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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라면 노동자의 기억(6) : 파업
첨부파일 -- 작성일 2021-05-17 조회 343
 

N라면 노동자의 기억 (6)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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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하루 이틀 지나자 회사 측은 협상과 조합원들의 분열을 동시에 추구하는 양면작전을 구사했다. 파업지도부 대표들을 노조 측 교섭대표로 인정하면서도 최종안의 조합원 찬반투표의 철회를 끈질기게 요구했다. 협상이 열려도 이 문제로 인해 결렬되었다. 관리자들의 조합원들에 대한 개별회유 또한 집요했다. 공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를 않으니 관리자들은 회사 내에서 자기부서의 조합원들을 은밀하게 불러내거나 또 집이나 고향의 부모 형제들에게 전화를 해 자식과 동생이 무슨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 당장 쇠고랑을 차는 것으로 겁박을 했다. 외부 불순세력의 사주를 받은 일부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불법파업이니 그 사실을 알면서도 파업에 참여한다면 그들과 똑같이 처벌을 받을 거란 얘기였다. 심지어는 지금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새빨간 거짓말까지 하는 관리자도 있을 지경이었다.

회사에서는 본관 사무실의 1층에 각과별로 관리자들을 대기시킨 채 쌍안경을 이용한 감시를 계속했다. 1987년 파업 때 요긴하게 써먹었던 적극 가담자를 색출하기 위한 수법이었다. 노무담당 이사인 이부식 이사를 주축으로 한 노무관리실 직원들이 전담했으나 종종 이름과 소속이 불분명한 조합원이 보일 때는 각 부서별로 관리자들이 나타나 신원을 확인했다. 그러느라 한쪽 귀퉁이의 커튼은 계속 흔들거리며 살짝 벌어졌다가 닫히길 반복했다. 덕분에 조합원들의 관심은 엉뚱한 커튼놀이 구경이었다. 커튼사이에 숨어서 하루 종일 감시하는 모양이 꼭 경비병과 대치중인 인질범이었다. 손과 얼굴도 없이 쌍안경만 노출된 커튼 사이를 역감시 하는 것도 우리들의 새로운 재미였다. 실수로 어쩌다 커튼 사이가 벌어져 인질범의 신분이 노출될 때는 그 인질범의 신상이 즉각 공개되어 각성을 촉구하는 함성을 내보냈다. 파업일수가 하루 이틀 지나도 회사에서는 협상보다는 이런 감시와 조합원들의 분열에 더 열을 올리고 있었다. 차제에 소위 불순세력을 일망타진하겠다는 의지 같았다. 또 실제 노조 집행부의 간부나 회사와 가까운 조합원들은 그런 말을 공공연하게 떠벌이고 다녔다.

회사 측의 또 다른 분열작전의 하나는 파업지도부의 와해작전이었다. 파업이 일주일을 지나자 노무담당 이사인 이부식이 파업지도부원 10명 중 젊고 패기 있는 4명을 골라 안양시내 삼원극장 옆의 삼원다방으로 불러냈다. 대부분 술과 잡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위원장 선거 때마다 이 후보 저 후보를 드나들며 선거운동을 해주며 술값을 받거나 노조 간부 자리를 기웃거리던 사람들이었다. 이 이사는 이들에게 술이나 한잔 하며 잘들 생각해보라며 현금으로 1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더 이상 긴말이 필요 없을 터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들은 이내 다방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충훈부로 향했고 그곳의 장미카페에서 25만원씩 나눈 후 여관으로 옮겨 밤새 원 없이 고스톱을 쳤다는 것이다. 이게 1993년 구사대인 한상복이 회사 측으로부터 토사구팽당한 후 내게 와 한 얘기였다. 이 후 이들 4인이 파업이 끝날 때까지 파업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한편 반장들은 반장들대로 스낵1과 사무실에서 노조 집행부와 연일 회의를 하고 있었다. 조합원이면서 조합 활동을 지배 개입하려는 회사 측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찌 보면 월 2-3만원 반장수당에 빨간 모자 쓰고 작업 대신 감독과 인원관리를 하면서 사용자의 노동운동 탄압에 악용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파업의 참여는 고사하고 조합원들을 분열시키고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는. 조합원이면서 반 조합원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수습해보겠다는 것이지만 그들의 논리는 일선 조합원들의 주장보다는 회사 측이나 어용노조 집행부의 주장에 가까운 논리였다.

