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추방당한 자들, 이주노동자
-이란주, 『아빠 제발 잡히지 마』(삶이 보이는 창, 2009)
엄기수(출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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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
차이는 있지만 차별은 없는 사회, 서로 다른 것들이 따로 또 같이 어우러져 풍성한 문화를 이루는 사회,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이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아닐까? 지극히 당연한 보편적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세계화 과정 속에서 인종적 또는 민족적 편견, 사회적 또는 경제적 차별이 사그라지기는커녕 풀어야 할 숙제로 끊임없이 전 지구를 괴롭히고 있다.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해마다 1,000만 명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고, 현재 2억 명 정도가 이주노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불법체류자’라고 명명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까지 합한다면, 실제 이주노동자 인구는 그보다 많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어느 순간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이주민이건 다문화사회건 너무 흔하디흔한 말이 되어 버렸지만, 이 땅에서 이웃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편견과 배타적 인식은 여전하다. 자본의 필요로 인해 국내 진입이 허락된 이들은 어느 순간이 되면 권력과 자본에 의해 끊임없이 추방을 강요당한다.
지난 2003년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애환과 아픔, 이들의 꿈이 담긴 감동적이고 슬픈 책 한 권을 접한 적이 있다.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을 해온 이란주의 『말해요 찬드라』가 그 책이다. 그리고 6년 만에 다시 두 번째 이야기가 『아빠 제발 잡히지 마』라는 제목으로 묶여 나왔다. 부천의 <아시아인권문화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 이란주가 15년간 함께했던 이주노동자, 이주아동, 이주여성 들의 삶의 모습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들을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서로 다른 생김새 너머에 같은 꿈, 같은 희망을 안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생각이 얼마나 우리 안에 배타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들 이주민을 죽음으로 모는 단속과 강제 추방, 지독한 노동 착취와 삶에 대한 꿈을 짓밟는 착취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사회가 내가 사는 지금 여기라는 끔찍한 사실과 직면하게 된다. 단속에 걸린 엄마를 따라 방글라데시로 돌아간 어린 모루가 아빠 혼자 남아 있는 한국으로 전화해 “아빠, 제발 잡히지 마” 하고 안부를 묻는 찢겨진 우리 시대의 가족과 만나게 된다.
이 세계로부터 추방당하는 것은 단지 이주민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용산의 철거민과 수많은 이 땅 곳곳의 철거민, 자본으로부터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비정규 노동자,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대중 모두가 지속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추방당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추방당한 자들이고, 이리 모두는 이주민인 것이다.
저자인 이란주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등록 노동자들 앞에는 그야말로 저승사자 같은 단속과 강제추방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등록이라는 꼬리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떨어지지 않으니, 그만 힘겨움에 어깨가 쳐집니다. 『아빠 제발 잡히지 마』는 그 발버둥에 대한 기록이요, 처진 어깨에 내려앉은 슬픈 노래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이주노동자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이 사회에 맞서 얼마나 더 싸워야 할까요. 얼마나 더 울어야 이주노동자들에게 일할 권리, 사람답게 살 권리가 허락될까요.”
이란주는 이 책 『아빠 제발 잡히지 마』에서 이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애환, 아픔과 절망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보며 언니처럼, 동생처럼, 때로는 어머니처럼 이들과 함께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또한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도, 업주들의 여권 압수, 임금 체불 등 온갖 송출 비리를 고발한다. 한편으로 불합리한 제도적 폭력과 온갖 차별 속에서도 가정을 꾸리고 희망을 일궈가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찾기도 한다. 저자는 이들 이주노동자와 이주 여성, 이주 아동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삶을 버티고 있는지 들려주고 있다. 또 이들과 아시아의 이웃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꿈을 제안한다.
더 이상 까만 눈동자의 한 아이가 “아빠, 제발 잡히지 마”하고 눈물 흘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저자의 말대로 조그만 앞마당에서 향내 나는 땀방울과 웃음을 흘리며 이들과 함께 춤추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