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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의 독서] 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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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1,734회 작성일 23-09-2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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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투쟁기.jpg

우춘희, <깻잎투쟁기>, 2022

 

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한국인, 요컨대 깻잎을 먹는 사람들

 

입맛에 국경이 있을까? 인간들은 대체로 비슷비슷한 걸 먹는 것 같고,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워 기후와 물산이 비슷한 사람들은 더 그런 것 같다. 이를테면 한중일이 그렇다. 모두 장을 담그고 쌀을 주식으로 삼으니 먹는 게 비슷하다. 조금 더 범위를 넓혀 범아시아의 해안을 봐도 그렇다. 역시 쌀을 먹고 젓갈을 담그고 그걸 베이스로 음식을 한다. 그러니 아시아에서 한국만의 그 어떤 오리지널리티가 있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기에는 살짝 저어된다. 먹는 방식을 갖고 말하는 건 어떤가? 이것저것 쌈을 싸먹는 게 한국인 특이라 하는 말도 있지만, 중동의 케밥이나 멕시코 부리또, 베트남 고이 꾸온을 보면 쌈(wrap)우리를 구분 짓는 특질 같지는 않다. 일본의 미소 된장국과 한국 된장찌개의 친연성은 중국의 쟈오쯔와 일본의 교자, 한국의 만두의 거리만큼이나 가깝고 베트남의 껌승(Com suon)과 한국의 양념 돼지갈비 덮밥의 차이는 거의 없다. 각국 안에서도 지방 음식들이 전국화되어 가는 경향은 세계적인 현상인데 이게 각국에서 외식 산업의 폭발적 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 오래 보관할 수 있게 가공된 식재료와 소스가 국경을 넘나들고 유튜브는 집밥 You선생이 되어 세계 어느 나라 음식이든 해볼 수 있게끔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코로나19 시대가 되자 배달음식 산업이 마후라를 떼고 달리는 오토바이처럼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 길을 따라 모든 경계는 더욱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각국의 시그니처가 되는 음식과 식재료는, 없지는 않다. 그건 꼭 각국의 경계와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특징짓는 징표 정도는 된다. 이를테면 마라(麻辣) 중에서 매운 고추 맛인 라() 말고 얼얼한 맛 ()’를 담당하고 있는 화자오(花椒)가 그렇다. 한국에도 경상남도에 가면 혀와 입술을 마비시키는 산초초피를 먹기도 하지만 중국 사람들처럼, 특히 쓰촨(四川省) 사람들만큼 많이 먹지는 않는다. 쓰촨 사람들은 튀길 때도 볶을 때도 구울 때도 끓일 때도 화자오나 그 가루를 넣는다. 일본의 시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없지 않았지만 그다지 먹지 않았던 재료인 시소가 일본 밥상에는 자주 등장한다.

 

만약 화자오나 시소처럼 한국인의 입맛을 다른 이들과 구분 짓는 작물이 있다면 아마 깻잎일 거라고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외국인들은 깻잎을 낯설어 한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동남아시아에 가서 쌀국수 퍼보에 들어간 고수를 낯설어하는 것처럼. 한국 사람들이 깻잎을 소울 푸드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미나리보다 더 한국인특식재료는 깻잎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깻잎의 그 깨가 참깨인지 들깨인지 검은깨인지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오늘도 삼겹살과 돼지껍데기를 깻잎과 상추에 싸서 입 안으로 넣고 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사이에서 깻잎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좀 흥을 안다는 친구들은 깻잎머리를 하고서 교문을 나선다.

 

 

깻잎 농사를 전담하는 이주노동자

 

그 깻잎의 음식사적, 문화사적 특징 말고 작물로서의 농업경제학적 특징은 무엇일까? 초고령사회가 된 한국의 농촌에서 이제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일해 주던 아주머니들도 70~80대가 되었고 다 같이 함께 늙었다. 그러다 보니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는데, 여름이나 겨울, 농한기 때 쉬는 농가에서는 이들 상용 노동자를 쓰기가 어렵다. 이주노동자들도 몇 달 쉬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깻잎이라는 작물의 특이성이 여러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게 된다.

