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생의 6월 이야기 소요(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환희의 끝 1987년 6월에 시작된 전사회적인 민주화의 바람과, 같은 해 7·8·9월 동안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의 파고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88년 5월. 한 청년이 명동성당 교육관 5층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양심수를 석방하라. 조국통일 가로막는 미국 놈을 몰아내자.” 조성만 열사였다. 이 청년의 죽음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는 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울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구호를 2017년의 상황으로 옮겨본다면, “한상균을 석방하라.” “재벌체제 해체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그는 투신하기 직전 남긴 유서에서 언론의 자유와, 노동자·농민의 생존권, 참된 교육에 대한 열망을 강조하며 자신이 다가서고자 했던 죽음의 의미를 명확히 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2017년 3월. 노태우의 6.29선언을 연상하게 하는 ‘박근혜 탄핵심판’이 가결되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과연 환호뿐이었을까. 환희 뒤에 남은 것들. 그 너무나 큰 환호에 파묻힌 절규들은 어디로 향했을까. 그 때는 어땠어요? 1987년 1월 1일. 취업준비생이었던 이승원은 ‘LG 유플러스’의 전신인 데이콤(당시 한국데이통신)에 입사했다. 참혹한 세상이었다. 유신체제의 군사 문화가 여전히 사회 곳곳에 녹아있었다. 머리를 박박 깎은 아이들과 군사훈련을 받는 학생들.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죽임을 당하는 운동가들. 그렇게 ‘빨갱이’로 호명되는 수많은 적들이 있었고, 그 위에는 80년 광주를 총칼로 짓밟고 선 위대한 독재자가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 마음에는 울분이 있었지. 미안함이 있었고, 싸워야한다는 소명이 있었어. 저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사람의 마음은 이데올로기로도 조종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 이승원은 그 때를 그렇게 추억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했던 시절이지만 평범한 사무직 노동자였던 그를 자꾸만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거리로 불러내는 어떤 것이 있었다. 아마 세월호의 아이들과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외침이 사람들의 발길을 광화문의 거리로 조금씩 안내해 온 일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87년의 학생과 시민, 노동자들은 틈만 나면 거리에 나가 파출소에, 전경버스에 돌을 던졌다. 길거리의 상인들은 손수건에 물을 묻혀 최루가스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눈앞의 거센 폭력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돌멩이를 하나 씩 움켜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자신 이외에도 지키고 싶은 것이 많았던 시절. 그렇게 민중들은 체육관 선거를 끝장내고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민주와 반민주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역사가 전진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머무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 그 때도 그렇게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싸웠는데, 이번에도 그랬던 거지. 돌아보면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게 지났나 싶어. 명동성당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은 다 그대로인데. 30년이나 지났다니.”   응답하라 1987 1988년 노동자 대회에는 피로 쓴 ‘노동해방’ 깃발이 휘날렸다. 노동해방. 이듬해 조성만 열사가 떠난 자리에서는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의 거센 파업이 있었다. “너희들이 나를 잡아가도, 민주노조의 정신을 가두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부르짖던 정윤광 위원장의 외침. 이렇게 피와 땀으로 얼룩진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은, 매년 6월 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찾아와 묻는다. 민주주의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최종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은 한상균 위원장.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법원에 출두하는 이재용 부회장. 그런 풍경들이 품고 있는 어떤 서늘함. 이 서늘함은 감옥에 갇힌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구출을 요청하는 하나의 신호가 아니었을까. 지난 몇 년간 ‘시그널’이나 ‘응답하라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어떤 무형의 신호에 대한 향수로부터 비롯했을 것이다. 길을 잃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가던 길을 멈추고 온 길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 격동의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역사에게 물어본다. 타는 목마름으로 뒷골목에 몰래 쓴 그 이름.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언제쯤 해방될 수 있을까. 응답하라 19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