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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의 독서] 노가다 칸타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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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1,282회 작성일 23-06-2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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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홍, <노가다 칸타빌레>, 시대의창, 2021

 

 

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흔한 이야기가 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이 등장하고 어떤 사람이 지나간다.

뒤에서 수군대며 어린 아이한테 귓속말로 콕 쏘아댄다.

너도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어떤 사람자리에는 주로 노동자가 등장하는데, 불리는 이름은 제각각이다. 노가다, 공순이, 공돌이, 청소부, 운전수, 파출부 등등. 너무 흔한 이야기라서 클리셰라 할 수도 있겠고, 요즘 누가 그런 말을 대놓고 하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3년 전 어느 수학 강사가 유튜브에서 수학 강사 7등급, 용접 배워서 호주 가라.”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건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이 비슷한 숱한 말들이 오늘도 공기중으로 흩어지고 있을 거다.

그 비하의 용어 중 하나인 노가다를 긍정하는 한 사람의 책이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엔 환한 대낮에 퇴근하는 건설노동자의 모습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려나.

 

 

저마다의 이름이 모여 내는 하모니, 노가다 칸타빌레

 

서른둘에 이혼한 저자는 기자와 출판컨텐츠 기획을 하던 과거를 뒤로 하고 이 다양다종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복닥대는 공사판에 잡부로 처음 뛰어들었다. 현장 용어 한마디도 못 알아듣고 기술도 뭣도 없으면서 적응하고 돈 벌어가며 공사판에 적응해 간다. 인력사무소에서 10% 소개료를 떼이고 봉고차 타고 가던 잡부를 시작으로 목수, 미장, 철근 데모도도 하고, 빌라 짓는 현장에도 나갔다가, 직영 잡부를 거쳐서 마침내 형틀목수가 되기까지 지난하고도 좌충우돌하는 시간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1부는 하나의 성장기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픽션도 아니고 그러니 서사만 있는 것도 아니다. 무릇 적응기라 함은 숨을 죽이고 눈을 움직여 주변을 잘 살피면서 한 명 한 명을 관찰하고 자신의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시기이다. 그 관찰의 결과가 책 2부에 가지런하게 담겨 있다.

건설 노동자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공사판에서 일한다고 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긴 어느 노동 현장이나 다 그렇다. 자동차공장에 컨베이어 타는 조립공만 있지 않듯이, 신문사에 기자만 있지 않듯이, 병원에 의사 간호사만 있지 않듯이, 학교에 교사만 있지 않듯이 말이다. 건설 노동자들도 그렇다. 각자 맡고 있는 일이 다르고 공정이 다르고, 그에 따라 공구도, 일하는 스타일도, 입성도 다르다. 받는 돈도 다르고.

그런데도 이 사회는 그들을 한 덩어리로 싸잡아서 부른다. . . .

저자는 노가다라는 호명을 부정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 호명을 받아들이면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당하고 자부심 있는 주체로 긍정한다.

그러면서도 이 각각의 노동에 대해 공평하게 가치를 찾아주고 이름을 되짚어준다. 노가다는 다 같은 노가다가 아니고 고유한 자기만의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가장 백미이자 재미나고 감동적인 부분도 어쩌면 이 부분이었다. 내장목수, 용접공, 직영반장, 곰방꾼, 미장공, 철근공, 비계공, 지게차 운전자, 해체 정리꾼, 형틀목수, 핀아줌마, 먹아줌마, 못아줌마,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일과 노동과 사람됨을 그리고 그 가치를 이야기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시멘트, 벽돌, 타일을 지고 나르는 곰방꾼을 얘기하면서 건축은 중력에 지지 않게 견고하게 건물을 세워내는 일이고 노가다의 본질도 중력과 싸우는 것이라며 이런 맥락에서 곰방은 노가다의 본질 중에서도 아주 퓨어한 본질이라 말한다. 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굳어버리는 시멘트를 펴바르는 미장공은 시간과 싸우는 사람이고 물로 시간을 사서 그 시간만큼 벽을 평평하게 다져나가는 사람이라 한다. 비계공은 암벽등반으로 보자면 제일 먼저 맨몸으로 올라가 로프를 내려주는 사람인데,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말장난 같은 이 아이러니가 비계공의 숙명이라 말한다.

이렇게 각각 고유한 가치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건물을, 거대한 단지를, 다리와 항만과 시설을, 도시를, 나라를 만든다. 이 시간은 칸타빌레’, 노래하듯이때로는 불협화음도 냈다가 아름다운 하모니로 어우러지기도 하는 그런 시간이고 그런 노동이다. 노가다가 만들어내는 이 연주의 결과 위에서 우리는 먹고 자고 사랑하고 노동하고 쉬고 자고 살아간다.

