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스레터
..... 역사가 기억하는 인물
..... 모택동과 한국전쟁(9)_이영민(111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8-08-09 조회 684
 

모택동과 한국전쟁 <9>

  옮긴이 : 이영민

상륙작전에 대비하라.

 

1952122일부터 5일까지 막 당선된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가 한국전쟁 전선을 시찰했다. 그가 시찰한 주요 목적은 평화담판을 촉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착국면을 전환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귀국후 아이젠하워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고 공언하였다.(1)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의 정세는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했다. UN군은 상륙작전과 공중 강하작전 연습을 빈번하게 실시하였다. 이런 현상은 미국이 1953년초에 대규모 공세를 취해 한국전쟁을 끝내려 할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채택한 방법은 해군과 공군의 우세속에 한반도 동서 해안 두 곳에서 상륙하여 다시 한번 인천상륙작전을 재현하려는 것이었다. (2)

 

아이젠하워의 이 심상치 않은 거동과 관련 정보들은 충분히 위험한 신호였다. 모택동이 보인 반응은 매우 강렬하고 신속한 것이었다. 그는 주의력을 한국전쟁 전장에 집중하였다.

 

114, 지원군 사령원 대리겸 정치위원 등화는 모택동에게 한국전쟁 형세와 내년도 방침과 임무에 대한 보고를 보냈다. 그는 미국이 아군 측후방에 상륙할 몇몇 가능성에 대하여 제기하였다. 모택동은 신속하게 이 보고를 읽었다. 그는 결연하고 분명한 어투로 3개항의 지시를 썼다.

 

“(1) 5개내지 7개 사단이 분명히 한천과 압록강 선에 대거 상륙할 것이다. 그리고 아군 후방에 공중 강습할 것이다. 시기는 춘계에 대비해야 하며 아마 더 빠를지도 모른다. 아군은 보루와 갱도를 보강해야 하며 5개 군을 그 선에 배치해야 한다. 그중 4개군은 경험이 있는 군을 배치해야 하며 방어구역을 정해야 한다. 적의 상륙을 견결하게 저지해야 하며 착오가 있어서는 안된다.

 

(2) 두번째 상륙 위험지역은 통천과 원산을 잇는 선이다. 3번째 위험 지역은 진남포와 한천을 잇는 선이다.

 

(3) 절대로 적을 서해안에 상륙시켜서는 안된다. 특히 한천과 압록강 선에 상륙시켜서는 안된다.”(3)

 

127일 저녁 10, 모택동은 혼자 등화와 만나 의논하였다. 128일 오후 4, 모택동은 이년당에서 섭영진, 등화가 참석한 중앙 서기처 회의를 주재하고 한반도 문제를 토론했다.

 

129, 모택동은 등화에게 서신을 보냈다. “적이 이미 한천에서 청천강 선에 상륙을 결정했을 것에 대하여 예상하고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아군은 급히 준비해 상륙계획을 분쇄해야 한다.”(4)

 

129일 오후, 섭영진은 관련 책임자 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는 모택동의 한국전쟁 상황에 대한 판단과 결심에 따른 것이었다. 적이 북한의 아군 측후방에 상륙할 것에 대비해 준비작업을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1210일 저녁 11, 모택동은 이년당에서 고강,섭영진,등화가 참석한 중앙 서기처 회의를 소집하여 한반도 문제를 토론했다. 1111일 저녁 10, 모택동은 섭영진과 의논하기로 하였다. 모택동은 섭영진의 보고에 대하여 검토후 비준했다. 적이 아군 측후방에 상륙할 것에 대비한 각종 준비작업에 대한 보고였다. 그리고 긴급하게 점검하라. 임무를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1220, 모택동은 중공 중앙에 관련 지시를 기초하여 정식으로 하달했다.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하여 적의 상륙하는 모험을 분쇄하라는 지시였다.

 

지시에서 그는 이렇게 요구했다. “가능한 모든 역량으로 해안 및 그 종심에 견고한 방어공사를 해야 한다. 동시에 삼팔선 정면의 종심 방어공사를 강화하여 서로 부합해야 한다.” 등화를 서해안 지휘부 사령원과 정치위원으로 겸임하도록 하였다. 또 양흥초(梁兴初)를 부사령원으로 임명했다. 이것은 모택동이 지원군의 주요 지휘중심을 삼팔선 부근 정면 방어에서 연해안 종심의 측후방 상륙작전에 돌리기로 결심한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 전력으로 측후방의 병력배치와 교통운수를 강화시킨 것을 보여준다.

