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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하고 남겨서 노동교육꺼리로 남들어보자_이승원 (31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1-06-03 조회 875
 
기록하고 남겨서 노동교육꺼리로 만들어보자
 

이승원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며칠 전 기록학을 공부하는 H대학교 대학원생들이 대학원 수업으로 한내에 방문하여 견학 겸 자료관리 방법을 공부하고 갔다. ‘노동자역사 한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교수와 논문을 쓰는 학생들이 제일 많았는데, 대부분 기록학과 사회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기록한 분야에서는 한내 사례를 들어 2개의 논문이 나왔다. 그 다음으로 방문자 중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온 방문객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고 온 분들(미국, 일본, 호주 등)이 다녀가는 곳이 되었고 나름 입소문도 났다. 최근 일본에서 온 법정대학 교수는 작년에 다녀간 일본 오하라연구소 소장께서 한국에 가면 꼭 가보라는 추천으로 왔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노동자들은 일이 있어 오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물론 한내에서 견학을 적극 권장하지 않은 점도 있지만, 노동운동이 현안 문제에 올인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역사성을 상실한 운동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고민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한내의 상근자들은 외부에서 견학을 온다고 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방문자에게 설명과 지원을 담당할 사람이 없다는 점과 자료가 넘쳐나 방문객이 앉아 차 한 잔 할 공간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방문자가 있으면 일을 중단하고 설명하지만 방문자가 만족할 정도로 세세하게 챙기기 어려운 조건이다. 특히 자료를 찾으러 온 연구자에게는 자료에 대한 설명도 해주면 좋은데 조건상 쉽지 않고, 차분하게 앉아서 자료를 볼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니 미안하기까지 하다.

둘째는 소규모로 만든 간이 전시 공간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소장하고 있는 박물의 10%도 공개하지 못하는 좁은 공간이라 박물을 통해 노동운동 역사를 간추려 보여주기에 한계가 있다. 노동운동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니면 여간해서는 설명을 들어도 그 흐름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감동했다고 하고 후원까지 하고 가는 사람들을 보며 어깨가 더 무거워진다

최근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울산 조합원들과 의료연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몇몇 노동조합의 조합원 교육을 살펴보니, 강의 중심이었던 교육이 실제 조합원들이 체험할 수 있는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예전과 달리 많이 변했다.

울산에서는 내가 맡은 강의를 마치고 시간이 남아 조합원들과 같이 견학을 갔는데, 선사시대 유물 전시관, 유적지 가보기, 옹기마을 체험 등 재미있고 유익한 것이 많았다. 진행하는 교육위원의 수준도 상당하여 박물관 학예사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교육을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보였다. 몇몇 노동조합들의 테마여행 프로그램도 역사 유적지를 중심으로 조합원들이 흥미롭게 가족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단협에 의한 조합원교육시간과 조합의 재정으로 진행되는 테마여행들에 노동이 없다는 점이다. 노동의 역사를 찾아 가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의 홍보관과 전시관, 유물을 보고 있는데,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곤란한 것 아닌가? 물론 민중들의 생활사라면 가서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에 노동자교육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참 다양한 대안들이 나왔다. 15년 전에는 방법론이 제일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골방에서의 학습 형태가 민주노조 쟁취로 양성화되고 공개되면서 일방적인 강의 방식은 교육 효과가 없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영상교육, 슬라이드, 토론식 교육, 분임토의 방식 등 많은 발전들이 있었지만, 교육방법은 돈의 위력 앞에 자본을 앞지를 수 없었다.

심지어 시공을 초월한 사이버 교육까지 등장 했지만, 왜 오프라인 교육이 필요한지, 사이버교육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사이버교육의 한계를 안 자본은 이미 교육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자본이 직무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에 사이버교육을 도입한 것은 오래전인데, 자본은 결국 현장의 노동강도에 지친 노동자들이 내용의 습득보다는 클릭질로 형식적인 이수만 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통제 방법을 강구하고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는 교육 방법론(교수법)을 뛰어 넘어 근본적인 내용과 형식의 문제까지 새로운 것을 실험하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대학에서도 변화는 마찬가지다. 해당 분야 일을 하는 사람을 수업 특강 강사로 세우거나, 학생들에게 주제를 주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서 리포트를 쓰게 하는 등의 방법을 도입한 지는 이미 10여 년이 넘었다. 최근에는 아주 수업을 현장으로 옮겨 진행하는 방식까지 도입하고 있다. H대학 대학원생들이 교수와 한내를 방문한 것도 정식 수업을 진행한 것이다.
 
노동진영에서 하는 열사교육 중 독특한 것으로 열사묘역 교육이 있다. 일종의 현장 교육이다. 나도 지난 몇 년간 10여 번의 강의를 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 진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누워 있는 열사묘역에서 열사의 사상과 투쟁을 이야기 하는 것이 너무 죽은 교육이 아닌가 싶어서다. 묘역이 아니라 열사가 투쟁하고 분신했던 장소에서의 교육이 더 생동감 있고 살아 있는 교육이 아닐까.

열사뿐 아니라 노동 교육을 교실 없는 학교’, ‘현장 교육중심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4?3항쟁, 4?19혁명, 5?18항쟁이 저절로 기록되고 남았던 것이 아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기억한다면 울산의 동지들이여! ‘남목고개에 안내문이라도 세우자. 여의도와 종묘, 명동성당에 ’96 ’97 노개투 총파업의 기록이라도 남겨보자. 곳곳에 투쟁의 흔적들을 남기고, 거기서 교육하고 이 땅 자본들에게 똑똑하게 기억하라고 경고하자. 묻히고 사라진 역사는 다시 반복한다. 지역이나 중앙이나 노동의 역사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될 때, 교육도 연구 정책도 제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현재를 기록하고 놓친 과거가 없는지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그것이 침체돼가는 노동운동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밝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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