노조집행부가 배제된 상태에서 하는 파업이다 보니 문제점은 의외로 빨리 나타났다. 파업과 동시에 회사 측에서 성실한 협상을 할 것으로 믿었던 대다수 조합원들은 협상의 기미는 전혀 없고 온갖 풍문과 관리자들의 회유 협박만이 판을 치자 불안해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투쟁의지와 참여의식이 눈에 띄게 식어갔고 출근 인원도 점점 줄어들었던 것이다. 참석자가 늘기는커녕 점점 줄어드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싱거우리만치 쉽게 끝난 1987 파업을 생각했을까, 신나고 사기충천하던 처음의 분위기가 아님에 조합원들은 불안했던 것이다.

야간 경비조도 지원자가 없어 반강제로 부서별로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특히 남자 조합원들의 파업 참여율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수적으로는 여자들보다 적지만 중요한 일은 대부분 남자들의 몫이고 또 여자들의 판단이나 행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게 남자들이니 심각한 문제였다. 이러니 조장이나 파업지도부를 사퇴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그런 가운데 안성공장과 부산공장에서 1시간 식사시간을 30분으로 줄여가며 생산을 한다는 풍문이 사실로 확인되자 조합원들은 더더욱 술렁댔다. 두 공장에서 그렇게 생산을 하는 한 안양공장만 파업해야 소용이 없다는 얘기였다. 회사에서 눈 하나 깜짝 않고 느긋하게 배짱을 부리는 것도 당연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현 집행부가 나서지 않는 한 안성과 부산공장을 견인할 방법은 없었다. 안양공장의 파업 사실을 안성과 부산공장의 조합원들이 정확히 알고 있는지 조차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이 모든 게 회사 측의 계략이며 고도의 심리전임을 지적하며 여자 조합원들은 끝까지 투쟁할 것을 주장했으나, 남자 조합원들은 협상 상대인 회사에서 협상을 안 하겠다는 와중에 싸울방법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불법파업이니까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법대로 처리하겠다며 오히려 느긋하게 있는데 투쟁만하면 오히려 회사 측의 오기를 건드려 더 협상을 어렵게 만든다는 주장이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한 얘기였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노사관계를 정치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로 착각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최종안의 조합원 찬반투표 문제였다. 25백여 명의 조합원과 그 가족들의 생존권 문제를 당사자인 조합원들의 의견을 들을 것 없이 10명의 교섭대표들이 결정하라는 게 회사 측의 주장이었다. 조합원들의 의견에 이끌리다 보면 협상 진척도 어렵고, 또 조합원들도 협상대표들을 믿고 맡기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회사 측의 이러한 주장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바탕위에서 이루어지는 솔직하고 진지한 협상이 전제되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였다. 그간 조합원들의 여론을 무시한 채 회사와 노동조합 집행부가 밀실야합을 해온 노사 협상을 간과하는 얘기였다. 어찌되었든 사용자는 노조 측 교섭대표들이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전권이 없는 한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협상 진척이 없자 조합원들은 불안해했다. 결국 몇 가지 안을 놓고 조합원 전체 투표를 한 결과 최종안의 조합원 찬반 투표를 존속시키되 협상 종결 시까지 파업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90.5%의 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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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6일 만에 처음 열린 9차 임금협상은 역시 최종안의 조합원 찬반 투표문제로 결렬되었다. 노조 측 임금 교섭 대표들이 모든 전권을 갖고 오지 않는 한 협상을 안 하겠다는 회사 측의 고집 때문이었다. 회사 측의 대표인 이신홍 상무 역시 결정권이 없어 수시로 정회를 요청하며 임원원회의 결정에 따라 협상을 해왔음에도 노조 측에만 그런 요구를 했다.

