립 및 고용전환’이 결정됐다.

 

단 한 명도 버릴 수 없다

 

끝난 줄 알았던 싸움은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공단은 ‘공정 논리’를 앞세워 공개경쟁 채용과 시험을 요구했고, 도급업체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저임금 구조와 인센티브 콜 경쟁을 강요했다. 전환 인원 축소, 근속 미인정에 더해 입사 시기에 따른 선별·경쟁 채용이라는 허들까지 놓았다. 그러나 지부는 “단 한 명도 버리지 않는다. 함께 간다”는 원칙을 단호히 세우고 지켜나갔다. 차별을 없애자고 시작한 노동조합이 고용 차별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건강보험 상담사들은 건강보험 제도의 변화와 확대에 따라 1천 개에 이르는 지침을 숙지해야 상담 전화 한 통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복합적이고 고도화된 업무를 해 왔다. 고난도 상담노동 탓에 입사하자마자 퇴직자가 나오는 일터의 현실을 안다면, 숙련 노동자를 오히려 우대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도 공단이 내세운 ‘시험을 통한 선별채용’은 쉬운 해고와 콜 무한경쟁, 노동 통제를 위한 포석일 뿐이었다.

 

“1권 자격, 2권 부과, 3권 급여, 검진, 장기요양. 처음 듣는 단어는 모두 생소했고, 교육 기간 매일 아침 시험을 봤다. 평균 점수에 못 미치면 퇴근 후 따로 남아 시험을 보기도 했다. 교육 기간 3주가 끝난 후 16명이었던 동기는 8명으로 줄었다. 업무 한 달 후 동기는 다시 4명으로, 10년이 지난 지금은 나 혼자다.”

 

강제력도 실효성도 없는 정부 대책과 공단의 선별채용 개악안 속에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고, 차별의 시간도 그만큼 길어졌다. 공단은 “정권이 바뀌어서” “이사장 임기가 끝나서” “고객지원실 담당자가 바뀌어서” “정규직노조 집행부가 바뀌어서” 등 온갖 핑계를 대며 소속기관 전환 결정을 사실상 폐기하려 했다.

그러나 차별과 불평등의 현장을 바꾸려는 의지와 노력은 “할 만큼 했는데 안 되나 보다”라는 비관과 체념보다 훨씬 컸다. 2023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72일간 네 번째 총파업과 공단 본부 농성, 집단 단식 투쟁을 벌였다. 2025년에도 총파업에 들어갔다. 2026년에도 투쟁은 계속됐다.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54일간 천막농성을 벌인 데 이어 2월 다시 총파업에 들어갔고, 지부장이 17일간 단식에 나섰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노동조합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썼고 마지막 쟁점이었던 ‘수습 및 외국인 상담사의 고용과 연차 보장’에 합의했다. 그리고 마침내 9월 9일, 소속기관 설립 일정과 제반 노동조건에 대한 합의에 이른 것이다.

 

여전히 투쟁은 현재진행형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6년의 초장기 투쟁 속에서 생계 곤란을 겪는 조합원들의 이탈과 투쟁 전망을 둘러싼 조직 내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은 조합원들은 그만큼 더 단단해졌다. 파업으로 인한 누적 1년의 무임금을 비롯해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며 헌신한 간부와 조합원들은 노동조합과 투쟁, 연대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 갔다. 그리고 마침내 20년 만에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터를 제자리로 되돌리는 결정을 끌어냈다.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민주노조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목표를 놓치지 않고 헌신하는 집행부, 꾸준한 정기 선전전과 집회, 일상적인 조합원 토론과 모임, 민주적 의사결정, 다른 사업장과의 연대 활동까지, 그야말로 ‘모범’적인 민주노조다.

9월 29일,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또다시 전국 동시다발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었다. 개정 노조법에 따른 원청 교섭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예상대로 건강보험공단은 원청 사용자 지위를 부정했다. 6개월간의 지루한 공방 끝에 노동위원회가 “공단이 원청사용자”라고 판정했지만, 공단은 교섭 의제와 방식에 어깃장을 놓으며 여전히 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다. 조합원들은 이렇게 또다시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빠짐없이 기억되고 기록돼야

 

차별과 불평등에 맞선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저항과 연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 기억과 기록, 의미는 더 풍부해져야 한다. 40만 명의 콜센터 상담노동자가 여전히 밑바닥 임금과 공짜 노동, 고용불안과 부당해고, 원청·하청·고객의 삼중 갑질에 시달리고 있고, AI와 챗봇 도입에 따른 대량 해고와 노동강도 강화의 현실이 엄중하기 때문이다. 또한 철도 노동자들이 20년의 투쟁 끝에 민영화 철회와 KTX 통합을 이뤄내며 철도 공공성을 지켜낸 것처럼 외주업무를 내부화시켜 건강보험 운영 제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일대 진전을 이뤄낸 성과를 더욱 확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일터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동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사람으로서의 존엄과 양심, 연대의 끈을 놓지 않은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쟁. 그 기록과 의미는 ‘노동권 보장·공공성 확대’를 위해 오늘도 같은 요구를 들고 거리에서, 고공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승리를 위한, 그리고 침체된 민주노조운동을 되살리기 위한 이정표이자 촉매제가 될 것이다.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전화기 뒤에 숨어 있던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짜 노동자가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투쟁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고객센터는 원래 그런 거야’ ‘하청업체니까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구조라는 것을. 그리고 그 구조는 싸우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 김금영 지부장이 신입 조합원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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