 

모택동은 지시에서 마지막으로 지적했다. “2년이 넘는 동안 우리 지원군은 조선 인민군과 협동하여 미제국주의와 그 흉맹한 군대에 맞서 영용한 전투를 벌여왔다. 우리는 위대하고 빛나는 승리를 얻었으며 적의 내막을 파악하였다. 우리는 많은 곤란을 극복하였으며 풍부한 경험을 축적하였다. 미제국주의는 우리와 싸우며 처음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실패를 당했다. 지금 적에게는 우리 측후방에 상륙하는 한수가 남아 있고 그것으로 우리를 타격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그 한수를 물리칠 수 있다면 모험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중앙은 우리 지원군과 조선 인민군이 협동을 통해 적의 모험적인 계획을 분쇄하리라 견결하게 믿고 있다. 동지들이 조심하고 근신하기를 희망한다. 침착하게 인내하고 전력을 동원하여 시간을 벌어야 한다. 적의 상륙작전에 대한 준비작업을 완성하여야 한다. 준비만 잘하면 승리는 바로 우리의 것이다.” (5)

 

19532, 미국의 군사적 모험활동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정식으로 취임한지 오래지 않은 195322일 국정보고를 발표하였다. 그는 대만해협의 중립화를 취소하여 장개석을 새장에서 꺼내어 미군의 한반도 군사적 모험에 부합하였다. 다음날 그는 UN군의 16개국 대표회담에 참가하여 중국에 대한 봉쇄를 하는데 그들이 지지해 줄 것을 설득하였다. (6)

 

미국의 모험적 행동에 대하여 모택동은 중국정부를 대표하여 엄숙하게 입장을 표명하였다. 27, 그는 전국정치협상회의 14차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미제국주의는 하루도 횡포한 요구를 포기하지 않고 침략 음모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 인민의 결심은 바로 조선 인민과 함께 계속 싸우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싸우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즉각적인 정전을 원하며 남은 문제는 장차 해결해 나가면 된다. 미제국주의는 그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게 좋다면 싸울 것이다. 미제국주의가 몇 년 더 싸우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그들과 함께 몇 년 싸울 준비를 하겠다. 계속 싸워 미제국주의가 손을 뗄 때 우리도 멈출 것이다. 계속 싸워서 중조 인민이 완전히 승리할 때 그만둘 것이다.”(7)

 

모택동의 연설은 이판사판격으로 모험을 벌이는 미국정부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었다. 연설은 매우 침착했으며 그 분량도 사람들이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모택동의 구체적이고 주도면밀한 지도아래 대규모 상륙작전에 대비한 준비작업은 분초를 다투며 긴밀하게 진행되었다. 1953년말이 되자 각종 준비작업이 모두 완성되었다. 삼팔선 부근의 정면 방어진지에서 동서 해안에 이르기까지, 또 중국 동북 경내까지 대종심의 엄밀한 방어체계가 구성되었으며 적이 발붙일 틈이 없게 되었다.

 

한국전쟁 전장에서 UN군은 공중정찰과 간첩활동을 통해 중국과 북한 군대가 측후방 상륙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아이젠하워가 전쟁을 확대하려던 행동이 서방 동맹국들의 반대를 불러 일으켰다. 영국 외교대신 이든경(Robert Anthony Eden 1897-1977)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미국이 한국전쟁을 확대하려는 행동과 장개석을 조롱밖으로 내보내려 하는 방법은 매우 불행한 정치적 영향을 줄 것이다. 군사적 우세도 보상할 수 없다.”(8)

 

여러 방면의 압력에 미국은 어쩔수 없이 담판탁자로 돌아올 것 말고는 곤경을 벗어날 수 없었다. 222UN군 총사령관 클라크는(9) 중국과 북한측에 서한을 보내 정전에 앞서 부상포로를 교환하자고 제의했다. 기회를 틈타 1952108일부터 UN군이 일방적으로 5개월 가까이 중단한 정전담판을 회복하려는 의도였다.(10)

 

모택동은 중국혁명을 영도하는 과정에서 이런 상황을 경험하였다. 적이 군사 공격을 하려는 음모나 기도를 알아차렸을 때 신속하게 반응하였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충분한 준비를 하였다. 또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고 유력한 여론을 만들어 적의 음모를 폭로하였다. 그리하여 적은 어려움을 깨닫고 물러나게 되고 그 모험은 실패로 돌아가곤 하였다. 이번에도 그는 미군의 상륙작전에 대비한 준비작업을 지도하여 또 하나의 예를 만들었다.