25백여 조합원과 그 가족들의 생존권문제를 당사자들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것이었다. 노조 측 교섭대표들이 집행부측과 파업지도부 측에서 각각 8명씩이니 이들을 요리하는 게 2천백여 조합원들을 요리하기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었다. 회사 측의 의도대로 잘 따라오는 집행부측 대표들과 파업지도부 측 대표들을 분열시키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터였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김 빼기 작전으로 노조 측 대표와 조합원들을 지치게 만들어 회사 측 의도대로 적당히 타협하는 게 지금까지의 협상 수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은 노심초사였다. 협상 결과와 이후 대책에 대한 분반 토론회가 다시 열렸다. 28개의 반중 17개의 반이 현행안의 고수를 주장하였고, 11개 반만이 협상여지를 만들기 위한 노조 측 수정안을 주장했다. 협상지연에 대해 일부 불안해하는 조합원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조합원들은 협상에 대한 성의는 없이 조합원 찬반투표만을 문제 삼는 회사 측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회사 측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노조집행부 측 대표들이 파업지도부 측 대표들과 같은 숫자인 상황에서 조합원 찬반 투표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무기였다. 회사 측과 노조 대표들의 성의 있는 협상을 유도하기 위해서도 조합원 찬반투표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간 노사 간의 밀실협상과 독선적인 협상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던가.

회사 측의 김빼기 작전이 계속되자 스낵1과 대의원인 송인자는 증권감독원을 찾아 회사 측의 1988년 하반기 재무제표를 복사해 노조 측 협상대표는 물론 조합원들에게 대량 배포했다. 이름도 애매모호한 각종충당금으로 수백억씩 쌓아놓은, 회사 측이 증권감독원에 제출한 재무제표였다. 제조원가의 10%도 안 되는 임금 등 노무비, 특히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이 3,380명에 103억 원인데 반해 임원과 사무직의 임금이 1,399명에 66억 원인 임금 격차는 압권이었다. 그러자 생산본부장은 불법유인물을 뿌렸다며 안양공장 구석구석에 민주세력을 불순세력으로 매도하는 대자보를 써 붙였다.

그런 가운데 노조집행부는 상급단체인 한국노총 화학연맹으로부터 회사 측이 규약상의 조합원 찬반투표를 문제 삼아 협상을 거부하는 것이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받아왔다. 최종 체결권은 노조위원장에게 있으므로 그런 노조규약이 불법이라는 얘기였다. 회사 측과 어용노조는 대자보와 전체조회를 통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자‘N민주노조실천노동자회는 유명 정치인이자 인권변호사인 이상수 변호사 사무실의한국노동법률상담소를 찾았다. 그리고 회사 측이 노조규약을 문제 삼아 협상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라는 유권해석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를 유인물과 조합원 공청회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악선동과 선동과의 대결이었다. 그러자 회사 측은 관리자를 통한 조합원들의 11 면담과 전체조회를 통한 민주세력을 불순세력으로 악선동하는 조합원 분열작전에 열을 올렸다. 그것도 모자라 반장들까지 회사 측의 안이 현실적임을 설명하고 다녔다. 집이나 시골의 부모님한테 전화를 해 불순분자들과 어울려 다닌다느니 하며 가족들까지 불안하게 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뒤숭숭해지자 4명의 파업지도부 요원이 또 사퇴했다.

오후에 나붙은 회사 측의 대자보는 파업에 대한 확신감이 부족한 조합원들을 더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불법파업이므로 주동자들을 경찰에 곧 고발할 것이며, 오늘 이후 파업 참여자들은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해 파업기간 중 일체 임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조합원들 앞에 나와 회사 측의 말대로 교섭대표들을 믿고 전권을 주어야 한다고 떠벌이다 쫓겨난 위원장이 이번에는 희망 조합원 누구나 참여하는 노사 간담회를 회사 측과 합의해 대화를 유도했다. 가서 얘기나 들어보자는 조합원들이 여기저기서 나섰다. 대부분이 보수적이고 파업에 대한 확신이 없던 중년남자와 아줌마들이었다.

