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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의 독서]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 박정훈, 빨간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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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554회 작성일 24-01-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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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박씨에게 듣는 노동의 출구


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성장하는 플랫폼 산업


오늘도 거리에는 오토바이가 쌩쌩 달린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20년 팬데믹 이후 음식을 시켜먹는 배달은 더 성업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마다 ‘배달의 민족’이나 ‘쿠팡이츠’를 깔아두고 끼니를 때운다. 최근 공중파 예능 프로 <먹찌빠> 출연자들은 배달 어플에 1년에 적어도 300~500만 원, 많으면 150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위에는 이에 버금 가는 사람들도 있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역시 가끔 혹은 자주 배달앱을 켜곤 한다. 


‘배달의 민족’이 작명을 잘한 이유도 그만큼 우리에게 배달 음식이 익숙하기 때문일 게다. 이젠 배달앱으로 음식뿐만 아니라 심부름도, 장보기도 시킬 수 있다. ‘숨고’나 ‘크몽’ 같은 앱을 통해서는 알바, 심부름부터 못박기, 인테리어, 외국어 교습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제공할 수 있는 여러 ‘용역’을 제공받기도 한다. 플랫폼 시장은 여전히 성장중이다. 그 규모는 이러하다. 2023년 7월,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월간 활성화 이용자수는 총 3040만 9053명이었다. 배달의민족이 65%가량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엔데믹 이후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용이 적지 않다. 2023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앱 가운데서 배달의민족 사용자 수는 1,986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이렇게 익숙한 것 같은 ‘배달’에 대해 사실 우리가 아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배달의 배면’을 들여다보려면 맨 먼저 펼쳐봐야 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배달의 배면


2018년 ‘폭염수당 100원’ 1인 시위부터 2019년 5월 1일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 유니온’ 출범까지 기자, 학자, 활동가로부터 배달 산업에 대한 똑같은 질문을 받았던, 라이더 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은 그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기 지겨워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플랫폼이 주목 받으면서 배달 산업에 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그에 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적었고 스타트업 기업들의 일방적이고도 편파적인 주장만 난무했기 때문이었다. 플랫폼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배달의 민족과 배민라이더스는 다른 서비스”이고 “배달의민족은 우아한 형제들이 운영하는 음식 중개 플랫폼 서비스 이름”이고 “배민라이더스는 자회사인 우아한 청년들에서 운영하는 배달 대행 플랫폼 이름”이라는 설명부터 해야 했다.


책은 플랫폼에 관한 일반적이고 개괄적인 설명으로 시작된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일감’이라는 열차를 기다리며 정거장(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들, 구름(클라우드)처럼 몰려 있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앱을 깔고 일감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이 플랫폼 노동, 클라우드 노동이라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은 비정규직을 ‘1~2년 단위로 쓰고 버리는 것도 아까워서’ 비정규직 노동의 극단적 형태로 등장한 것이고 근무 시간을 정하지 않은 채 극단적인 임금 유연화를 추구한다. 이것은 빅데이터가 축적된 독점적 플랫폼이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하고 거기에 ‘국제적 금융자본’이 결합되면서 바탕을 이루게 된다.


이어 책은 한국의 독특한 배달 산업 구조에 대해 ‘배달의민족’ 같은 소비자 주문 중개앱과 ‘배달 대행 업체’로 나누어 살펴본다. 특히 ‘배달 대행 업체’를 다루면서 한국의 ‘배달업’의 진화를 추적하고 그 시간이 축적된 결과로 한국에서 크게 보면 세 가지 형태의 한국 플랫폼 유형을 나눈다. ① 우버 이츠로 대표되는 전세계 가장 기초적인 플랫폼 형태-지금은 쿠팡 이츠가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②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운영하는 ‘배민라이더스’와 ‘요기요플러스’ 유형이다. ③ 마지막으로 일반 노동자-시민들은 잘 모르는, 부릉, 바로고, 생각대로, 그리고 중소형 배달 플랫폼사 51개와 그 하위 지사 8천여 개로 대표되는 한국형 배달 대행 플랫폼이다. 


책의 대부분은 바로 이 세 가지 유형의 역사적 형성과 구조, 복잡다단한 작동 방식을 정말 솜씨 좋게 엮었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그 구조 가운데서 포섭되고 통제되고 착취 받는지도 놓치지 않고 그려낸다.