 

첫째, 깻잎 농사는 1년 내내 일거리가 있는 노동집약도가 높은 일이다. 1년 내내 쉴 틈이 없는 농사가 깻잎 농사다. 둘째, 깻잎은 단위면적당 소득이 높은데 10아르 당 소득이 14백만 원으로 밭작물 중에서 소득이 가장 높다 한다. 셋째, 깻잎은 수확한 후 포장해 판매하면 돈이 바로 들어오기에 자금 회전율이 좋아 노동자들에게 매달 임금을 주기에도 좋다. 한마디로 이주노동자라는 인력이 만들어낸 농촌의 새로운 변화가 깻잎이었다는 얘기다. (131~134)

 

캄보디아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깻잎 비닐하우스에 오면서 한국 농민들은 돈도 많이 벌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편해졌다 한다. “할머니들 출퇴근 안 시켜드려도 되지, 점심 안 차려도 되지.”(146) 아침이나 오후에는 두유나 과자를 사다주면 되었다. 한국 할머니들은 아주 상전처럼 불평도 많고 시키는 일을 다 하지도 않는다. 추석이나 명절 때마다 보너스도 챙겨줘야 내년에도 일을 한다. 이건 한국 농민들의 입장이고.

 

 

깻잎의 이면, 족쇄와 죽음

 

하루 15천 장의 깻잎을 따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와 입장은 다르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최근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던 것 중 하나는 숙소 문제였다.

 

한국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숙소는 대부분 비닐하우스 안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가설건축물이거나 컨테이너이다. 화장실이 없거나 잠금장치가 없거나 했다. 단열이 안 되어 검은 곰팡이가 피거나 바퀴벌레, 파리, 쥐는 많았다. “돼지우리 같은이 숙소들에 사는 대신 노동자들은 월 통상임금에서 8~20%까지 기숙사비까지 내야 했다. 속헹 씨의 죽음 이후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는 금지시켰지만 여전히 비닐하우스 밖 컨테이너는 허가했다.

 

그런 가운데 202012,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서 4년 넘게 일했던 캄보디아 출신 여성 노동자 속헹 씨는 기숙사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스물일곱에 한국에 와서 서른한 살에 이역만리에서 죽은 것이다. 숨지기 전날 영하 18도까지 떨어진 포천의 비닐하우스 안 얇은 샌드위치패널 가설건축물 기숙사에 있었던 그녀는 난방도 되지 않는 곳에서 지내면서 건강이 악화돼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으로 죽었던 것이다.

 

임금 문제도 있다. 저임금도 저임금이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안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임금 체불이 다반사인데 심지어는 몇 년치 임금 몇천만 원을 주지 않고도 일을 부리는 농장주들이 있다. 많은 고용주는 임금 체불을 하고도 불법체류 신분을 만들겠다고 되려 협박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가 5일 이상 사업장을 무단 이탈할 경우 사업주에 의해 당국에 신고되면 체류 허가가 취소되고 출국 조치를 당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추방당할까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는다. 성실근로자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제도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가 취업 기간인 410개월 동안 사업장 변경이 없으면 성실근로자로 인정받고 다시 한국에 입국해 최대 410개월을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악용해 많은 고용주는 고용 기간 내내 이주노동자를 옭아맨다. 더 악독한 사람들도 있다. 이주노동자가 도망갈까봐 여권을 빼앗고 월급통장까지 빼앗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권한뿐 아니라 체류 자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까지 준 셈이다. 그래서 이주인권단체와 민변 등 사회단체들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법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202112월 헌재는 이 청구를 기각하면서 외국인고용법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깻잎투쟁기> 이후 검찰 나라의 이주노동자 때려잡기

 

