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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목격한 사회] 식민사회에 드리운 공포 - <오감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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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924회 작성일 23-05-0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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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초상, 1935, 구본웅 작.jpg

 

식민사회에 드리운 공포 - <오감도>, 이상

 

왕의조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원)

 

 

이상 李箱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 1910923일 종로에서 태어났다. 그는 본래 화가를 꿈꿨으나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건축을 전공하고 조선총독부에 취직해 건축 기사로 일했다.

이상은 시인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소설이나 수필, 건축, 그림 등 다양한 부문의 예술 활동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관심을 두었다. 특히 19347월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라는 연작 시를 발표하며 이목을 모았는데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난해하기로 정평이 났으며, 혁신적이고 전위적인 시도를 즐겨하는 아방가르드·초현실주의 예술가로 소개되기도 했다. 아울러 그 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분분한 의견들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활발한 논쟁과 연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견 없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가 스물여섯 해의 인생을 대부분 식민지 조선에서 보냈다는 사실이 그렇고, 그가 스스로 처한 현실을 기꺼이 여기지 않았다는 점 정도가 그렇다. 물론 이상은 조선총독부에서 일했었다는 이유로 간혹 친일에 대한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친일이냐 반일이냐는 문학의 구분방식이 아니다. 이분법적 파벌은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방식으로는 적절하지만, 진실을 가리는 방식으로는 부적절하다. 우리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이상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생애 동안 목격하고 기록한 문학적 사실들이다. 이상은 식민사회의 거리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친일도 반일도 아닌 동네

이토 히로부미는 이렇게 말했다.

백성들에게 국왕의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는 동물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창경궁의 동식물원 건립 공사는 1908년 봄부터 진행되었는데, 대한매일신보는 동물원을 수축할 차로 창경궁 선인문 안에 있는 천년도 넘은 전각들을 허물게 되었다고 보도했으며, 이듬해의 순종실록은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고 개원식을 행하며 일반 사람들에게 관람을 허락하였다.”고 기록했다.

이후 일제는 종묘와 창경궁 사이에 대로를 뚫어 그 뜰에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가져다 심었다. 1926년 봄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사망했고, ‘창경원이라는 명칭으로 격하한 궁궐은 신기한 동식물이 흐드러진 놀이터가 되었다.

인민들은 한껏 들뜬 마음으로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거리를 활보했다. 이상의 예술작품들에는 그런 아이러니의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순종과 이상은 인파로 붐비는 옛 궁궐터를 목격하고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국왕의 은혜도 아니고 민중의 존엄도 아닌. 민족도 아니고 계급도 아닌. 친일도 반일도 아닌 역사적이고 일상적인 그런 동네. 조선의 궁궐터는 그런 동네였고, 호랑이, 기린, , 사슴, 벚나무, 벚꽃과 함께 한 시대는 저물어 갔다. 이상은 그런 동네에서 자라나는 조선인들을 보았다.

식민사회의 일상은 평온했다. 일제의 침탈과 착취도, 항일운동가들의 저항과 분노도, 모두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침탈과 지배는 언제나 평화로운 형식에 힘입어 느린 침묵과 동조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반면 일제는 통치에 저항하는 조선인들을 통칭하여 불령선인이라고 불렀는데, 이상 또한 일본 유학시기에 사상 의혹을 받아 옥살이를 했다. 물론 이후로도 그가 항일운동에 참여했다거나 하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1937년 봄, 폐결핵이 악화하여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무서운 것을 보았고 그를 기록해두었을 뿐이다. 13인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하는데, 첫 번째 아이는 무섭다고 하고, 두 번째 아이도 무섭다더라 (후략)

  

문학의 아이

시간이 지난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믿는 것은 어른들 뿐이다. 어른이라는 표현이 성숙의 증명이라면 그런 생명체의 복합적인 작용이 나이나 숫자 따위로 쉽사리 드러날 리 없다. 그래서 문학의 세계에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주체로 종종 아이들, ()성년의 화자를 내세우곤 한다.

아이들은 무섭다. 아이들이 무서워한다. 그런 아이들이 무섭다. 무서운 아이들이 거리를 쏘다닌다. 어쩌면 이상은 자기가 본 것을 솔직담백하게 기록해놨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아주 오래된 오해에 시달리고 있는 예술가이다. 그의 문학이 때때로 초현실(비가시적인 무의식의 세계)에 기반하는 것처럼 보이기보다는 철저하게 현실의 본질을 꿰뚫고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예술보다 기구하다는 말이 있다. 이상이 비판한 현실은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어른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었음에도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고, 온갖 결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자기가 속한 질서에 쉽게 순응하고 복종한다. 어른들은 그때와 비슷한 이유로 다투고, 인민들은 거리를 쏘다닌다. 인민들이 점점 우매해서도 아니고 통치자들이 점차 악독해서도 아니다.

어찌 되었든 아이들은 자라고, 증식한다. 시간은 가고 어른은 줄어들고 무서운 게 점점 많아진다. 오늘도 13인의 아이들이 도로로 질주한다. 아이들은 무섭다.

 

오감도(烏瞰圖, Crow’s Eye View) 시제 1

十三人兒孩道路疾走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適當하오.)

 

第一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러케뿐이모혓소.(다른事情은업는것이차라리나앗소)

 

一人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二人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二人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一人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길은뚤닌골목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兒孩道路疾走하지아니하야도좋소.

 

 

[그림] 이상의 초상, 1935, 구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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