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H 여성노동자를 학살하고 죽은 박정희
김영수(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
1979년 8월 11일, 유신체제는 가발제조업체인 YH무역의 여성 노동자 200여 명이 폐업 철회, 임금 지급 등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면서 농성하던 신민당사 4층에 경찰을 난입시켜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를 학살하였다. 농성투쟁을 이끌고 있었던 김경숙 상무집행위원이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과정에서 밑으로 떨어져 사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도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함께 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반유신운동을 전개하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제명하였다. 유신체제는 이 후에 발생한 부마항쟁조차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하였다. 그리고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져 죽음을 당한다. 그 동안 유신체제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고 바라보는 보편적인 역사의 평가이다. 그 누구도 이러한 과정을 부정하지 못한다.

농성중이던 YH 여성 노동자들
어떤 체제이든 절대 권력자인 한 사람의 죽음으로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왕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왕정체제가 약 600여 년 동안 유지된 조선의 경우가 그렇다. 절대왕정체제의 토대가 확실하게 구축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박정희가 죽자마자 유신체제가 몰락하였다는 것은 그마만치 유신체제의 토대가 허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유신체제의 기간이 짧았다는 것만으로 설명이 되질 않는다. 박정희는 제왕의 권력을 누리면서 유신체제의 토대를 구축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유신체제의 토대를 투쟁으로 허물었다. 제도권 야당은 단지 국가권력을 분점하고 있었던 반유신운동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무임승차하는 기회주의 세력이었다.
1972년 10월, 유신체제가 도입되고 난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기 이전까지 유신헌법은 박정희에게 제왕의 권력을 보장하였다. 박정희는 국가최고통치권자로서 입법권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토대였다. 우리나라의 국회는 대통령의 통법부로 혹은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하였다. 당시의 야당인 신민당은 소위 ‘불임정당’이라고 명명되기도 했다. 정치세력들 역시 반유신운동의 한 주체였지만, 그들은 유신체제의 권력분점구조에 편입되어 있었다. 유신체제는 이들과 함께 유신체제의 사회적 토대를 강화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유신체제 하에서도 노조결성투쟁, 노조파괴 분쇄투쟁, 어용노조와 유령노조에 반대하는 노조 정상화 투쟁,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투쟁, 법정수당 및 퇴직금 요구투쟁, 도산 및 폐업으로 인한 체불임금 요구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1970년대 전반기의 파업투쟁은 매년 평균 400여 건에 불과했지만, 후반기에는 매년 평균 1180건으로 증가하였다. 1976년 754건에서 1977년 1,064건, 1978년 1,206건, 1979년 1,697건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대규모화?격렬화?정치화하는 양상을 나타났다. 유신체제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및 노조민주화’ 투쟁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중심으로 한 반민주악법 및 중앙정보부와 같은 국가정보통치기제로 억압하였다. 민주노조운동을 지원하는 종교기관을 공산주의 세력으로 몰아가는 여론의 조성, 노동조합운동의 선진적 간부들에 대한 개별적인 회유?탄압, 그리고 노동자 정치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을 고립화하려 하였다. 그렇지만 노동조합의 투쟁은 지속되었다. 조합원 대중들의 잠재적인 투쟁역량 역시 점차적으로 강화되었다. 1970년 대 후반, 노동자들은 생산현장의 문제를 중심으로 반유신투쟁의 주체로 존재했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유신체제의 사회적 토대를 약화시키거나 허물어뜨리는 진앙지였다.

