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한내레터

[다섯 시의 독서]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한내
댓글 0건 조회 425회 작성일 24-03-19 16:30

본문

e611bf5ed9d7cb2adcde5a5b6d8731af_1710833211_645.jpg


양돌규 (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

 

 

1. 우주의 사망 사고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한 우주가 온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우주의 소멸이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한 사람이 귀하고 중하다, 는 이유에서 아마 이런 말이 널리 회자되었을 거다.

 

하지만 이 사회가 그렇게 사람을 귀하게 여겼다면 처음부터 이런 말이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금도 바뀌지 않는 것 같은 이 사회의 견고한 비정함 때문인지 이제는 사람-우주의 비유도 조금은 진부하고 조금은 식상하다. 단단한 체계를 긁어내지도 못하는 것 같으니 클리셰라 한다 해도 수긍이 간다.

 

2022년 한 해에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2223명인데, 그중 일터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874명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질병으로 숨진 1349명이다. 2022년만 그랬던 게 아니라 매년 비슷한 규모의 사망자가 이어졌다. 사고 사망자 수는 2019년에 855, 2020882, 2021828명이었다. 요컨대 매년 800여 명이 사고 사망으로 숨졌다.

 

이 책은 산업재해 사망자 중에서 사고 사망자를 주로 다룬다. 그래서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문장은 매년 800여 명이 퇴근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우주로 치환해 볼까? 매년 800여 개의 우주가 붕괴하고 사라진다. 여전히 진부하고 식상한가? 숫자로 표현되는 죽음에서 우주만큼의 현실성도 느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2. 사고가 사건화 되기까지

 

이 책을 쓴 신다은 기자는 내가 평소 포털 사이트 뉴스 섹션에서 구독을 해둔 몇몇 기자들 중 한 명이다. 노동 관련 기사를 쓰는 일간지 기자들 중에 몇 분의 기사는 꾸준히 따라 읽으려고 하는데 그중 이 신 기자도 있다. 작년, 조선일보가 양회동 열사 죽음을 건설노조 간부가 방조했다고 거짓을 획책할 때 그에 관해 반박 인터뷰 기사를 썼던 기자였다. 아마 그즈음부터 이 기자를 팔로워했을 것이다. 신 기자는 짧은 기사 생산의 바쁜 틈을 쪼개 이 같은 긴 호흡의 책을 썼다.

책은 2021422,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흔히 인터뷰가 감정에 호소하기 쉽지만 저자는 다소 건조하게 문장을 이어간다. 그럼으로써 수많은 사망사고 중 하나인 이 평택항 사고가 어떤 원인으로 인해서 발생했는지, 예컨대 물고 물리는 지시의 연쇄 사슬, 노후화된 설비, 잘못된 작업 방식, 위험에 관해 공유되지 않은 정보, 형식적 안전관리 등을 차근차근 따져본다. 그리고 매년 일어나는 다른 800여 건의 사망사고와 달리 이 평택항 사고가 어떻게 사건화될 수 있었는지, 그래서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는지, 그럼으로써 노동부 등의 관계 기관에서 좀 더 재해 조사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 결과 법원에서 10쪽에 달하는 길고 상세한 판결문이 나오게 됐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다음 장에서 산재 사고 발생 유형을 다섯 가지로 나누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1. 회사가 세워 둔 안전수칙이 효율적 업무방식과 충돌할 때, 2. 위험에 관한 기업 간(-하청 등) 소통이 부족할 때, 3. 안전에 투자할 돈과 시간이 부족할 때, 4. 안전에 관한 설명이 부족할 때, 5. 안전에 대한 역량과 이해가 부족할 때가 그것들로서 이럴 때 산재 위험이 어떻게 증폭되는지 관련 산재 사고 24건과 함께 설명을 이어 간다. 24건의 산재 사고는 유가족이 재해자 실명을 공개한 사고인 경우 실명을 작성했는데 그들의 죽음은 이런 식이다.

 

자살 추정 사고, 추락사, 열차 치임 사고, 압착 사고, 메탄올 실명 사고, 크레인 충돌 사고, 로울러 끼임 사고, 화재 사고, 깔림사, 감전사, 트리클로로메탄 급성 간염 사고 등이다.

 

산재 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한두 사람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반복적으로 위험에 노출시키는 견고한 체계이다. 산재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례들의 구조적 원인을 자세히 분석할 수록 구체적인 해결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산재사고는 그저 그 800여 건의 숫자 속에 묻힌다. 앞서 소개한 24건의 산재 사고 같은 것들은 재해자 유족, 동료, 노조, 시민단체 등이 힘을 합쳐 진상규명을 이끌어낸 희귀한 사건들이다.

 

재해 발생 후 기업들은 사고를 피상적으로 분석하거나 재해자 과실을 사고 원인으로 신고하며 보여주기 식 무재해운동(또는 자율안전관리 체제)으로 일관하면서 사고를 쉬쉬하거나 작업자 과실로 매도할 뿐이다. 게다가 한국의 산재 통계는 엉망진창이고 은폐되거나 공상이라는 이름의 비밀 산재도 즐비하다. 노동부와 정부는 처벌 위주의 태도를 보이면서 재해 조사를 할 경우에도 법 위반위주로 서술함으로써 사고의 원인을 짚어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데는 실패한다. 저자는 산재 사망사고를 깊이 들여다보고 다루지 못하는 현재 노조와 언론의 한계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한다.

 

마지막 장을 통해 저자는 산재 사망사고를 경찰 수사에 맡겨두는 것을 넘어서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해를 일으킨 원인을 규명하고 개별 산재 사고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와 관련한 서사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산재의 원인을 규명해내는 것은 유족에게는 고인의 죽음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며, 또 사회적으로는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는 것으로 이어지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20221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이 기업 경영의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부상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스스로 위험을 찾고 산재 감축 달성을 위해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목표 기반 규제로 나아갈 필요성이 강화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 의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고를 일으키는 위험 요소를 찾아내고 그 결과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작업은 필요하며 그것을 위해 저자는 두 가지를 대외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하는 재해조사의견서와 법원의 판결문이다. 재해조사의견서는 사건의 기본적인 얼개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자료이다. 판결문은 재판부가 특정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낸 결과물로 시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맞다.

 


3. 다른 우주로 연결되는 웜홀

 

다시,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한 우주가 온다는 것이다라는 말로 돌아와 본다. 한 사람이 만들어낸 이 우주는 무수한 이야기와 관계망, 그리고 필연인 듯 아닌 듯 한 우발적 사건들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구조나 제도의 효과, 역사적 법칙성 같이 단단한 것처럼만 파악하지 않는다. 사람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우주 같은 저마다의 영향력으로 탈주선을 그리기도 하고 역사적 배치를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우주의 소멸을 그저 소멸로 끝나게 해서는 안 된다. ‘가 죽었다 해서 그의 살아 생전 있었던 이야기와 관계망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죽음의 전 과정도 무쓸모로 만들어 버릴 수는 없다. 그런 망각이야말로 이 죽음을, 1년에 800여 명, 10년에 8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이 죽음을 잡아먹고 살찌우는 어떤 체계가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죽더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연쇄 사슬의 톱니바퀴를 당장 멈춰야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이 일어난 바로 그곳, 그 사고를 제대로 직시하고 함께 공유해서 사건화 시키고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기억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그이들의 죽음이 다른 우주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새로운 세계로 탈출할 수 있는 웜홀이 되어줄 수 있다. 웜홀의 입구를 똑똑 노크하게 되는 책, 이 책을 펼쳐보시라. 우리는 죽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를 펼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