사회학 연구자인 저자 우춘희 박사는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된다. 20185,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 순회 투쟁에 결합했던 저자는 이를 계기로 한국에 온 농업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전남 담양 딸기밭, 경남 밀양 고추밭, 충남 논산 토마토 농장, 경기도 이천 유기농 계란 농장, 경기도 여주 돼지 농장, 강원도 철원 파프리카 농장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이후 캄보디아어를 배우고 20198월에는 캄보디아로 가서 현장 연구를 진행하고 2020년 여름에는 깻잎밭으로 유명한 마을에서 몇 달 간 하루 온종일 깻잎을 따며 현장 연구를 했다. 그 결과를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 연재하다가 그 글을 묶어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 <깻잎투쟁기>20225월에 출간되었지만 우리들의 삶은 계속되기에 그 이후를 약간 살펴보면,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는 더욱 안 좋게 되었다. 202375, 윤석열 정부는 각 부처 차관들이 참석하는 외국인 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사업장 변경 제한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제한을 강화하는 개악안을 발표했다. 사업장 변경 지역 제한, 고용허가제 내 조선업 쿼터를 새로 둬 조선업 내로만 사업장 변경 제한하겠다는 내용 등이었다. (정영섭, <거꾸로 가는 고용허가제>, <질라라비> 20239월호,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이주노동자 단속은 한동훈 법무장관이 주도해 이루어져 왔다. 법무부는 작년 10'엄정한 외국인 체류질서'를 확립하겠다고 선포했고, 한동훈 장관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유연한 외국인 정책의 전제는 엄정한 체류질서 확립"이라며 2023년 대대적 단속을 예고했다. 2023, 1차 합동단속(3~4)이 있었고 6월부터는 2차 합동단속을 전개했다. 이는 목표를 세워두고 추진하는 '내쫓기 정책'인데, 41만 명에 이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핵심 목표로 '불법체류 감축 5년 계획(2023~2027)'도 세워둔 상태다. (한우준, <이주노동자 내쫓으니, 농촌이 휘청>, <한국농정신문>, 2023625)

 

이로 인해 양파면 양파, 마늘이면 마늘, 작물마다 일손이 부족해 고양이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가 오면 법무부 직원들이 어슬렁거리고 농촌마다 난리가 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가 가운데 91%가 불법 체류 이주민을 고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만큼의 이주노동자가 들어오지 않는데 무조건 때려잡아 내쫓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놀이가 이 정부 최대 특기인 건 잘 알겠으나, 나라 운영을 특기자 전형으로 뽑힌 사람들에게 맡기니 벌어지는 사태는 모두의 책임이어야 하니 모두 밥상머리에서 깻잎 한 장을 만 원짜리처럼 귀하게 여겨야 할 일이다.

 

 

한국인의 밥상, 세계인의 밥상

 

저자는 어느 농민의 입을 빌려 이제는 외국인 없이 농사 못 짓지.”라고 말하며 뒷말을 덧붙인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농업은 이주노동자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 사람들은 미국과 캐나다로, 동유럽과 북아프리카 사람들은 서유럽으로, 캄보디아나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남아시아 사람들은 한국, 대만, 일본으로 간단다.

 

1세계에 속하는 사람들의 밥상은 이제 그 나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손에 기대어 마련되고 있다. 밭작물 농가뿐 아니라 축산 농가, 김 양식장, 장어 광어 우럭 양식장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있고 연근해 어선뿐 아니라 원양어선도 이주노동자들이 탄다. 멸치 잡는 것도 이주노동자고 갈치 잡는 것도 이주노동자다. 김치 공장에 가면 고춧가루를 휙휙 휘젓는 것도 이주노동자고 반찬 공장에서 콩자반을 끓이고 있는 것도 이주노동자다.

 

국경도, 모든 경계도 희미해지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고 있는지, 내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무언가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다 불분명하고 알지도 못한다. 세상은 배달 업체 마후라 뗀 오토바이만큼이나 아찔한 속도로 달려가는데 분명한 건 오로지 끼니때마다 고파 오는 내 배꼽시계뿐이다. 그러는 사이 한반도 사람들의 식탁은 이제 이주노동자들이 차려주고 있다.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젓가락만 얹고 맛있게 식사만 하면 될 일이 아니다. 밥상머리에서 해야 할 일은 깻잎을 떼어주니 마니 하는 쪼잔한 깻잎 논쟁인 것도 아니다. 우리 식탁이 달라지고 있고, 세계인의 밥상도 달라지고 있다. 그 먹고 사는 문제는 단순히 농촌 문제인 것도, 이주노동자들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다. 깻잎을 둘러싼 이 지난하고도 지구적인 그리고 거대한 인구의 국제적 투쟁의 동학을 이해하고 그 싸움의 어느 편에 서서 참전할 것인지 따져보고 그 의지를 다져야 할 일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이주노동자는 단순히 인력이 되어 우리 사회의 노동력 빈칸을 메우러 오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보따리 짊어지고 오는 사람들이다. 그 보따리 안에는 삶도 있고, 꿈도 있고, 울음도 있고, 웃음도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밥상도 건강하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춘희, <깻잎투쟁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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