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철도노동자, 자기역사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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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동자, 자기역사를 쓰다
김병구(철도노조 80년사 편찬위원)
“20년 전부터 철도현장에서 자료를 모으고 노조 사업으로 자료 전산화 작업을 시작한다.” (‘AI가 철도노조 아카이브를 다운시킨다’, 한내레터 [와글와글], 2026.8.11)
『철도노조 80년사』 발간(2026년 11월 예정)을 앞두고 지난 세월 함께한 이들이 떠오른다. 홍보물 한 장을 만들어 배포하다 적발되면 해고 또는 비연고지로 전출당하던 엄혹한 시절에 자료를 만들고 현장 곳곳에 뿌렸던 이들, 오랜 세월 보관한 소중한 자료를 흔쾌하게 기증한 이들, 옛일을 구술하고 채록하는 이들, 자료를 분류하고 스캔하여 디지털자료로 만드는 이들, ‘글 감옥’에 갇혀서 역사를 집필하는 이들,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내용상의 오류나 왜곡이 없는지 검토하는 이들, 교정보고 편집디자인하고 인쇄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해방 직후 활동했던 선배들 구술 채록
가장 먼저 조선철도노동조합의 조합원이었던 정운창, 유병화, 이수갑 선배가 생각난다. <바꿔야 산다> 편집장이었던 김명환 선배와 함께 구례역에 내려 1946년 구례구분회장이었던 정운창 선배를 찾아갔었다. 정 선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신지 좀처럼 해방 이후 철도 파업을 기억하지 못하신다. 결국 단편적인 몇 가지 사건만 녹취했다. 안타깝게도 너무 늦게 왔다. 다행히도 몇 년 전에 선전팀에서 인터뷰한 내용과 따님 정지아 작가의 『빨치산의 딸』에 그의 삶이 기록되어 있었다.
조연호 선전국장과 대구광역시 수성동의 구옥에 사는 유병화 선배를 찾아갔다. 1947년 9월 총파업과 대구 10월 항쟁 시기 철도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해주셨다. 몇 시간에 걸친 구술작업이 분명 힘들었을 텐데 후배 철도노동자를 위해 꿋꿋하게 말씀해주셨다.
2009년도에 철도노조 명예조합원인 이수갑 선배는 철도파업을 지지하기 위한 국제연대 사업을 위해 노조사무실에 자주 들렀다. 후배들에게 “노동운동이 전체 노동자의 계급적 입장에 서서 투쟁한다는 원칙이 확고하게 서 있지 못하기에 전체 노동자의 지지와 동참을 끌어낼 수 없다”라고 역설했다.
1988년 7.26 파업으로 구속·해고된 세 분 중 이태균 선배는 남도 매화마을의 흙집에서, 김창한 선배는 청송의 사과농장에서 구술받았지만, 채주영 선배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구술을 받지 못했다.
전국에서 보내온 소중한 자료들 분류·정리
철도노조 웨딩홀 계단 밑, 자료실로 쓰고 있던 생협 사무실에 수원역에 근무하는 이찬복 선배가 1989년 발행된 ‘철도사연구회’의 기관지 <철길> 등 소중한 자료를 한 상자 가져왔다. 당시 철도사연구회 총무를 맡았다고 한다. 그 엄혹한 시절을 견뎌온 역사의 흔적이었다. 1994년 파업 때는 영등포전기사무소로, 2000년 공투본 투쟁 후에는 동해남부선의 아오지 괴동역으로 전출당하는 고충도 겪으셨다. 고박사란 별명으로 불리며 구로열차지부의 전설적인 조사부장이었던 고효종 선배는 20년 넘게 보관한 조사연구자료와 각종 신문스크랩 등 자료 여러 상자를 택배로 보내왔다. 그 밖에도 애지중지하던 자료들을 철도노조를 믿고 보내 준 고마운 분들이 많다. 노민추 시절부터 모아 놓은 자료를 14권으로 묶어 놓은 모음집을 주면서 “원본은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던 송호준 실장도 생각난다. 작년에 모음집 원본 대신 철도노조의 모든 소장자료를 스캔한 파일을 주었다.
조연호 국장과 함께 지방본부마다 돌아다니며 창고를 뒤져서 자료가 될 만한 것을 모으고, 컴퓨터에 있는 자료를 복사했다. 케케묵은 먼지가 쌓인 창고는 마치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주요 지부사무실 자료를 수집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서울기관차지부의 신선철 지부장은 지부사무실 창고를 정리할 때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 과정 등의 수많은 회의자료를 버리면서도 아까웠다고 한다. 1996년 범대위 투쟁과 공투본 투쟁 당시 서울기관차지부를 회의 장소와 상황실로 자주 사용했으므로 자료들이 꽤 많이 있었을 것이다.