 

 

죽음을 넘어서기 위한 조직적 방편, 노동조합

 

공사 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살면서 시를 쓰던 건설 노동자 시인 김해화는 자신의 연작시 중 하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아무도 죽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그날 / 뜬금없이 니가 죽었다 / 공장에서 손가락 잃고 고깃배를 타다가 / 흘러온 공사장 / 니 말대로 X같은 세상을 살다가 / 쌓인 분노 터뜨려 싸움 한 번 못 해보고 / 우리들만 무너뜨리고 / 우리들만 쓰러뜨리고 / 스물 세 살 니가 죽었다 (중략) 그날 / 식어가던 너의 가슴은 / 캄캄하게 무너져 가는 죽음이 아니라 / 분노의 시작이었다 / 뜨겁게 내딛는 우리들 사랑의 / 눈부신 첫걸음이었다" (김해화, [인부수첩8], <인부수첩>, 실천문학사, 1986)

 

지금이나 그때나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죽을 뻔하기도 하고 살 뻔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 죽음을 비일비재하게 겪었지만 아직 건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치기 훨씬 전의 이야기다. 사는 건 어려웠지만 죽는 건 가까이 있었다. 동료의 죽음이 시인에게 "뜨겁게 내딛는 우리들 사랑의 / 눈부신 첫걸음"이었을 지 몰라도 희망이라 하기에 조금은 막연했던 것 같다. 건설 노동자들이 그 희망을 세워내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9876월항쟁과 789노동자대투쟁을 지나갔다. 1988년 서울건설일용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이듬해 전국 11개 지역 노조가 모여 전국건설일용노동조합이 세워졌다. 1989년에는 송배전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곳곳에 대규모 신도시가 세워지고 흥청망청 소비사회라던 1990년대를 지나자 IMF라는 난리가 났다. 서울역 등 역사마다 드러누운 노숙자들 상당수가 건설노동자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리고서 다시 조금씩 경기가 회복됐다던 때, 드디어 건설노동자들이 조금씩 더 조직되기 시작했다. 토목건축, 타워크레인, 건설기계, 전기 각 분야별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조직되고 더 크게 뭉쳐갔다. (황하일, <전국건설노동조합 경기중서부건설지부 25년사>, 한내, 2019)

그렇게 노조로 조직된 건설노동자들이 30여 년 넘게 싸웠어도 여전히 죽음은 가깝고 사는 건 힘들다. 2022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죽은 사람은 모두 838명이다. 그 중 건설노동자는 50~60%가 넘는다. 전체 산업 노동자 가운데 건설 노동자 비율은 16%가량 밖에 안 되는데,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건설 노동자인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들. 중대기업처벌법으로 해결될 리 만무하다. <노가다 칸타빌레> 저자 송주홍의 말마따나 근본적인 원인은 불법 다단계 하청 구조이고 그 한가운데에 일용공 노가다들이 죽음 곁에서 매일을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부와 저 정부의 노동자 때려잡기

 

어떤 사람들은 노가다판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건설사라는 게 일이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데 항시적으로 사람을 쓸 수는 없고 그러니 하청에 하청을 주면서 일용공을 갖다 쓰는 거라고. 그러니 노조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고용이나 유지시키는 거라고. 구조를 바꾸는 건 멀고 어려운 일이니 이 현장, 저 현장에서 노조가 교섭해서 단체협약을 맺고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그런데 노조는 원청과 단체협약을 맺었다. 2000년을 시작으로 2003년이 되면 전국적으로 치열하게 번져나가 300여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이 체결된다. 이는 불법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원청의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다. 2003년부터 3년동안 검찰은 금품수수 공갈협박 혐의로 건설노조 간부들을 28명 구속시켰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또 한번 리바이벌 되는 검찰의 건폭쇼, 망나니 칼춤이다.

맨앞에서 앞장 서서 건설 노동자를 때려잡는 게 바로 이 나라 정부다. 이 정부, 저 정부 할 것 없이 다 그래 왔다. 이 야당이 그 여당이 되고 그 여당이 이 야당이 되었어도 그랬다. 일자리 확보하기 위해 교섭하자고 외치는 게 폭력이고 협박이라고.

