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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보면] 드라마나 영화가 건네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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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59회 작성일 26-11-0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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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 40여 년 전 계엄군의 헬기 사격 피해자 앞에 가해자가 탄 헬기가 내려앉는 장면.

 

드라마나 영화가 건네는 위로 


이황미(노동자역사 한내 기획국장)

 

1919년 ‘제암리’ 학살 ‘계암리’로 재현

 

발안 장날이던 1919년 3월 31일, 장터에서 1천여 명이 만세운동을 벌였다. 시위가 계속 확산하자 4월 15일, 일본 경찰은 인근 마을의 15세 이상 남자들을 제암리교회에 모아놓고 교회당 문을 걸어 잠근 뒤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렀다.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사람들에게는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23명이 숨졌다. 미국 선교사 등을 통해 참상이 전 세계에 상세히 보도됐다. 여론의 지탄이 거세자 현장 지휘책임자 아리타 도시오 중위는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그러나 일본 군부는 이를 정당한 진압 과정이었다고 왜곡해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후 1982년 9월 29일 문화공보부와 경기도 주관으로 합동장례식을 치르고 희생자들을 순국열사로 추서했다. 교회가 있던 지역인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322-4 지역을 사적 제299호로 지정했다.

 

# tvN 드라마 <100일의 거짓말>(2026.10.10~) = 1932년, 유소란(김현주 분)은 상상 속에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사토 신이치(진선규 분)의 이마에 권총을 겨누고 “계암리를 기억하느냐? 기미년 4월, 니가 내 딸과 조선인 스물세 명을 불태우고 쏴 죽인 곳! 지금이라도 죽음으로 사죄해라”라고 한다. 무장 항일단체 ‘구국단’ 소속 저격수 유소란은 이후 호시탐탐 사토 신이치 암살 기회를 노린다.

 

이 드라마를 보고, 그날 어린 여자아이는 죽지 않았으니 왜곡이라고 할 텐가. 드라마에서는 학살 책임자 사토 신이치의 최후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가해자가 타고 온 ‘헬기’와 맞닥뜨린 피해자

 

전두환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반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 판결받았다. 2018년 2월,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1980년에 계엄군이 시민을 상대로 헬기 사격한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특조위는 1980년 5월 21일과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 인근과 광주천 일대에서 육군 공격 헬기(500MD 등)와 기동 헬기(UH-1H 등)를 동원해 비무장 시민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했다고 밝혔다. 코브라(AH-1J) 헬기의 벌컨포 위협 사격 정황도 확인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광주 금남로에 있는 전일빌딩 9·10층 외벽에서 발견된 245개(이후 추가발견으로 최종 270개)의 총탄 흔적이 헬기 공중 사격에 의한 것이라고 판명했다. 계엄군이 전투기와 공격기에 폭탄을 장착한 채 출격을 대기시켰던 사실도 확인돼 ‘광주 폭격설’도 증명됐다. 당시 발포와 강경 진압의 최고 책임자는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이다. 2020년 12월, 법원 역시 전두환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재판 판결을 통해 광주 도심에서 헬기 사격이 실제로 있었다고 인정했다.

 

# SBS 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2026.10.9.~) = 6화(10월 24일 방영분)에서 계수정(김지원 분)과 동료들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오상범(하성광 분)을 만나 수술을 권유한다. 상범은 5·18 당시 헬기 사격으로 형을 잃고, 자신의 머리에 파편이 박힌 채 40여 년을 살았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상범은 병원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헬기’에 실려 온 가해자, 전 대통령 ‘지두석’(이진숙은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뜻밖에 날카롭다)과 마주친다.

 

10월 25일 ‘국회전자청원’ 홈페이지에 “정치적 내용이 들어가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한다며 ‘드라마 방영 중단에 관한 청원’(청원인 임**)이 올라왔다. 11월 3일 현재 동의 수는 1,314명으로 확인된다. 청원인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고 이로 인해 좌우의 대립을 이끌어 낸다면 드라마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고증의 영역인 고대사가 아닌,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공격이 최근에는 유례없이 집요하고 지독하다. 그 공격의 최선두에 정치인들이 있다. 여러 개의 큰 마이크를 보유한 정치인들이 근거 없는 공격을 거세고 거칠게 쏟아낸다. 그리고 스피커로 흘러나온 ‘소리’들을 언론은 “논란이 되고 있다”는 식으로 다 받아 적는다. 이에 현혹되어 따르는 대중이 생기는 것이다.

