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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의 독서] 한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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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50회 작성일 26-10-2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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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이창용, <한국어의 투쟁>, 빨간소금, 2025

 


한글의 풍경

 

양돌규(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한글의 위상

 

얼마 전 10월 9일은 100주년 한글날이었다. 한글날은 1926년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가 훈민정음 반포 480돌을 기념해 마련한 ‘가갸날’에서 출발했다. ‘가갸’는 한글을 익힐 때 처음 읊던 ‘가갸거겨’에서 따왔다 한다. 1928년부터 ‘한글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세계적으로 한국어 사용 인구는 2016년 기준 약 8,000만 명이다. 다른 자료에서는 한국과 북한 인구 약 6,700만 명, 중국에 약 200만 명, 미국에 약 180만 명 등이 사용하고 있어 총 7,000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즉 한반도에서 한글을 사용하던 원래 인구에 국외교포 등을 합한 숫자를 한국어 사용자로 전제했고 그 수치를 바탕으로 한글은 세계적으로 12~13위에 해당하는 거대어에 속한다고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최근 한글과 한국어의 위상은 달라졌다. 산업 발전과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고 한국에 방문하는 관광객의 규모도 크게 늘었다. K팝과 드라마, 영화, 문학 등도 글로벌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인터넷-스마트폰-AI로 이어지는 기술 발전은 한글에 대한 접근을 훨씬 쉽게 만들어줬다.

국가적으로도 한국어 교육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은 2007년 몽골 울란바토르에 처음 개설했는데 2026년 현재 전 세계 89개국 273개소에 설치되었고, 2025년 기준으로 수강생 수는 23만 9,020명에 달한다. 세종학당을 통한 누적 학습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뿐이 아니다. 스마트폰에서 쉽게 설치하는 외국어 학습 어플리케이션 ‘듀오링고(Duolingo)’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의 규모는 2024년 6월 기준, 1,770만 명에 달한다.(61쪽) 듀오링고의 2025년 언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어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한 언어 중 6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한국어의 세 요람

 

여기까지가 ‘국뽕’ 차오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면, 이제 그 뒤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풍경이 어떤지 얘기해볼까 한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주요 기관은 ①초중등학교 ②지역과 사회 ③대학 어학당 등이다. 이들 기관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이들이 바로 한국어교원이다.

먼저 초중등학교를 보자. 2024년 이주배경 학생 수는 19만 3,814명이다. 이들은 국적, 이주 경로, 가족 구성, 그리고 생활 배경과 한국어 수준까지 모두 제각각이다.(40쪽) 10년 동안 3배가 늘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다. 이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한국어교원이 충분히 배치되지 않은 가운데서 주먹구구식으로 국어 교사가 이주배경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한 국어 교사는 “국어 교사 정체성에까지 혼란”을 느낄 정도의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국어 교육과 한국어 교육은 대상, 목적, 방법 등이 전혀 다르고 또 한국어를 가르치더라도 그것은 의사소통으로서의 한국어이고 ‘학습 한국어’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지역과 사회를 보자. 한국에는 결혼이민자와 자녀들, 그리고 이주노동자 등이 많이 있다. 이주배경 인구는 265만 명에 달한다. 결혼이민자와 자녀는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가족센터에서, 이주노동자는 고용노동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운다. 또 외국인 등록을 한 이주민이면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울 수 있다.

그런데 2023년 가을, 정부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운영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센터는 한국어 교육도 하지만 노동 법률 상담과 산업 안전 교육도 진행한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30여만 명에 달하는데 전국 9개 거점 센터와 35개소 지역 센터 예산을 하루아침에 다 없애버린 것이다. 윤석열 정부 때 얘기다. 그러나 2025년에도 전국에서 9개 거점 센터만 다시 문을 열었고 예산은 절반만 복구되었다.