 

소련정부는 정전담판을 회복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찍이 19521225일에 스탈린은 미국의 뉴욕타임즈 외교부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기자가 당신은 한국전쟁이 끝내는 목적에 외교상으로 어떻게 협력하고 있습니까?” 하고 묻자 그는 우리는 협력에 동의합니다. 소련은 한국전쟁을 끝내는데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했다.(11)

 

195335, 스탈린이 세상을 떠났다. 주은래는 중국대표단을 인솔하여 스탈린의 장례에 참석했다. 331, 주은래등은 소련 지도부 인사 말렌코프, 베리아, 몰로토프, 흐루쇼프, 미코얀, 쿠즈네초프등과 회담했다. 소련 지도부 인사들은 정전회담 회복에 대하여 강렬한 희망을 표시하였다.

 

이때 모택동도 마찬가지로 정전회담의 회복여부에 대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314일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이자 공산당 주석인 고트월드(Klement Gottwald 1896-1953)가 사망했다. 317일 주은래가 인솔하는 대표단은 모스크바에서 프라하로 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 기간동안 모택동은 319일 주은래에게 전문을 한통 보냈다. 그는 클라크가 222일 쌍방이 먼저 걸을 수 있는 중상 포로를 교환하자고 했는데 우리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 교관화는 당신 의견에 따라 이미 반박하는 발언 원고를 채택했는데 내가 발언하지 못하게 하였다. 당신이 돌아온 뒤 다시 상의하여 처리하라고 하였다. 미국은 이번 요구는 아마 덜레스가 임명된 후 탐색하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쪽 대책은 두가지다. 하나는 반박하는 것이고 하나는 상담할 수 있다고 표명하는 것이다. 상담중에 형세를 보고 마지막 대책을 결정할 것이다. 당신은 소련 동지와 의논할 때 이 문제를 제기하여 그들의 의견을 구해 보라.”(12)고 요청했다.

 

321, 주은래는 중국 대표단을 인솔하여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그는 소련 공산당 중앙의 초대에 응하여 말렌코프, 베리아, 몰로토프, 불가닌, 흐루쇼프, 말리크, 쿠즈넻초프등과 한국전쟁 정전방안에 대하여 상의하였다. 얼마후 주은래는 모택동에게 전문을 두차례 보내 상의한 정황을 보고했다. 그는 두 번째 전보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소련측이 제의한 중심적 사고는 전쟁포로 교환문제에서 타협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평화회담에서 주도권을 쥐라고 한다. 해결방안은 클라크가 보낸 문건을 이용하는 것이다. 김일성과 팽덕회가 나서서 제네바 협약 109조를 근거로 동의한다고 대답하라는 것이다. 쌍방이 먼저 중상 포로를 교환하고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잠시 중립국으로 보낸다. 그리고 판문점 담판을 회복하여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그후 중조 쌍방의 당국이 각각 별도로 성명을 발표하여 전쟁포로 분류방법을 실행, 송환하자고 주장한다. 송환자는 즉시 송환하고 나머지는 즉시 지정된 중립국 -예 인도나 기타국인데 상황을 보아 다시 정하도록 한다.- 에 넘겨주도록 하고 공정한 해결을 보장하도록 요구한다. 소련 외교부장은 뒤따라 찬조 성명을 발표하고 소련은 연합국 대표들에게 같은 활동을 전개한다.”(13)

 

22, 모택동은 회신전문에서 소련의 제의에 찬성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것은 실제로 작년 9월 상순에 우리가 스탈린 동지에게 제의했던 3개 방안중 하나이다. 그 뒤 미국이 판문점에서 횡포한 태도였기 때문에 제출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방안을 제출하기 알맞은 시기이다. 하지만 우리측 성명가운데 포로를 협의를 한 자하지 못한 자로 나누고 송환을 원하는 자원하지 않는 자로 부르지 않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원하는 자를 송환한다.’에 줄곧 반대해 왔던 원칙과 충돌된다. 구체적인 절차는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처리하도록 하자.”(14)

 

323, 모택동은 정국옥(丁国钰)(15)에게 회신을 주어 김일성, 팽덕회에게 이야기하도록 했다. 이 전문에서 그는 분명하게 밝혔다. “클라크가 22일 걸을 수 있는 중상 포로를 교환하자고 제의했는데 우리도 이일에 대하여 동의토론 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답변 문서는 수일내 기초해야 하며 잠시 외부에 노출시켜서는 안된다.”