국회의원 이진숙(국민의힘)은 페이스북(2026.10.26)에 “〈닥터X〉는 의학 드라마를 표방했고, 시청자는 그 약속을 믿고 TV를 켰”는데 “시청자와의 약속도 저버렸다”고 주장한다. “드라마를 특정 정치세력을 겨냥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라고도 썼다.

그러나 1980년 5월 민중항쟁은 진영 간 의견이 엇갈리거나 논쟁 중인 사건이 아니다. 사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판단이 끝난 ‘역사’다. 드라마로는 <모래시계>(SBS, 1995)부터 <오월의 청춘>(KBS, 2021)까지, 영화는 <꽃잎>(1996), <박하사탕>(2000), <스카우트>(2007), <택시운전사>(2017) 등 5.18 민중항쟁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차고 넘친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20)는 2024년에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국가폭력 다루는 문학 작품이 주는 위로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문학 작품에서도 5.18 민중항쟁을 비롯한 국가폭력 사건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이유는 그렇게나마 희생자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고자 함이다. 또 가해자의 은폐 시도에 맞서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 후대까지 진실을 전하고자 함이다. 그렇게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역할을 제기하고 서로를 다독이며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 난사로 백남기 농민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2016년 9월 25일 사망했다.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는 사망진단서에 ‘병사’라 기록했다. 의사들이 스스로 만들어 2015년 3월 발표한 ‘진단서 등 작성·교부 지침’은 사망의 종류를 크게 병사와 외인사로 나눈다. 외부의 위력으로 상태가 악화되고 사망에 이르렀다면 ‘외인사’로 규정해야 한다. ‘병사’라는 기록은 국가폭력을 은폐하고자 하는 시도가 명백했다. ‘진단서 작성 지침 위반’과 ‘외압’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가 터져 대통령이 탄핵됐고, 서울대병원은 2017년 5월 15일에 사망 종류를 ‘외인사’로 정정했다.

 

#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016.11.7~2017.1.16) = 집단 구타 피해자로 의심되는 탈영병이 돌담병원 응급실로 실려와 수술을 받았지만 사망했다. 거대병원 도윤완(최진호 분)은 군대 내 집단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 사실을 숨기기 위해 외과 전문의 강동주(유연석 분)에게 거대병원 본원의 부과장 자리와 파격적인 연봉 계약서를 미끼로 가짜 사망진단서(‘병사’ 처리)를 작성하라고 압박한다. 성공에 집착하던 강동주는 고심 끝에 ‘외인사’로 적어 넣음으로써 양심을 지키고, 출세가 아닌 ‘환자’의 고통과 생명을 최우선에 두는 의사로 성큼 성장한다.

 

당시 드라마는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을 떠올리는 많은 시청자에게 깊은 울림과 위로를 건넸다.

 

진실한 역사를 외면하는 자들, 처벌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 지배 세력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저질러 온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는커녕 결론이 난 역사적 진실까지 뒤흔들며 왜곡을 시도한다. 그들은 도리어 실제 존재하는 사물, 인물, 사건 등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분석해 보여주는 ‘다큐’ 형식에 거짓을 담는다.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올공 2030 나라를 살리다>(2026), <왜(歪) : 더 카르텔>(2026), <부정선거 : 신의 작품인가>(2025) 모두 다큐멘터리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미화한 <건국전쟁1․2>(2024․2025), <기적의 시작>(2024),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2024)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는 배워야 한다. 역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교과서가 아니라 역사를 소재로 만든 창작물이다. 극적인 긴장감과 재미를 위해 인물과 사건을 각색하고 상상력으로 채운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탄탄한 고증을 거치면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역사를 제대로 배워 바르게 알고 보면 잘못된 고증을 알아차릴 수도 있고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할 수도 있다. 올바른 역사교육은 이토록 중요하다.

지난 10월 27일, 5·18 민중항쟁이 북한군이 개입해 일으킨 폭동이라는 등의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게시해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또다시’ 훼손한 지만원이 구속됐다.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혹은 올바른 역사를 외면한 자의 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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