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관리 노동자가 되기까지
임선화(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한신대학교 기록정보관 개관식에서. 맨 왼쪽이 필자>
꼭지 제목이 영 부담스럽다.
올해로 37세. 그리 재미도 없고 자랑스럽지도 못하게 나이만 먹은 아둥바둥 3류 인생에게 살아온 길을 정리하라니...
원고를 쓰려다 기존의 꼭지내용을 보려고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OO여대 학생감시 의혹 문건 논란’ 이란 인터넷기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잠시 원고쓰기를 멈추고 기사를 읽었다. 그 내용은 OO여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하거나 학교에 비판적인 학생의 글과 신상정보를 문건으로 만들어 별도 관리해 왔고 교직원이 사무실 이사과정에서 버린 것을 학생들이 발견해 총학생회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게 언제적 학생사찰인지 모르겠지만 기록관리로 생계를 이어가는 나는 또 직업병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기록관리를 안하면 그렇게 민감한 기록을 사무실 이사과정에서 버렸을까!’ 하는 것이다. 이사건의 도덕적 또는 현행법적 판단이 어찌되었든 기록관리적 측면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문건을 만든 사람이 있을것이고 그는 당연히 학교소속의 직원일 것이다. 자신의 직무범위 내에서 해당 업무수행의 결과로 문건을 만들었을 것이기에 이 문건은 사적인 스크랩이 아닌 대학의 행정기록이므로 당연히 등록/편철/분류/정리/평가/처분의 대상이 된다. 정당한 절차없이 무단폐기되거나 담당자에 의한 자의적 또는 무의식적인 방치와 멸실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해당 대학이 국공립대학이 아니므로 기록관리법(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준수할 의무는 없다. 그래서 학교내부규정을 살펴보았다. 1994년에 개정된 해당 대학의 ‘문서관리규정’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제 3조 (정의)
① "문서" 라 함은 본 대학교 내부 또는 대외적으로 공무상 작성 또는 시행되는 문서(도면, 사진, 테이프, 필름 및 슬라이드를 포함한다) 및 본 대학교에서 접수한 모든 문서를 말한다.
제 4조 (문서의 종류)
5. 일반문서 : 전 각호에 속하지 아니하는 모든 문서를 말한다.
- 각호에 속하는 문서는 규정문서, 지시문서, 공고문서, 학적관계문서를 말한다(필자 주)
제42조 (문서의 폐기)
① 문서는 그 보존기간이 경과한 후에는 문서부서와 처리부서가 합의하여 결재를 얻어 폐기한다.
② 문서를 폐기할 때에는 보존문서 기록대장을 정리하여야 하며, 당해 문서에는 별표7의 폐기인을 날인한다.
국가적으로 기록관리법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립대학에서 문서관리규정을 폐지하고 기록관리규정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사무관리규정도 아니고 1994년판 문서관리규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놀라움은 잠시 접어두고 그 내용을 한번 들여다보면,
해당 문건은 대학교 내부에서 공무상 작성된 일반문서로 문서등록대장에 등록되어야 하며 폐기시 문서부서(통상 문서과라고 부르며 일반적으로 총무과가 문서과이다)와 처리부서가 합의/결재하고 보존문서 기록대장을 정리한 후 폐기인을 날인하여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지켰는지에 대해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록관리측면에서 이번 문건 유출사건은 담당자의 중과실로 인한 기록물 멸실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뭔가 좀 이상하다. 학생사찰에 관련된 문건을 만든것도 문제인데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인가? 당연한 질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어떤 조직에서 그러한 기록이 남아있기를 원하겠는가?
<내가 살아온 길> 이 꼭지와 별 관련 없는 말만 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좀 그렇다. “당신 무슨일 하십니까?” “기록관리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뭔데요?”라며 재차 물어온다. 잘 모르는 것만큼 대우도 그리 좋지는 않다. 그나마 노무현대통령의 기록물 유출사건 때문에 세간에 조금 알려졌을뿐 아직도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기사 한내역시 “노동자 역사기록을 관리합니다.”라고 말해봤자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테니 나와 비슷한 처지인듯 하다.
기록관리는 그리 쉽지 않다. 우선 돈이 참 많이 든다. 그리고 기록은 참 위험하다. 위사례처럼 기록은 개인이나 조직의 치부를 드러나게 한다. 물론 기록에 대한 철저한 보완관리가 이루어진다면 별문제는 없겠지만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기록의 존재는 개인이나 조직의 삶을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나또한 학생시절 각종문건과 책을 많이 태웠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데 괜히 겁먹어서 그런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한편 그 기록들이 남아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이 사라진 것 처럼.....
기록관리는 참 어렵다. 어떤 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할 것인지, 무엇을 계속적으로 보존하고 무엇을 폐기할 것인지, 제한된 공간과 예산의 한계는 아키비스트(기록관리 전문가)를 계속 압박한다. 이에 대한 학계의 논의와 현장에 있는 아키비스트의 고민은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노동자의 자기역사 쓰기 운동을 자청한 한내 또한 이 고민에서 해방될 수는 없다. 어떠한 기록을 모아야 노동자의 역사가 올바르게 쓰여 질 수 있을까? 소장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떤 기록을 평가/폐기해야할까? 그 합리적인 기준은 무엇일까?
한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도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길도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내가 묵묵히 역사속의 소명을 이루어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내가 그렇듯 나도 다시 대학기록을 관리하기 위해 출근을 준비한다. 나는 기록관리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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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협의회에서 발표 중인 필자>(2007.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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