농성중인 YH 조합원들
그 중심에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1975년, YH무역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1975년 노동조합의 결성 계기도 건조반의 현장투쟁이었다. 물론 회사 측은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과정에 폭력적으로 개입하여 세 차례의 시도를 실패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나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1975년-1979년까지 임금인상투쟁, 상여금투쟁, 단협갱신투쟁, 폐업철회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노동조합은 이 과정에서 이후 위장휴업과 공장이전에 대한 노사협의 및 인원감소 때의 충원 등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YH무역은 석유파동, 가발산업 후퇴, 수출 감소 등으로 1979년 4월에 1차로 폐업하였다. 노동조합은 긴급 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폐업철회를 요구하기로 하였다. 이 대의원 대회에 동광모방 지부장 외 3명, 원풍모방 부지부장 외 4명, 콘트롤데이타 지부 임원 2명 삼성제약 지부장 등이 참여하였다. 서슬 퍼런 유신체제 하에서 전개된 노동조합운동의 연대였다. 목숨을 걸고 나서야만 할 시기에 전개된 계급적 연대로 보아야 한다.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모습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너무나 흡사하다. 단지 YH자본이 호텔 르네상스, 기륭전자, 이랜드, 그리고 KTX의 자본으로 부활한 것에 불과하다. 여성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거나 정리해고의 제1순위로 당첨되는 현실이다. 당시 YH무역은 임금을 체불하고 노동권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하였다. 여성 노동자들이 사측의 이러한 태도에 저항하자,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폐업 철회와 임금 청산, 고용 승계를 위한 농성을 시작하였지만, 회사는 기숙사·식당까지 폐쇄하였다. 1975년 7월 25일, 노동조합은 긴급 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결의하였다. <내무부 장관은 엉터리 답변을 철회하고 진실을 밝혀라. 우리는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다시 밝힌다. 정부와 조흥은행은 YH문제의 해결을 위한 근본대책을 밝혀라. 7월 30일까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에는 조합원총회를 개최하여 투쟁을 전개한다.> 그렇지만 유신체제와 자본은 YH여성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YH무역은 오히려 8월 6일에 부채와 적자 운영,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 등을 이유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폐업을 공고하였다. YH여성노동자들은 폐업철회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심정으로 신민당사를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러한 의지때문이었을까? 유신체제는 소위 101작전, 즉 공권력 투입을 지시하여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YH여성노동자들을 강제로 해산하였고, 이 과정에서 김경숙 상무집행위원을 학살하였다.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단지 그녀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1970년대 모든 여성노동자들의 문제였다. 대부분 법률적인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면서 저임금 상태, 격심한 임금격차, 노동조건의 열악함, 하루 12시간 내외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만 했었기 때문이다. 유신체제는 여성노동자들을 저임금 착취구조에 동원하였고, 이에 저항하는 여성노동자들을 국가폭력으로 억압하였다. 유신체제도 그녀들의 투쟁을 폭력적으로 학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유신체제의 노동자 탄압정책은 특히 YH여성노동자들에겐 무의미했다. 그녀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신민당사를 점거하였던 것이다.

신민당사에서 끌려나오는 YH 조합원들
학살의 대가는 곧 죽음이었다. 특히 노동자의 정당한 투쟁을 공권력으로 학살한 죄의 대가는 유신체제의 몰락이었다. 박정희는 김경숙 상무집행위원을 학살하고 난 이후 85일 만에 김재규의 총탄에 죽었다. 형식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자들의 대중투쟁으로 사망하였다. 노동자들은 유신체제를 용서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계급적으로 학살당하지 않았다. 한 여성노동자는 학살당했지만, 노동자들은 박정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정치세력은 박정희의 제왕적 권력에 머리를 조아렸지만, 노동자들은 오히려 제왕적 권력을 흔들었다. 지배세력 내부의 갈등을 표면화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정치세력들은 제왕적인 절대 권력자가 죽자 국민들에게 대통령의 깃발을 먼저 꼽겠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1980년 3월에 있었던 3김 유세정국이었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은 3월대투쟁으로 유신체제를 완전히 종식시키고 자신의 해방세상을 만들려 하였다. 1980년에 총 2,168건의 파업투쟁의 약 90% 이상이 3월에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탄광 노동자들도 자신의 지역을 완전히 해방시키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정치세력들이 권력을 ?는 동안, 노동자들은 해방세상을 향해 나갔던 것이다.
노동자를 학살하는 체제는 곧 사망이었다. 단순하게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진실이다. 사망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권력을 다른 정치세력에게 넘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빨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