박 위원장은 다른 책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에서 정규직을 제1노동시장, 비정규직을 제2노동시장으로 구분하고, 제3노동시장이라는 카테고리 하나를 더 제시했다. 제3노동시장은 취업준비생, 주부, 노인, 해고자, 퇴근 후 투잡족 등이 포괄된다.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이 제3노동시장의 노동자들을 ‘사장님’ 혹은 ‘플랫폼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호명하면서 거대한 인구를 만들어 형성해 나가고 있다. 


플랫폼을 운용하는 자본은, 이들을 ‘노동자’로 고용하는 것은 회피하면서 어떻게든 ‘파트너’나 ‘사장님’으로 부르고 싶어하는데, 그럼에도 ‘배달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제, 지휘, 감독하려고 하는, 다시 말해 노동자로 부리고 싶어한다. 이를 저자는 플랫폼 산업의 근본적인 딜레마라고 지적하는데 이 딜레마야말로 플랫폼 산업이 성장할수록 거대한 플랫폼 노동자군도 성장하고 또 이에 기대어 이 사회가 굴러가게 된다는 것, 그러면 그럴수록 처음부터 회피하고 싶어 했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같은 플랫폼 노동자의 성격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책의 바깥, 아스팔트 위의 오늘


이 책이 나온지 3년이 넘어갔다. 그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도 이 플랫폼 노동과 관련한 여러 일이 있었다.


2023년 세밑, 서울고등법원에서 '타다'의 운영사 '쏘카'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 재판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요약하자면 "플랫폼 노동 종사자인 타다 운전기사는 프리랜서가 아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판결이었다. 이는 한국에서 플랫폼 노동 종사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은 첫 판결이다. 이 판결로 인해 앞으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과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입법 논의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물론 그것은 그냥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 유니온’은 박정훈 위원장의 임기가 끝나고 새 위원장 선거도 치렀고, 그 사이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하기도 했다. 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도 배달 플랫폼 노동조합이 조직되기도 했다. 


이 조직된 노동의 힘을 바탕으로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오토바이 시위도 벌어지고 산업 구조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다.라이더 자격제 도입, 배달대행사 등록제, 기본 배달료 인상, 유상운송보험 가입 등을 요구하면서 집회와 오토바이 행진, 어린이날 경고파업, 배달 주문을 멈춰달라는 캠페인 등도 진행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배달 노동자들은 아스팔트 위에서 바퀴에 몸을 싣고 싸우고, 다치고, 죽어가고 있다. 2023년 1~8월, 근로복지공단 산재 승인 1위는 ‘배달의민족’에서 물류 서비스를 전담하는 '우아한청년들'이었다. 건설, 제조업을 능가하는 것으로 2위 현대중공업, 3위 대우건설의 521건, 467건을 훨씬 넘어서는 1273건에 달했다. 이는 2022년에도 1837건으로 1위를 차지한 데 이은 연속 2년차의 결과였다.


그런 가운데, 라이더와 관련한 첫 지노위 판정이 나왔다. 바로고, 생각대로 같은 배달대행사의 지역대리점 대표(지사장)은 라이더의 사용자이며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경기지노위는 판정했다. 이번 판정은 라이더의 노조법상 근로자성과 지사장의 사용자성이 인정된 첫 판정이라 큰 의미를 지닌다.


정태춘의 2002년작 노래 <오토바이 김씨> 속 '김씨'는 '테헤란로 붉은 머리띠를 묶고 데모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21세기로 가는 길이 어디요, 여길 나가는 길이 어디요", 

그 말을 들은 데모하는 사람 왈, "동지여, 나도 몰라요."

1990년대를 두고 '환멸의 시대'라고 자조했던 가객은 2000년대 들어 출구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이 노래는, 아니 이 노래가 실린 앨범은 권선징악도, 역사적 결론도, 방향성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저 '다시 올 첫 차를 기다리겠다'는 모호한 태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20여 년이 지났다. 


맥도날드, 우버이츠, 쿠팡이츠, 동네 배달대행, 배민라이더스 등을 두루 경험하면서 오토바이를 몰았던 ‘오토바이 박씨’, 박정훈 전 위원장에게 여길 나가는 길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 출구의 첫 걸음은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진] 노동과 세계, 20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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