 

모택동은 회신 전문에서 미국측이 정전회담 담판에서 태도가 변화한 것에 충분히 주의해야 한다고 일깨웠다. 그는 대표단이 민활한 투쟁책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하였다. “상대방이 최근 판문점에서 하는 행동은 도발적이며 위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마땅히 경계심을 높여야 하며 좋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여 잘 준비해야 한다. 다른 한쪽 측면, 즉 상대가 이런 행동을 하는 목적은 우리가 정전과 관련한 주제를 말하도록 압박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상대가 조급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젠하워가 집권한 뒤 아시아에서 채택한 일련의 조치는 트루먼이 조성한 구속에서 벗어나 주도권을 쥐려는 것이다. 그 제안 즉 병상포로를 교환하자는 것은 상대가 판문점에서 태도를 바꾸기 위한 탐색행동일 것이다. 상대의 구체적인 행동을 분석할 때는 이 문제의 두 가지 측면을 주의해야 한다. 협의를 위반한 일에 대하여는 과거 우리가 경중을 가리지 않고 사건마다 항의하는 방침을 채택하여 원래 조금 피동적이었다. 최근 일주일내에 중대한 사건이 없다면 상대에게 항의하지 않기를 바란다.”(16)

 

328, 김일성과 팽덕회는 클라크에게 회신을 보냈다. 부상자와 병자 포로 교환에 동의하고 즉시 담판을 회복하자고 제의했다.(17)

 

330, 주은래는 중국 정부를 대표하여 한국전쟁 담판문제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는 중조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연구한 제안을 제출했다. “담판 쌍방은 정전후 즉시 수용된 모든 포로중 송환입장인 포로를 송환을 보장해야 한다. 나머지 전쟁포로는 중립국으로 보내야 하며 그들의 송환문제를 공정히 해결할 것을 보장해야 한다.”(18)

 

이 성명으로 한국전쟁 정전담판에서 전쟁포로 문제로 교착되었던 국면을 타개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수많은 국가의 지지를 얻었다. 또 압박을 받은 미국이 부득이하게 조중측의 건의를 기초로 정전담판 회복에 동의했다.

 

426, 한국전쟁 담판이 판문점에서 계속 진행되었다. 중조 양국이 미국을 상대로 정치적, 군사적으로 겨뤄 또 한번의 승리를 얻은 것이었다.

 

 

<>

 

1)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부 편저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전사군사과학원 출판사 199012월 제 2, 185

2)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부 편저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전사군사과학원 출판사, 1920122, 186

3) 모택동이 등화가 1952124일 보낸 조선전쟁 정세와 내년도 방침 및 임무 보고에 관련한 지시

4) 모택동이 등화에게 보낸 서신, 1952129

5) 적이 상륙하는 모험을 견결히 분쇄할 것에 대한 일체의 필요한 준비에 관련한 중공 중앙의 지시, 19521220

6) 중균(中筠)이 편집 전후 미국외교사 트루먼에서 레이건까지상권 세계지식출판사 19945월판, 232

7) 195328, 인민일보

8) 미국 월터 험즈(Walter G hermes,) ‘한국전쟁중의 미국육군1, 국방대학출판사, 19888월판, 456

9) 1952428, 미국 대통령은 클라크를 UN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는 명령을 선포했다. 리지웨이는 아이젠하워가 맡고 있던 북대서양조약기구 총사령관을 물려 받았다.

10) 1953329일 인민일보

11) 19521226인민일보

12) 모택동이 주은래에게 보낸 전문, 1953319

13) 주은래가 모택동에게 보낸 전문, 1953321

14) 모택동이 주은래에게 보낸 전문, 1953322

15) 정국옥, 당시 한국전쟁 정전담판 조중 대표단의 지도사업에 참여하였다. 이극농, 교관화는 미국이 담판을 중지한 후 이미 귀국하였다.

16) 모택동이 정국강에게 보내 김일성, 팽덕회에게 말하게 한 전문, 1953323

17) 1953329인민일보

18) 1953331인민일보

 

 
 
 
 
 
목록
 
이전글 ‘당신들’이 만들고 싶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_이광일(111호)
다음글 산재추방운동의 발전적 전망수립을 위하여(전노협)_이영기(111호)
 
10254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공릉천로493번길 61 가동(설문동 327-4번지)TEL.031-976-9744 / FAX.031-976-9743 hannae2007@hanmail.net
63206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앙로 250 견우빌딩 6층 제주위원회TEL.064-803-0071 / FAX.064-803-0073 hannaecheju@hanmail.net
(이도2동 1187-1 견우빌딩 6층)   사업자번호 107-82-13286 대표자 양규헌 COPYRIGHT © 노동자역사 한내 2019.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