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노동자역사
1987년 12월 14일 마창노련 창립,
이 땅 위에 희망의 빛살을 내뿜다
안태정(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소득조사 결과 한국의 상위 10%의 가계소득은 하위 10%의 가계소득의 4.7배에 달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하위 10% 가구가 월 100만원을 벌 때 상위 10% 가구는 470만원을 번다는 것이다. 2008년 현재 한국은 전체 노동자 1,600여만 명 중에서 약 54%인 860여만 명이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2009년 1월 현재 실질 실업자 수는 346만 명(통계청이 공식 집계한 실업자 수는 84만 8000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격심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전체 노동자의 반 이상은 생존권 자체마저도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노동자들을 포함한 노동대중의 삶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형편없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현재의 한국의 정치적 지형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정당 출신이 대통령으로 있고 국회의원의 과반수를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정당이 차지하고 있어도 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정당은 주객관적으로 항상 노동자들을 비롯한 노동대중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활동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주장과 활동에 진정성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현재 노동자들을 포함한 한국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대중의 삶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불평등하고, 부자유스럽고, 즐겁지 못한 것은 어느 정도 노동자들을 포함한 노동대중의 자업자득(自業自得)·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고 본다. 나는 정치적 상황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본다. 제17대(2004.4.15)와 18대(2008.4.15) 국회의원 총선 때 민주노동당 등은 각각 약 13%, 5.7% 정도의 득표를 했다. 그리고 제16대(2002.12.19)와 제17대(2007.12.19) 대통령 선거 때 민주노동당 등의 대통령 후보자는 각각 약 4%, 3% 정도의 득표를 했다. 이것은 2002년 1,380여만 명에서 2008년 1,600여만 명 사이의 노동자들을 포함한 노동대중의 절대 다수가 국회의원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 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정당이나 대통령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지 않고 다른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투표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위에서 본 것과 같은 통계수치로 나타난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과 전체 노동자의 반 이상이 생존권 자체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비참한 상황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정당 소속과 출신이 아닌 국회의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대통령으로 있는 현재의 한국의 정치 지형과 일정하게 관계가 있다고 본다.
나는 노동자들을 포함한 노동대중의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처지를 생각하면 한편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노동자들을 포함한 노동대중의 다수에게 원망(怨望)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도 않다. 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정당이 생기고 난 이후부터 당원도 아니지만 국회의원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 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정당 이외의 정당에는 투표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 소속과 출신의 국회의원들과 대통령의 정치활동에 의하여 나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처지가 나빠지는 쪽으로 영향을 일정하게 받는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 소속의 국회의원들과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 노동자들을 포함한 노동대중의 다수와 같이 안 좋은 처우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정당 소속의 후보자에게 투표를 한 나도 받는다고 생각하니 억울(抑鬱)하기조차 하다는 마음이 없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포함한 노동대중에게서 희망을 본다. 2008년 진보신당을 만들어 낸 노동자들과 노동대중에게서, 2000년 민주노동당을 만들어 낸 노동자들과 노동대중에게서, 1995년 민주노총을 건설한 노동자들에게서, 1990년 전노협을 성립시킨 노동자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특히 민주노동당 당원을 제17,18대 국회의원으로 뽑은 창원의 노동자들에게서 빛나는 희망을 본다. 나는 결국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이 창원의 노동자들이 가는 길을 가리라고 강력히 희망한다. 이미 창원의 노동자들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을 만들어 낼 때부터 전국 모든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었다.

*사진:1987년 8월 11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창원대로로 나선 창원기화기 노동자들
(김하경, 『내사랑 마창노련』상, 47쪽)
1987년 12월 14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마산과 창원 노동자들이 마창노련이라는 지역노동조합협의회를 창립했다. 아래의 마창노련 창립 과정에 대한 서술은 전적으로 김하경의 『내사랑 마창노련』에 따른다. 알다시피 마산과 창원의 노동자들은 1987년 대투쟁의 소중한 성과물을 지키고 발전시키고, 앞으로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정권과 자본의 강경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노동자의 연대조직을 결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1987년 11월 18일 타코마노조 이흥석 위원장, 중천노조 이종엽 위원장, 소요노조 유은순 위원장, 대원강업노조 신덕우 위원장, 삼미금속노조 박희근 지부장, 세신실업노조 김명길 지부장 등이 회원으로 있는 청년노동자회와 7,8월 노동자 대투쟁에서 급부상한 몇몇 노조대표자들은 마창노련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민주적 조합운영과 조합활동을 위한 지역연대조직의 기초를 다져 나갔다. 추진과정에는 경남지역노동자협의회와 같은 노동운동단체나 지역활동가, 해고노동자 등 선진노동자 역량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다. 아울러 대통령 선거(12.16)가 끝난 후 노동자운동에 대한 탄압이 강화될 것에 대비하여 연대기구 결성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마침내 1987년 12월 14일 마산수출자유지역의 타코마, 중천, 시티즌, 수미다, 동경전파, 산본, 소요, 스타 등 8개 노조 대표자와 창원공단의 세신실업, 대원강업, 삼미금속, 한국중공업, (주)통일, 기아기공, 현대정공, 부산산기, 부영공업, 창원공업, (주)산다 등 11개 노조 대표자 및 간부 약 50명이 마산의 어느 중국집에 모였다. 창립 선언문이 낭독되었고, 참석자들은 이흥석 타코마노조 위원장을 마창노련 초대의장으로 선출하고, 4국 11부로 구성된 조직기구를 두었다. 즉 마창노련은 사무국에 총무부·재정부·복지부를, 조직국에 체육부·조직부·대외부를, 교선국에 교육부·법규부·선전부를, 조통국에 조통부·노사대책부를 설치하여 활동했다.

*사진 : 1987년 8월 13일 일본인 공장장 퇴진과 임금 인상과 수당지급 등을 요구하는 마산수출지역 한국삼미 노동자들의 농성(『내사랑 마창노련』상, 49쪽)

*『내사랑 마창노련』상·하, 겉표지

마창노련 마크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이었던 문성현에 의하면, 마창노련은 1990년 결성된 전노협의 선봉으로서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95년 민주노총이 건설되기까지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이끌어 왔고, 마창노련은 조합원 대중이 주체가 되어 공장의 벽을 뛰어넘는 활동과 투쟁, 곧 대중투쟁과 연대투쟁을 가장 모범적으로 펼쳤던 조직이었다.
이렇게 20세기 말 전노협의 선봉이었던 마창노련,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선도했던 마창노련, 조합원 대중이 주체가 되어 연대투쟁의 모범이 되었던 마창노련을 움직였던 선배 노동자들과 그들의 투쟁정신을 정치적 영역으로까지 일정하게 확대시킨 21세기의 창원의 노동자들에게서 나는 빛나는 희망을 본다. 언젠가는 창원의 노동자들에게서 본 희망을 전국의 노동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면 나의 아들과 딸이, 그리고 나의 아들과 딸의 아들과 딸이 …… 그것을 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노동자들을 포함한 한국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대중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평등하고, 자유스럽고, 즐겁게 사는 날을 맞이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