예산이 삭감됐든 복구됐든, 기존에 이루어지고 있던 한국어 교육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주민에게 한국어는 ‘배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할 언어’이고 이들의 존엄을 지켜 주는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 대학교 어학당이다. TV에서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뽐내는 수많은 ‘대한외국인’들 중 상당수가 대학교 어학당을 다녔다. 그런데 속사정은 좀 다르다. 한국의 대학교는 유학을 상품화하면서 줄어가는 내국인 신입생 자리를 유학생으로 메우고 있다. 중국,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 네팔, 미얀마 등지에 대학교 홍보를 하면서 현지 유학원은 “한국에서는 일하면서 대학에 다닐 수 있다”고 홍보한다. 유학생들은 1,000만~1,500만 원에 달하는 초기 비용을 들여 한국에 들어와 ‘표준입학허가서’와 ‘비자’를 받고 먼저 대학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다. 그리고 6개월을 공부해 한국어 2급을 마치면 주당 25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유학생은 공부와 일을 다 하려고 하고, 정부 기관 중 법무부는 불법체류를 단속하며, 대학은 오직 유학생 유치에만 목을 매고, 지역에서는 인력과 주민이 늘어나 소멸을 면하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대학 어학당 한국어교원은 학생들을 관리해야 하지만 적당히 풀어줘야 하고, 한국어 공부도 가르쳐야 하지만 너무 열성적으로 가르쳐서는 안 되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정부, 대학, 지역은 교육의 질 대신 생존과 수익을 택했고 비자를 팔고 학위를 판다.(32쪽)

 

한국어교원의 법적 도전

 

한국어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교안을 마련하고 교육을 담당하는 한국어교원 자격증 제도는 2005년부터 마련되었다. 그런데 한국어교원 자격증 소지자 중 실제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은 27.9%, 즉 10명 중 3명이 채 안 된다. 그중 한국에서는 한국어교원 7,000여 명이 활동한다. 이들은 대학 어학당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29.4%, 가족센터 14.4%, 초중등학교 13.9%, 사회통합프로그램 8.2%,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4% 정도다. 이 가운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는 300명도 채 안 된다.(181쪽)

2024년 기준으로 현재 활동 중인 한국어교원은 1년에 평균 430시간 수업을 했고, 1년 동안 번 돈은 1,680만 원이었다. 1시간 수업에 평균 3.9만 원을 받은 셈이다. 또 3명 중 1명은 단기계약(34%)이고 학기나 프로그램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도 18.7%이다. 임금이 낮고 단기계약으로 인해 고용이 불안정하다 보니 겸업 비율은 높을 수밖에 없다. 한국어교원 자격증 2급 소지자의 46%, 3급 소지자의 46.7%가 ‘투잡’을 하고 있다.

이 한국어교원들이 ‘투쟁’이라는 것을 시작한 게 대학 어학당이었다. 많은 대학이 한국어교원을 프리랜서로 취급하면서 연차휴가, 유급휴가, 4대보험과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상의 의무를 회피하고자 했다. 여러 대학 어학당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이에 저항했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 결과 법원은 한국어교원들의 근로자성을 수차례 확인해줬다.

그러자 사용자 측은 한국어교원 노동자들과 주당 15시간 이하 초단시간 계약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초단시간 노동자에게는 유급주휴일(주휴수당), 연차유급휴가, 퇴직금 관련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산재보험만 보장된다. 또 2년을 넘게 일해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어교원 노동자들의 법적 대응은 또 한 번의 승리로 돌아왔다. 2021년 법원은 “주당 수업 시간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업무 처리에 소요되는 시간을 더해 보면 참가인들의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강의 수반 업무 즉 숙제 검사, 작문 피드백, 시험 출제와 채점, 각종 회의와 상담 등이 근로 시간에 포함되게 되었다.

 

한국어 노동자의 투쟁

 

여러 대학 한국어교원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이고 싸워왔지만, 이 책에서는 서울대학교 한국어교육센터 노동조합 사례를 중심으로 경험을 소개했다. 2019년 서울대학교 한국어교육센터 노동자들은 1월부터 고용 안정, 지위 확립,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139일간 피켓을 들고 싸운 끝에 6월에 고용안정 협약에 서명했다. 그 이후 단체협약을 맺기 위해 노력했지만 교섭 단위 분리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이들이 속해 있는 전국대학노조와 따로 단체협약을 맺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노동조합으로 뭉쳐 있는 힘이 있기에 미약하나마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2024년에는 ‘한국어교육센터 내부 수칙(내규)’ 즉 노동법상 취업규칙을 협상을 통해 제정하기도 했다.

