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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내레터

[다섯 시의 독서] 밑바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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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1,130회 작성일 23-07-2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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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jpg

 

김수련, <밑바닥에서>, 글항아리, 2023

간호사의 밑바닥, 우리 노동과 감정의 밑바닥

 

 

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일못러와 일잘러

 

나쁜 놈은 용서가 돼도 일못러는 용서가 안 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도 함께 웃었다. ‘일 못하는 사람일못러로 줄인 센스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쁜놈 이를테면 폭행범과 비교해도 용서할 수 없다는 그 과장이 약간은 억지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도 일못러들과 같이 일하면서 속 답답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럴 때마다 답답허네~’를 습관처럼 되뇌었으니까.

그러면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 일잘러인가? 잘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다. 최소한 못하지는 않는다고 자위했다. 혹시 남들이 나를 일못러로 여기지 않나? 저으기 염려되기도 한다. 이건 뭔가? ‘일못러’, ‘일잘러라는 말들의 효과가 아닐까? 스스로의 생산성을 스스로 규율하고 체크하고 더 향상시키거나 능력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채찍질하도록 만드는.

그래서일까? 요즘 스마트폰에서 자주 쓰는 인기 어플리케이션들은 죄다 생산성앱이다. 시간 관리를 하고, ‘투두 리스트 to do list’를 만든다. 노션 notion으로 일기를 쓰거나 루틴 해빗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강제로 죄수들을 태웠다는 트레드밀을 한국에서는 흔히 러닝머신이라고 부른다. 이제 우리는 돈을 내가면서 아침저녁으로 죄수들이 탔던 그 기계를 탄다. 그것도 모자라 무한 계단 기계를 오르면서 그 기계에 천국의 계단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오르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 등산을 하다 보면 천국에 도달할 수 있을까? 자는 시간조차 갤럭시워치나 애플워치 같은 웨어러블로 체크해 가며 수면의 길이와 질을 평가하기도 한다. 김남주의 싯구절, “꿈속에서도 모두의 미래를 위해 투사적 검토로 전략과 전술을 걱정했다<전사>의 한 구절이 자본식으로 되살아나 스스로 자본의 전사로서의 24시간을 꽉 채운다. ‘내 높은 생산성을 위해 나는 잠조차도 최선을 다해 자야 한다는 식이다.

 

 

김수련이 대신 쓴 박선욱의 일기

 

이 책의 제목은 <밑바닥에서>이다. 밑바닥이라니? 무균실 같은 하얀 빛이 쏟아지는 병원, 새로 지은 건물의 햇살 쏟아지는 커튼월이 있는 병원 간호사가 책 제목으로 왜 이런 제목을 쓴 것일까?

신촌 세브란스병원 암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약 7년 근무했고,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대구의 코로나19 중환자실에 파견되어 근무했으며,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운영위원이고 현재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파견 인력이면서 미국 적십자 재난 의료팀 멤버라는 저자의 이력. 이 빵빵하고도 그럴싸한 이력이 무색하게도 책을 펼치면 50여쪽이 넘도록 장황하고도 상세하게 간호사의 노동, 아니 저자 자신의 노동이 펼쳐진다. 누구나 처음은 일못러일 수밖에 없는데, 그 일못러의 경험이 우리를 어디까지 밑바닥으로 데려가는지 촘촘하게 그려낸다.

딱하디 딱하고 서툴디 서툰 노동의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다.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때부터 무수한 실수와 허둥댐과 자학과 참혹함과 초라함과 불행과 불안과 어쩔 수 없음과 놓침과말줄임표로 다 담길 수 없는 일못러의 시간이 이어진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주치의와 선배 간호사, 레지던트, 협진 보는 진료과, 교수 등의 반응과 화와 질문과 타박과 경멸과 짜증이 따라붙는다. “그걸 왜 설명해요?” “너 알람 안 봐?” “네 환자잖아.” “오더대로 해요.” “빨리 말해요 빨리” “아이씨” “어쩌라고요” “너 거기서 거치적거릴 거면 나가.” “죄송하다면 다예요?” 말줄임표와 따옴표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을 그녀는 선배들이 화라도 내는 날이면 나는 차라리 내 뺨을 때려줬으면 싶었다.”고 토로한다.