단결투쟁만이 승리의 길이라는 말은 이미 효력을 잃고 있었다. 노조집행부가 배제된 상태의 파업 지도부의 지도력은 한계가 있었고, 이틈을 회사 측은 강온 양면의 분열책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조합원들 앞에는 감히 나설 수 없을 정도로 불신을 받고 있는 노조 집행부 임원들이 조합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파업지도부 요원들과 함께 노조 측 교섭대표로 참석해 사실상 조합원의 대표로 행세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노조 측의 협상 전략과 노사 간의 임금협상 분위기는 파업 지도부측 대표들이 주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 집행부측이 조합원의 대표로 행세하는 묘한 구조였던 것이다.

노동조합의 법적인 대표가 집행부라는 이유로 회사 측에서는 노조집행부만을 조합원의 대표로 인정하려했고. 노조집행부 역시 그런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파업지도부의 의견에 이끌려 다니는 형국이었다. 이 문제 또한 회사 측의 지능적인 분열작전이었다. 아가씨들은 혼자 몸이니 부담 없이 싸우지만 딸린 식구가 있는 남자들은 그게 아니라며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엊그제만 해도 감히 할 수 없던 말이었다. 그런 가운데 결근자도 180여명으로 늘어났다. 엊그제의 2배가 넘는 숫자였다.

오후 3시부터 3시간 동안 열린 노사간담회는 회사 측의 정신교육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교섭 장소인 소회의실을 100여명의 조합원들이 빽빽이 들어찬 가운데 생산 본부장인 이신홍 상무는 예의 고약한 인상으로 분위기를 잡으며 회사 측의 논리를 장황히 늘어놓았다. 우락부락한 인상과 야수 같은 눈매에 조합원들은 전율을 느낄 지경이었다. 49.3%의 정당성이니 회사 측의 58억 적자론에 대한 반론은커녕 침 한번 제대로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노조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 간부들이 회사 측 대표들과 나란히 앉아 파업지도부를 이끄는 일부 민주파 대의원들을 외부 불순세력의 조종을 받는 불순분자로 매도해도 장내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회사 측의 적자 타령을 반박하는 증권감독원의 회사 측 재무제표를 조합원들에게 배포한 조합원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얘기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파업에 적극적이었던 남자조합원들이 회사 측에서 나온 재고입력 전산용지를 펴 보이며 평상시와 다름없이 재고가 쌓여있음을 설명하기도 했다. 재고가 많이 쌓인 상태에서의 파업은 회사에서도 겁낼게 없다는 얘기였다. 누구든 자판기만 두드리면 멋대로 찍혀 나오는 전산용지임에도, 출처도 불분명한 전산용지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을 하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가씨들만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투쟁의 불길을 사르고 있었다. 앞에서 보니 눈물겨운 모습이었다.

난국타개에 대한 문제가 다시 분반토론에 부쳐졌다. 파업지도부 역시 여러 가지 한계점에 다다라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쨌든 분위기는 수습국면이었다. 30개조 중 회사 측 요구대로 협상대표에게 전권을 위임하자는 조가 19개조, 조합원 찬반투표 고수조가 7개조, 결론을 못 내린 조가 4개조였다. 이제 모든 것이 회사 측과 노조 집행부의 의도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최대무기를 잃은 아쉬움에 눈물을 글썽이며 허탈해 하는 아가씨들 앞을 관리자들과 집행부 임원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다. 이렇게 회사 측에서 끈질기게 고집한 대로 투표결과가 나오자 이제 모든 게 끝난 듯 한 분위기였다. 노조 측 교섭대표들 역시 족쇄가 풀려 숨통이 트였으니 길게 갈 것도 없을 터였다. ‘거짓말도 충분히 자주 하면 진실이 된다는 레닌의 말이 진실로 통하는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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