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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목격한 사회] 역사가 던지는 농담 - 밀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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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921회 작성일 23-10-3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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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조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원)



이념의 오작동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 이념에 대한 철저한 감시통제 정책을 폈다. 그러나 체제 전쟁의 승리가 곧 인민의 안정적인 삶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프라하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정치적 승리(2월 정변) 이후 2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에 대한 대규모 정치적 숙청이 시행되었고, 이로인해 이념과는 관계없는 시민들이 공산당에 입당하는 일도 많았다.

세계동포주의와 국제주의, 철저한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의에 관한 논쟁들, 전략과 전술이 동반된 인민정치 같은 것들은 사람들의 일상을 충족시킬 만큼 풍요롭지 않았다. 어쩌면 당시의 인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생활에서 구현할 만큼의 정치·경제·문화적 양식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혁명은 영원히 완수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던가. 인류가 파시즘의 출구를 지나 어떤 자유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또 다른 자유를 갈구했다. 문을 열면 그 다음의 문이 기다리고 있을 뿐. 1968년의 유럽에는 이념의 오작동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보통 권력의 도취라고 불리는데, 나는 그러나 (약간의 선의로) 그보다 좀 덜 가혹한 말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말 위에 올라탔다는 데 취했고, 우리 엉덩이 밑에 말의 몸을 느꼈다는 데 취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결국 추악한 권력에의 탐욕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이었지만,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동시에 아름다운 환상이 있었다. 사람이 역사의 바깥에 머물러 있거나 역사의 발굽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를 이끌어 나가고 만들어 나가는 그런 시대를 우리, 바로 우리가 여는 것이라는 그런 환상이 있었다.”

 

 

밀란 쿤데라

 

사회주의는 자본가 계급의 지배로부터 노동자들이 해방되는 것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도 인간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1968년의 유럽에는 이런 구호가 유행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영향권에 편입된 중부유럽의 대표적인 국가였다. 밀란 쿤데라(이하 쿤데라)는 체코에 태어나 1948년에 체코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반조직행위로 출당 조치당했다. (아마도 공산주의를 모독했다는 혐의로) 그리고 이는 그의 대표작인 <농담>의 주요 모티프가 된다.

이후 그는 다시 복당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지만 체코 민주화 운동(프라하의 봄, 1968)에 참여한 이후 다시 당에서 쫓겨나 프랑스로 망명했으며, 이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작품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무엇보다도 <농담>은 그의 첫 작품으로서 쿤데라의 소설적 양식과 세계관의 토대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데, 여기에는 이념과 인간에 대한 쿤데라의 고민이 잘 담겨 있다.

 

나는 여러 위원회에 소환 되었을 때 나를 공산주의로 이끌었던 동기를 수십 가지는 늘어 놓았지만, 이 운동에서 무엇보다도 나를 매혹시키고 심지어 홀리기까지 했던 것은 내 시대의 역사적 수레바퀴였다. 그 당시 우리는 정말로 사람이나 사물의 운명을 실제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대학에서 특히 더 했다. 당시 교수단에는 공산당원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처음 몇 년간 학생 당원들이 교수 임용도 결정하고 교육 개혁이나 교과 과정 개편도 결정하는 등 거의 단독으로 대학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농담이라는 소설

 

루드비크는 체코의 학생운동가이다. 그는 스무살의 대학생이었는데 동급생인 마르케타를 짝사랑한다. 그리고 방학 기간에 당의 교육연수에 참여한 마르케타에게 편지를 한 통 보내고 그 편지의 내용이 빌미가 되어 당에서 제명당한 뒤 군대에 끌려가 광산에서 15년간 노역을 살게된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서유럽의 혁명을 믿었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 나는 그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데 그녀는 (당 활동으로 인해) 만족스럽고 행복해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엽서를 한 장 사서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충격을 주고, 혼란에 빠지게 하려고) 이렇게 썼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 루드비크.”

 

농담 한마디로 인해 청춘을 송두리째 도난당한 루드비크는 고향에 돌아와 자신을 당에서 퇴출하는 데 유력한 영향을 끼친 제마네크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결국 제마네크의 부인인 헬레나를 유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십수 년이 흘러 유연한 사고를 지니게 된 자유주의 지식인 제마네크에게 그러한 복수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제마네크는 더 이상 열렬한 공산주의자도 아니었고, 이미 현실에서는 사회주의 체제의 이상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희랍 비극 배우의 장화를 신고 다양한 무대 의상차림으로 무슨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신봉하는 대사들을 외워서 읊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네로라는 풋내기, 나폴레옹이라는 애송이, 흥분하여 날뛰는 수많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흉내내는 열정이나 간단하게 맡아 버린 역할들은 처참하도록 실제적인 현실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쿤데라의 발언과 소설의 문장들은 흔히 현실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이론을 비판하는 데 인용되곤 한다. 그만큼 소설 <농담>에는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의 허구적인 면모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가 종종 탈이념(포스트모던)의 작가로 소개되는 이유 또한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담>은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조롱이나 비판이라기보다는, 인류의 숭고한 이상이 현실 세계에서 제대로 구현되기 어려운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편에 가깝다. 오히려 소설의 주인공인 루드비크는 혁명의 본질을 탐구하고 순정한 자유를 추종하고 있다. 그는 농담이나 사소한 장난들로 비롯하는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에 자신의 청춘을 모두 소비한 셈이다.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벼움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들 대부분은 두 가지의 헛된 믿음에 빠져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기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둘 다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오히려 망각이 담당하는 일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는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은 잊힐 것이다.”

 

그의 소설 속의 역사는 너무 가벼운가(편지 한 통) 하면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만큼(십수 년의 노역과 자살소동) 매우 역동적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한국에서의 이념과 역사는 개인이나 집단을 사상적으로 공격하거나 이질화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언론과 미디어에서 연일 자유 자유 그리고 자유를 외치는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 시의원 등등 모두가 농담처럼 이념과 역사를 뱉어내는 것이다. 쿤데라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까? “그들은 자유에 관하여 자유만큼도 모른다.”

 

이념과 역사는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다. 인류는 다만 언제나 이념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이념은 그 이상(理想)의 반절도 구현하지 못하며, 역사는 그저 한 발씩 전진하거나 후퇴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농담과 꿈이 사회적 무의식을 철저하게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쿤데라는 2023711일에 사망했다. 꿈과 같은 역사가 지나간다. 아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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