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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목격한 사회] 절망과 싸우는 시, 혁명을 촉구하는 시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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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1,418회 작성일 23-08-2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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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jpg

 

왕의조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원)

 

 

앞으로 다가올 경제 위기를 가장 자신 있게 막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씩씩한 정치가들이 국회 안에는 산더미같이 와글거리고 있는데 바깥의 현실은, 비근한 예가 경북 교조(敎組)*나 경방(京紡)* 파업 문제 같은 것만 하더라도 당국의 태도는 여전히 빨갱이를 대하는 태도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 (중략) 국무총리를 신파(新派)가 잡든 구파(舊派)가 잡든 우리들의 관심은 그런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총신경은 진정한 민주 운동을 누가 어떠한 구실로 어느 정도까지 다시 탄압하기 시작하느냐의 여부에 쏠려 있다. *교원노조 *경성방직

 

김수영, <치유될 기세도 없이> , 1960.8.22.

 

 

김수영 시인은 1921년 종로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하에 어린 시절을 보냈고 청년시기에는 징집을 피해 만주로 이주해 연극에 몰두하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그는 한국전쟁 시기에 북한 의용군으로 징집당해 탈출을 감행하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청년기를 보냈다. 영어와 글쓰기에 능통했던 그는 주로 통번역일이나 양계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고 조금씩 시작활동을 병행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20세기의 격랑을 몸소 겪으며 시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형성했다. 특히 4.19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본격적인 시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의 시에는 전통이나 관습 그리고 권위주의를 배격하는 모더니즘의 사조가 깊게 깔려있으며 무엇보다도 한국의 비극적인 현대사가 촉구하는 혁명적인 의지의 궤적이 표현되어 있다. 김수영은 이 사회에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듯하다.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리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도

거리를 걸을 때도 한담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김수영, <... 그림자가 없다> , 1960.4.3.

 

 

수많은 혁명가들은 그들이 지나치게 이상적이었다는 이유로 비난받거나 불온시 되었다. 하지만 김수영의 적은 흔한 정부나 위정자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김수영은 체제에 포위된 '일상'과 침묵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공세보다 포악한 일상을 감각했다. 우리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경도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자본주의에 홀렸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지배적인 사상이나 이념이 차지하는 권력의 위상이란 그토록 유구하다. 따라서 김수영의 시 세계에서 화자는 언제나 싸우고 있다. 그가 처한 정세와 환경이, 그리고 이 공동체의 질서가 혁명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1965.12.

 

 

이를테면 인민의 절망은 그런 것이다. 삶이 쉽사리 나아질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절망에 대처하는 시인의 자세는 다른 데에 있다. 수치심을 되새기는 것이다. 분노와 슬픔은 쉽고, 성찰은 어렵다. 타인을 책망하기는 쉽고, 자신의 책임과 연대를 반성하기는 어렵다. 김수영은 혁명과 저항의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 대부분을 관통하는 정서는 수치심이다. 그가 느끼는 수치심은 1차적으로는 소시민적이고 비겁한 자기 존재를 객관화하는 과정이지만, 더 나아가서는 사회나 체제의 본질을 목격하고는 거기에 가담한 스스로를 통렬히 꾸짖는 절규에 가깝다. 그의 세계에서 대부분, 범인은 자기 자신이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 1960.10.

 

 

혁명은 절망의 대안이다. 혁명적 상상력은 무도하고 각박한 사회현실에 근거한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는 어쩌면 인류 역사의 가장 오래된 구호일지도 모른다. 혁명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낭만적인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을 억압하는 모든 차별과 부조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이 그 말에는 담겨있다. 그러나 혁명의 목표는 거악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지배적인 윤리를 재검토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김수영식으로 말하자면, 제대로 절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절망할 것인가?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김수영, <절망>, 196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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