중간중간 모르는 의학 용어들도 나오지만 그런 거 모르고도 <닥터 김사부> 같은 메디컬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그저 눈으로 쫓아 저자의 노동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숨막히고 고되고 그야말로 돌아버리겠는 간호사의 일상에 답답해진다. ‘밑바닥이라고 쓰고 전쟁터라고 읽을 수밖에 없는 현장의 내밀한 속살을 보니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밑바닥이란 필시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는 참호 안인 것 같다.

1991년에 태어났고 빼어날 수()에 단련할 연()자를 쓴다는 저자 김수련은 그렇게 1부에 자신의 7년 노동을 아니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연속되던 하루하루를, 어떻게 죽을지 계획을 세우던 풍식의 시간을, ‘강바닥같은 죽음을 열망하게 만들며 자신이 쉰 들숨을 아까워하게 한 태움의 기억을 꽉꽉 채워넣었다.

그리고 나는 박선욱 간호사보다 먼저 죽었을 수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박선욱은 또 누구인가? 2018215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박선욱은 입사 6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간호사의 혹독한 근무 실태와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적으로 조망받았고 산업재해로 판결받았다. 저자는 죽지 않았고 아직 살아2020년 박선욱 간호사 민사 재판에서 프리셉터 제도와 현재의 한국 의료 현실에 대해 진술했다.

 

 

에세이의 무게

 

이 책은 1부가 압권이다. 저자는 1부가 내용에 자책과 자괴감이 무겁게 담겨 있어 일부 독자를 힘겹게 할까봐 우려되니 그런 분은 건너뛰라고 안내했지만, 이 책은 1부가 중요하다는 점을 꼭 말해둬야겠다. 이 책의 주제가 담긴 3장은 어찌 보면 다 부연 설명 같은 거다.

1부를 공들여서 읽은 이유는 이렇다. 노동조합사를 쓰다 보면, 바쁘다. 내가 바쁜 게 아니라, 한정된 책 300~400여 쪽 안에 이 얘기, 저 사건, 이런 구조, 저런 형편을 담다가 보면 깊이 있고 내밀한 조합원 개인의 마음 속까지 담아낼 수는 없다. 그래서 건조하고 딱딱한 책이 되기 쉬운데, 가급적이면 인터뷰나 날 것의 자료를 그대로 실어서 그 목소리를 담기도 한다. 그래도 한계가 있다.

어쩌다 보니 병원 노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간호사들의 노동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간호사가 아니고, 병원에 입원조차 해본 적이 없으며 문병도 거의 가본 적 없다. 간호사의 구체적 노동이 노동조합의 기록과 포개지면서도 비껴나는데 하물며 개인과 조직의 간극도 있다.

그럴 때 난 에세이를 읽는 편이다. 각자 자기 직업 세계를 들려주는 에세이는 타인에게 다른 세계를 접하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사소함이 있다. 그 사소함을 위해 노동조합도 있고 노동운동도 있는 것이니, 그 사소함을 잘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 사소함이야말로 목숨 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태움의 메커니즘, 직장 내 괴롭힘의 진짜 주범

 

그런 점에서 이 책의 3부에 담긴 분석과 주장, 대안은 1부에 담긴 그런 구체적 현실을 바꾸기 위한 방편이라 하겠다. 이런 거다. 한국의 의료는 사립 대형병원이 꽉 잡고 있는데, 이들은 돈벌이만을 추구하고 있고 그래서 의료 인력, 특히 간호사들 인원 충원을 하지 않는다. OECD 평균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은 1인당 6~8명이고 미국은 간호사 1인당 5.3명의 환자를 본다고 한다. 한국은? 한국 종합병원은 간호사 1인당 환자 16.3, 일반 병원은 43.6명이란다. 와우!! “사람 안 죽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

사태가 이러하니 간호사는 모자라고 일은 빡세다. 일이 힘들고 고되니 간호사들이 그만둔다. 간호대학을 나와 병원에 취직한 간호사들이 잠깐 일하고 그만두니 경력 있는 임상 간호사의 수가 현저히 적고 간호사의 연령대가 어리다. 그러다 보니 병원 현장은 단순히 인력이 부족하기만 한 게 아니라 훈련도 부족한데 정부는 간호대학을 증설해 더 간호사를 양성해 투입하겠다고만 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간호사들은 고요한 사직을 계속했다. 그 결과 한국은 간호사 면허자의 50%는 유휴 인력이다.