한국어교육센터 노동조합의 운영 방식은 독특하다. 조합원 10명 내외로 1개 그룹을 묶고 그룹마다 몇 명이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는데 6개월마다 교체한다. 덕분에 모두 노동조합 일을 경험한다. 상임위원은 각 그룹에서 나온 인원과 대표 2명을 당연직으로 해서 구성한다. 노동조합의 일은 가벼운 건은 대표 둘이 처리하고, 조금 무거운 건은 상임위원회에서 의논해 집행하며 큰 사안은 총회에서 결정한다. 이렇게 하니 대의원과 집행부가 한 몸이다. 노동조합 운영을 대통령제처럼, 즉 집행부가 2~3년 집행하고 대의원들이 이를 견제하는 일반적인 방식과 다른 것이다.

 

대학 어학당에서 전국 노동조합으로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노동조합으로 묶인 한국어교원은 4개 대학 즉 강원대, 경희대, 서울대, 연세대, 노동자들 뿐이었다. 이들 네 학교의 교원은 고용이 안정되고 처우가 개선되었다. 고려대, 국민대, 서강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리기까지는 했지만 끝내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 대학 어학당 바깥의 불안정한 한국어교원들, 즉 초중등학교, 가족센터, 사회통합프로그램,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의 교원들은 고용이 불안하고 인원이 적은 데다 일터마저 흩어져 있어 노조에 가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2022년 한국어교원 관련 연구 사업을 제안했다가 그것이 확대되면서 근로계약서, 취업규칙, 단체협약을 중심에 두고 설문과 인터뷰가 진행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연구 결과, 대학 어학당 열에 아홉이 노동법을 위반했음을 확인했고, 대학 바깥의 많은 한국어교원 노동자들의 계약서는 법적 요건을 지키지 않았으며, 취업규칙은 없다시피 하며 단체협약은 연세대학교 어학당 한 곳뿐이었다.

2023년 9월에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어교원 노동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고 국정감사에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면서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2024년 4월에는 60명이 넘는 한국어교원들이 줌을 통해 만났다. 이 만남에는 전국 각지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참석했다. 그 후 대학노조는 좋지만 한계는 있다는 점, 온라인 노동조합을 통해 한국어교원 직종으로 모이자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2025년 3월 26일, ‘직장갑질119 온라인노동조합 한국어교원지부’ 첫 총회가 줌으로 열렸다. 그리고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가 2025년 11월 공식 출범했다.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가 결성되고서 처음으로 맞닥뜨려 싸웠던 투쟁이 토픽 TOPIK 민영화 반대 투쟁이었다. TOPIK은 한국어능력시험으로 연중 6회 세계 323곳에서 시행하는 시험으로 2024년에는 응시자 수가 42만 명에 달하는 대표적인 메이저 언어 시험이다. 교육부는 이를 디지털 전환 민간투자형 사업으로 추진했다. 한국어교원지부를 비롯해 이주노조 등 80개 단체가 함께 싸워 결국 ‘한국어 상업화’의 길은 저지되었다.

 

한글날 100주년, 한글을 둘러싼 풍경

 

한글날 100주년에 열린 다종다양한 행사들을 살펴보면 한글을 둘러싼 계급적 관점 차이가 자명하다. ‘한글문화산업전’ ‘한글산업 비즈니스센터’ ‘글로벌 한국어’ ‘한글의 세계화’ ‘한글 처리 기술의 발전과 거대언어모델(LLM)’ ‘고품질 한국어 데이터’ 등등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한국어는 돈이 된다. 추천사에서 전남대 백승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 사회는 한국 밖의 손님들에게는 온갖 아양을 떨며 ‘한국어’라는 상품을 팔지만,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어 한국어를 배우는 이주민들은 식당에서 무전취식하는 이들처럼 대한다 (…) 똑같은 한국어 교육이 해외에서는 상품이 되지만, 국내에서는 사회적 비용이 된다 (…) 한국어교원들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로 살아간다.”(6~7쪽)

 

한글을 둘러싼 작금의 풍경은 달라진 한국어의 위상에 마냥 좋아할 것이 아니라는 점, 이 언어를 둘러싼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 역동적인 힘의 흐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이 책은 우리 한국어교원 노동자들의 투쟁기일뿐만 아니라 한국어 교육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안내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한글의 미래가 이주 노동자, 이주배경 학생, 결혼이민자, 다문화배경 사람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한국어가 감정과 생각, 투쟁의 경험을 나누는 매개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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