20233,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건설현장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특별단속중간 성과라며 2,863명을 적발해 2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그러면 노조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구조를 바꾸지도 말고 일자리를 확보하지도 말고 죽음을 막지도 말고 뭘 어쩌란 말인가? 불법하도급에 하청에 하청 구조, 일용직 떠돌이로 주면 주는대로 오늘은 나오지 말라고 그러면 집에 쳐박히고 그렇게 살아야 하나?

 

 

노동자가 바꾼다

 

그러면 전세계가 다 이런가? 다른 나라 건설사도 일이 항시적으로 있지 않으니 필요할 때마다 일용공을 갖다 쓰고 하청에 하청으로 떠넘기겠네? 하지만 다른 나라 고용 구조는 그렇지 않다.

2016년 자료를 보면 한국의 건설업 노동자 중 일용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76.4%에 이른다. 이미 유연화가 충분해 더 이상 유연화 할 도리가 없을만큼 유연하다.

노가다판이 다 일제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하는데, 일본도 비슷하려나? 아니, 전혀. 일본의 경우 건설업 총 취업자 중 비정규직은 12.8% 수준이다. 건설업 노동자 중 87.2%가 정규직이라는 얘기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다. 스웨덴은 92%, 독일은 90%가 정규직이다. 독일은 일용직 고용을 금지하고 있어서 나머지 10%도 기간을 정하여 계약한 기간제 비정규직이다. (박인석, <건축이 바꾼다>, 2017, 마티)

우리 구조가 이상한 거라면 우리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다른 나라가 바꾸었다면 우리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다고 바뀌지는 않는다.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으면 이 야당과 저 여당은 그저 건폭 때려잡는 놀음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것 같아도 노조가 있음으로써 현장의 변화들이 있다. 그건 조합원들이 더 잘 안다. 정권 차원의 탄압에도 건설노조가 와해되지 않는 이유다.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도 바뀐 게 없는 것 같아도 또 조목조목 살펴 보면 큰 변화의 한가운데 늘 있었다. 건설 현장도 그렇다. 한국 경제에서 건설업의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건설 투자액은 늘었다. 그리고 건설업 내부에서는 토목에 비해 건축, 즉 집을 짓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졌고 그 중심은 민간 부문 건축시장으로 바뀌었다. 국가와 공무원이 명령하면 일사불란하게 도로, 다리, , 터널 같은 걸 만드는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

다는 얘기다. (박인석, 앞의 책) 대형 건설사 배만 불리는 산업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작은 건축물들, 즉 빌라 단독주택 도시형 생활주택 같은 건물들을 짓는 소형 건설사의 비중이 커져야 하고, 그럴수록 노동자들이 기술자로 인정받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드라마나 외국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빌더로 등장인물이 된다는 얘기겠다.

노동시장이 달라지고 있고 무엇보다 초고령화가 진행중이며 거시적으로 인구학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옛날처럼 차별하고 때려잡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 구조를 온존시키는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는 변화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도배사가 된 청년 이야기가 회자된 적도 있었다. 일류대를 나와 사회복지 노동자로 일하다가 도배사로 전업한 이야기(배윤슬, <청년 도배사 이야기>, 궁리, 2021). 방송도 탔다. 그런데 그 비슷한 스토리는 은근히 건설 현장이든 어디든 찾기 어렵지 않다. 산업구조가 바뀌어 가고 있고 그에 발맞춰 노동자의 주체성도 바뀌고 있다. 직종별 직업별로 자부심을 찾고 긍지를 가지는 일이 노동자의 힘을 세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 일도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못지 않게 긍정적이고 자신에 찬 동료 노동자로 서로 함께 거대한 희망의 코러스를 부르는 날이 매일 다가오고 있다. 자본에겐 장송곡이 되기를.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전국건설노조 양회동 열사가 서울대병원을 떠나 마석 모란공원 장지로 떠났다. 아직 탄압은 끝나지 않았고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싸움의 이전과 이후는 아마 무엇이든 달라져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노동자들이 이 눈물만큼의 긍지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쭈그리고 앉아 철판을 다듬다가 / 깨끗하게 철판을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 더 뚜렷하게 떠오르는 / 울퉁불퉁한 세상을 본다 / 내가 들고 있는 그라인더로는 / 도저히 갈아 없앨 수 없는 / 단단한 요철 // 만일 / 우리들이 뭉쳐져서 거대한 그라인더의 날이 된다면 / 세상의 소용없이 불거진 것들을 / 갈아 없앨 수 있을까 / 울퉁불퉁한 세상을 / 깨끗하게 다듬을 수 있을까" (김해화, [인부수첩23], <인부수첩>, 실천문학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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