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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 1936년의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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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1,193회 작성일 23-10-2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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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원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식민지 조선의 의사를 충원하라

 

일제강점기 전문학교의 문턱은 매우 좁았는데 그중에도 의학교의 지원자는 다른 전문학교보다 월등히 많았다. 식민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시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보다 돈을 잘 모아 경제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선()이요, (), 따라서 성공이다."라는 풍토가 퍼지고 있었다. 의학교를 졸업해 의사가 되면 타 직업에 비해 경제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36년경 의사의 총수는 외국인까지 합해도 2,300명밖에 안 되었고 이를 인구 비례로 보면 9,100여 명에 의사 1명 정도였다. 당시 일본은 1,200여 명에 의사 1인이었다고 하니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의료비는 고가였다. 의사가 약값을 올려받거나 왕진 비용을 터무니없이 요구하거나 수술비용을 마음대로 책정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의사는 사회적으로 선생이라는 존칭으로 우대받았다. 하지만 그 선생을 가난한 사람들이 만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1936225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이러한 현실을 알리며 의사가 인명을 다루는 일을 하니 사회적으로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과분한 대우를 강요하는 것은 결코 정당시할 수 없는 동시에 시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사가 자격 획득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유독 그들에게만 그러한 특전을 줄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의사들이 누리는 특전은 의학교 수가 지극히 적다는 것과 그들의 고가 의료비 획득을 당국이 묵인한 데 기인한다고 본 것이다.

 

귀중한 생명을 구하는 자이니 고가 의료비 획득이 당연하다는 이론에 대해서는 귀중한 것이니 의료비를 저감시켜 일반 대중이 그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논리로 반박했다. 쌀값이 대중의 생활을 위협할 때는 미곡통제법을 제정하듯이, 그보다 더 중요한 의료비를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이었다. 조선일보는 공동사회를 위한 대안으로 의사 충원을 제안했다. “의학교를 증설해서 의사 수를 격증케 하든지 그것이 현 제반 사정으로 시급히 실행하기 어렵다면 의료기관의 국영 또는 의료비 통제를 단행해야 할 것을 당국에 제언한 것이다.

 

 

공동사회를 위한 시간

 

의과 대학의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에 반발한 의사단체의 요구로 인해 10% 줄어,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묶여 있다. 이 의대 입학 정원이 19년만인 2025년에 이르러 늘어나게 되는데, 이를 둘러싸고 정부와 의사단체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의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천 명당 2.6명으로, OECD 전체 회원국 중 멕시코(2.5) 다음으로 적다. “의료 공백은 정책의 부재이지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는 의사단체의 주장과 달리 그 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예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다 쓰러진 간호사가 응급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의사 수를 늘리고 의사의 진료량을 줄여야 한다. 이와 함께 공공의료 제도를 확립해 지방의료 대책과 필수의료 대책을 동시에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안은 이미 논의된 바 있다.


20207월 정부는 2022년부터 10년간 의대 정원을 연간 400명씩 총 4,000명 증원하기로 했다. 이 중 3,000명은 지역 의사로 선발하고 나머지 1,000명은 역학조사관 등 특수전문 인력으로 배정하기로 했다. 공공의대 설립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의사들의 진료거부와 9.4의정합의로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은 전면 중단됐다. 이후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가 노정합의를 통해 협소한 의정 간 합의를 넘어 사회적 논의를 거쳐 지역, 공공, 필수분야에 적당한 의사 인력을 배치할 수 있도록 진료환경과 근무여건 개선방안을 마련하면서 공공의사 인력 양성, 지역의사제 도입 등을 포함한 의사 인력 확충방안을 마련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이를 행하면 된다.

 

의학 드라마를 보면서 의사들의 일상과 병원 생활을 간접 경험하기도 한다.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의사들을 보면, 그 수를 늘리고 그들의 노동조건을 보장하는 게 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루 두 시간밖에 못 자면서 눈이 빠지도록 연구하는 이들에게 인간적이고 이해심 많으며, 실력 있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의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87년 전의 조선일보는 공동사회를 위해 의사들에게 시간을 주자고 제안했다. 이는 의사에 대한 존중의 본질이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에 있다는 의료공공성을 위한 주장이었다. 의사가 병을 치료하듯이, 공공성의 확대는 사회를 치유한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공공성이 절실하고, 그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참고 및 인용]

조선일보, “의학지원 자격증의 이면상”, 1936.2.25.

보건의료노조, “의사 수 증원은 오답이라는 대한의사협회 주장에 대한 보건의료노조의 입장”, 2022.8.11.

 

[사진] 채널A, 대통령실 의사 증원, 타협대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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