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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수급 비상의 진실과 거짓
박혜령 (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집행위원장)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렸다는 보도가 수십일 째 연일 이어지고 있다. 국민들은 소위 블랙 아웃을 겪지 않을까 관심을 쏟고 있다. 계속 수도권의 무더운 날씨로 인한 전력소비 증가로 인해 예비전력이 450만kW 미만으로 떨어지져 전력수급경보 '준비'단계가 발령됐다는 보도가 며칠째 이어진다.
한편 전력거래소는 안정적 예비전력을 500만㎾(전력예비율 5%)로 정하고, 예비전력이 떨어질 때마다 비상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단계별로 △400만㎾ 미만시 '관심' △300만㎾ 미만시 '주의' △200만㎾ 미만시 '경계' △100만㎾ 미만시 '심각' 조치가 발동된다.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나라에서 전력수급에 비상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짚어볼 일이다. 특히 밀양의 송전탑 건설과정에서의 심각한 주민 반대를 비롯해 핵발전소건설예정지의 주민 반대에 직면한 영덕의 주민들은 정부가 말하는 전력대란에 어떤 입장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문제는 전력수요(산업용)를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관리해야 한다. 무한정 공급하기 위한 전력원 개발은 불가능하다.
전력대란의 주요한 원인으로 정부는 소비의 급증에 따른 공급의 수준이 따르지 못하는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발전원의 추가 건설과 현재 분쟁중인 송전탑의 건설에 대한 정당성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는 최근 위조부품 사용으로 핵발전소 10여기가 가동이 중단되어 있고, 신고리3호기에서 송전에 필요한 송전탑의 1/3에 해당하는 송전탑이 밀양에서 제동이 걸려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러나, 가장 고질적인 전력대란의 원인은 수요관리를 등안시하고 공급중심의 정책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2008년 기준으로 8423kWh로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을 넘어섰다. 1998년부터 2010년까지 OECD 국가들의 전기소비량이 10% 이내로 증가하는 동안 우리는 124%가 증가했다. 이렇게 빠른 전기소비 증가의 원인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산업용 전기를 지나치게 싸게 공급해 왔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전체 전기소비 비중을 보면, 2010년 기준으로 산업용(광업, 제조업)이 53.6%, 일반용(영업용)이 22.4%, 주택용(주거용)이 14.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전기소비의 절반 이상이 산업용이다.
실제로 2011년 9월 종별 전력 사용량 및 전기 요금 총액을 확인한 결과, 주택용은 전체 전력 중 16%를 사용하고 전체 요금 중 21%를 부담했다. 그에 비하여 산업용 전력은 전체 전력의 55.5%를 사용하고 전체 요금의 47.7%를 부담했다. 일반용 전력은 전체 전력 중 23.6%를 사용하고 27.6%의 전기요금을 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격을 비교해도 그렇다. 가장 요금이 저렴하다는 경부하 시간대 (23: 00-9:00) 사용요금인 일반용 '을'은 kWh 당 52.6원, 산업용 '을'은 kWh 당 52.3원에 불과하다. (300kWh 이상 계약자에게 적용되는 일반용 '을', 산업용 '을' 사용자가 우리나라 전체 전기 사용량의 75%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가장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주택용 저압 100kWh 이하 사용자에게 적용되는 57.3원보다도 싼 요금이다. 더구나 산업용과 일반용은 주택용과는 달리 누진제도 적용받지 않는다.
원가 이하로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전력대란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산업용 전기를 원가 이하로 공급해 왔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유류 등 다른 에너지를 사용하던 산업공정에서 전기를 사용되게 되었다. 전기가 싸기 때문이다. 실제로 등유가격은 2002년 대비 2008년에 123.6%, 경유가격은 138.1% 오른 반면 전기요금은 5.8% 인상에 그쳤다.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전기를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니 더 많이 쓰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전은 대규모 적자를 봐 왔다. 2008년에는 한전이 무려 3조 7천억원의 적자를 냈다. 전기를 원가 이하로 공급하니 적자를 보는 것이 당연하다.
아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국내 제조업의 전력소비는 크게 증가해 왔고, 특히 가열·건조 공정의 전력소비가 급증해 온 것을 알 수있다. 과거에는 유류를 사용하던 공정을 전기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특혜 전기요금체제 개선해야
-최근 3년간 전기요금 할인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삼성
따라서 현재 전력수급의 문제를 초래한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을 지나치게 낮게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기업들에게 특혜를 줘 왔기 때문에 전력소비가 늘어나서 오늘날 전력수급의 문제를 초래한 것이다.
전력수급 문제에 대처하려면, 산업용 전기요금부터 현실화하는 것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면 기업들이 크게 어려워지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과장이다. 국내 제조업에서 전기요금이 자치하는 비중은 1990년의 1.57%에서 2011년에는 1.15%로 하락해 왔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50% 올린다고 하더라도 기업들에게 아주 큰 부담이 돌아가지 않는다. 또한 전기요금을 올리면 기업들도 전기소비를 줄이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될 것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은 탈핵발전소사회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그동안 산업용 전기를 싸게 공급하면서 산업용 전력소비가 급증해 온 것이 핵발전소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낳았다. 정부는 지난 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평균 6% 올리도록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50% 정도를 단계적으로 올려야 하고 이것이 현실화의 방안이다.
실제로도 싼 전기요금의 혜택이 일부 대기업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제철, 석유화학, 반도체 등의 업종을 하는 대기업들이 지나치게 많은 전기를 쓰면서, 싼 전기요금으로 특혜를 보고 있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이낙연 의원이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제출받은 '2011년도 산업용 전력 원가보상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기요금 할인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곳은 삼성전자로 모두 3140억 원에 달했다. 다음으로 현대제철 2196억, 포스코 1681억, LG디스플레이 1281억으로 1000억원이 넘는 혜택을 받았다.
SK하이닉스 968억, 한주 766억, LG화학 606억, SK에너지회사593억, OCI 567억, 고려아연 561억, GS칼텍스 561억, 동국제강 560억, 효성 497억, 한국철도공사 478억, 현대자동차 436억, 씨텍 435억, 동부제철 427억, S-OIL 411억, 한화케미칼 384억, 세아베스틸 359억 순이었다. 2011년 한해 전력사용량 상위 20개 기업에 준 전기요금 할인 혜택으로 인한 한국전력의 손실이 무려 779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손실의 부담은 국민의 혈세로 채워지고 결국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공급하는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