한내·진보넷 도움으로 아카이브 구축
자주적 민주노조의 입장에서 ‘철도노동운동사’(1993년)를 최초로 쓴 이는 놀랍게도 1994년 전기협 파업의 지도부인 서선원 전기협 의장이었다. 1세대 철도노조 활동가들은 1989년에 ‘철도사연구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기관지를 발간했다. 그들은 철도노조 민주화를 위한 사상적 무기로 ‘철도노동운동사’를 연구하고 학습했다.
철도노조 민주화의 산파 역할을 한 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이철의 초대 의장은 2004년에 조합원 교육자료로 ‘철도민주노조 약사’를 만들었다.
2007년도 엄길용 집행부 시절, 전병배 사무처장이 예비비를 지원해 파일보관함 등을 인쇄해서 철도노조 자료를 분류·보관할 수 있었고, 구술 채록작업도 시작했다. 2009년에는 ‘철도노조 60년사 편찬위원회’를 만들었고, 예산을 확보해서 ‘노동자역사 한내’에 위탁해 노조민주화 이전의 모든 자료를 스캔했다. “이제 이 자료들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한숨 돌렸었다. ‘철도노조 전자도서관’도 만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15년이나 흘렀다. 2024년 백남희 교선실장의 제안으로 최명호 집행부에서 철도노조 80년사 편찬을 결정하고 대의원대회에서 의결했다. 연달아 두 번이나 파업한 집행부라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려운 결단을 했다. ‘철도노조 80년사 편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재식 수석부위원장이 대표를 맡고 백성곤 국장이 부대표, 백남희 실장과 유균 선배가 간사를 맡았다. 전문위원 2명(조상수·김병구)과 각 직종과 지역을 대표하는 편찬위원을 추천받아 총 16명으로 편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200여 명이 넘는 이를 직접 만나서 구술자료집 ‘아! 전기협’과 ‘철도이야기’를 만들어 낸, 간사를 맡은 유균 선배의 역할이 컸다. 철도노조 역대 홈페이지와 그동안 모아 놓은 디지털자료를 정리하고 분류해 ‘철도노조 아카이브’에 올렸다. 철도노조 홈페이지가 그동안 ‘진보네트워크’(현 디지털정의네트워크)를 이용했기 때문에 디지털 자료수집과 아카이브 구축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물론 2009년 스캔한 자료도 ‘한내’의 도움을 받아 모두 업로드했다.
철도노동자들의 여정 담은 『철도노조 80년사』 마침내 발간
철도노조에서는 집필 작업 등 80년사 편찬사업을 ‘한내’에 의뢰했다. 공모 절차를 거쳤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수십 권의 노동조합사를 제작한 ‘한내’가 철도노조 80년사를 집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데 이의가 없었다. 한내는 대표집필자로 1945년부터 1987년까지는 정경원 사무처장, 1988년부터 2024년까지는 황하일 씨로 선정했다. 시기별로 자료가 전혀 없거나, 아니면 분류되지 않은 수천 건의 디지털자료와 문서들만 있었다. 두 명의 대표집필자들은 ‘글 감옥’에서 2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그 덕분에 화보집 포함 총 5권의 역사서가 나올 수 있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편찬위원들도 2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여서 감수하고 토론을 진행했다. 집필자의 초안을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현장에서는 80년사 발간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의 반대도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방대한 분량의 철도노동자 ‘자기 역사서’가 2026년 11월 2일 발간된다.
철도노조는 오랜 역사를 가졌음에도 2001년에야 민주집행부가 들어섰고, 2002년 민주노총에 가입한 늦깎이다.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전평과 전노협의 ‘비타협적 투쟁 정신’과 ‘자주적 민주노조’로 정체성을 세울 수 있었다. 『철도노조 80년사』는 일제강점기의 군산철도노동자회와 철우회 및 경성전차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조선철도노동조합과 4.19 혁명기의 투쟁, 그리고 1988년 이후로 역대 모든 정권에 대항한 파업, 심지어 노무현⸱박근혜⸱윤석열 대통령 임기에는 파업을 두 번씩 할 만큼 투쟁적인 철도노동자들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찾아가는 오랜 여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철도노조 80년사』는 페이지 페이지마다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조합원들의 힘으로 가능했다. 2만 3천여 명의 철도노조 조합원들, 연대한 모든 이들과 함께 발간의 기쁨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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