이 상황에서 이른바 태움 문화가 만들어진다. 프리셉터-프리셉티라는 선배 간호사의 신참 간호사에 대한 도제식 교육 시스템이 굴러가는데, 이게 잘 굴러갈 리가 없다.

인력 부족, 과중한 노동, 후배의 실수를 다 책임져야 하는 선배, 교육 수당도 없고 계속 실수하는 후배, 교육할 시간도 짬도 없는 일과 시간, 죄책감을 느끼는 후배와 윽박지르고 괴롭히며 가해하게 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선배, 이 가운데서 고용을 확충하지 않는 병원의 책임은 증발되고, 이런 도제 시스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성장한 간호사들이 훈련 받은 간호사로 경력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만둬버리고, 다시 간호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간호사들이 입사해서 배정받고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악순환을 1인칭으로 그려낸 것이 1부였고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한 게 3부인 셈이다.

태움 문화의 본질은 직장 내 괴롭힘이고 그 원인은 이러한 병원 노동의 구조와 대형 병원 자본의 탐욕에 있다. ‘일잘러일못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일못러는 자책과 자학을 거듭하다가 죽음을 욕망하는 지경에 내몰릴 때, 우린 그 런닝 머신또는 그 천국의 계단에서 내려서야 한다. 그리고 이 생산성이 누구를 위한 생산성인지, 도대체 일 잘 하는 사람이 일 못하는 사람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시간이 우애와 협력의 웃음이 꽃피는 시간이 아니라 왜 누군가는 침대 밑 같은 어둠의 심연과 마주해야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불안에 떨어야 하는지 되물어야 한다.

 

 

진짜 우애와 진짜 협력의 밑바닥

 

코로나19 때도 노동조합은 인력 확충 등을 주장하며 쟁의에 나섰다가 파업 직전에 멈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올해 이 여름,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는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83.07%라는 높은 투표율과 91.63%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파업이 가결되었고 이틀 간의 파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122개 지부 140개 사업장의 6만 조합원 중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유지업무 인력을 제외한 45천여 명이 파업에 나섰다. 노동조합은 7가지 요구안 중 두 가지 요구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제도화와 적정인력 기준 마련, 의사 인력 확충을 꼽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파업을 지지하면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간호사회는 연간 3만명 가까운 숫자의 간호사가 배출되어도 고강도 간호노동을 감당하지 못하고 1년 내 간호현장을 떠나는 신규간호사가 절반이 넘는 현실이라면서 법제화를 통해 적정한 보건의료인력을 배치하고 이를 위반하는 의료기관은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호사들 사이의 이른바 태움 문화라는 직장 내 괴롭힘의 진짜 주범은 돈벌이 밖에 모르는 병원 당국의 비용 절감과 인력 미확충 때문이다. 이를 해소해가는 투쟁의 과정에서 간호사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은 해소되어야 한다. 노동자들 내부의 격화된 경쟁 체제를 지양해 가는 운동의 과정에서만 진짜 우애, 진짜 협력이 꽃피울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악마 같은 개인들의 괴롭힘에 대해 알고 있으며 나에게도 몇몇 경험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그 대부분은 비난할 데 없는 버거움과, 그 숨막히는 버거움과 그 버거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내력이 평균보다 모자란, 구석에 몰리면 아주 못돼지는 어떤 사람들의 사례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어떤 부분을 이해한다.”고 했다. 이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 태움을 견뎌내고 간호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비록 우리의 밑바닥이 힘들고 각박하더라도 이 박토에 뿌리를 내리고 어깨를 겯고 설 때만이 우리는 그 악마 같은 괴롭힘조차도 빼어남을 단련할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아주 못돼지는 사람조차 구석에 몰리지 않는 노동의 세계, 넉넉한 밑바닥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밑바닥이 넉넉해지지 않으면 세상은 바뀐 게 아니니까. 밑바닥까지 바뀌어야 진짜 바뀐 거니까.

 

 

[사진]청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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