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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읽는 현장
..... 여공 생활 10년 _ 이미현 (45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2-09-16 조회 942
 

1974, 1984년 여공들의 생활이 드러나는 글이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은 이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글이 쓰이고 28년이 지났다. 물가 오른 것에 비교하면 노동자 일당은...

 

  여공 생활 10

 
이미현 (봉제공) _ 민주노동 3. 1984.6.25.


지금부터 꼭
10년 전에 나는 17살의 나이로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가발공장에 들어갔다. 현장의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이곳은 일을 하는 대로 먹는 완전 도급제였기 때문에 작업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이 따로 없었다. 현장과 기숙사가 아주 가까워 새벽 4시만 되면 현장에 불이 켜진다. 이때부터 작업이 시작외어 점심시간이 12시부터 1시까지라고 정해져 있었지만 1230분이 되어야 식당으로 뛰어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현장으로 뛰어 와서 열심히 일을 한다. 저녁 7시가 식사시간이지만 대부분이 밥도 먹지 않고 일만 한다. 잔업을 안 하면 7시 퇴근, 잔업을 하면 10시 퇴근이지만, 그 시간도 아랑곳없이 일만 계속한다. 책임자는 일찍 가고 반장이 있다가 현장의 불을 내리면 일을 하던 공원들은 하던 일감을 정리도 못하고 주섬주섬 앞치마에 담아가지고 기숙사로 가져와 실밥처리를 하고 내일 일할 준비를 한다. 기숙사에서는 11시가 취침시간이라 전기가 나가버린다. 아래층에 있는 식당 한구석으로 가져가 하던 일을 계속한다. 하다 보면 새벽 1시나 2시가 되어야 일을 끝내고 기숙사로 들어가서 자고 다음날이면 또 되풀이해야 한다. 식사시간에 밥을 먹지도 않고 조금이라도 잠을 자기 위하여 미싱판 위에 엎드리면 공장장이란 사람이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니면서 밖에 나가 바람을 쏘이면 졸음이 달아날 것이라면서 모두 밖으로 내쫓기까지 한다.

하루 일과는 이러하고, 휴무는 첫째 셋째 일요일 뿐 달력에 칠해진 빨간색의 글씨는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않는다. 법에 정해져 있는 월차. 생리, 연차 휴가는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었고, 1년에 두 번 있는 명절에는 3-4일 정도씩 쉬는데 그러면 그달 월급은 평소보다 반으로 줄어든다.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한마디로 말해서 살벌하다. 동료들 간에 서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하기 쉽고 단가가 센 일감을 가져가려고 싸우고 야단이다. 현장 책임자는 공원들에게 욕설과 구타를 빈번히 하여 어떤 날에는 귀고막이 터지기도 하였으며 단체 벌을 주는데 하얀 눈 위에서 오랫동안 토끼뜀을 시키기도 하였다. 나이는 13살부터 28살까지였으며, 1974년 당시 나는 16-18시간 일해도 한 달에 7,400원 밖에 못 받았다.

이 공장에서 7년간 다니다가 그만두게 되어 크고 작은 봉제공장을 세 군데나 돌아다녔지만, 너무 힘들고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 않아 보다 나은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리하여 1983년 초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회사는 창설한 지가 6년밖에 안 되는데, 4-5백명을 고용한 방계회사가 있고, 하청이 100여 군데나 된다. 처음에는 다른 회사의 하청을 받고 남의 건물을 빌려 5-6명으로 시작했다고 하니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그동안 이 회사가 이만큼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여공들의 눈물어린 고생이 있어야 했다. 작업장 천정이 뚫어져 위층 화장실에서 오물이 미싱판 위에 철썩 떨어지면 닦아내고 옆으로 미싱을 옮겨놓고 일을 하기도 하고, 출하 날짜가 급하다고 3-4일 계속 철야작업을 시키는 일이 빈번하였으며, 여름날 30-40도를 오르내리는 현장에서 3-4일씩 곱빼기 철야작업을 하고 나면 대여섯명이 집단으로 몸져 누울 수밖에 없었는데,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은커녕 약도 한번 못 사다 먹고 기숙사에 누워 천정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요즘에도 아침에 출근하면 하루 작업목표량이 주어지는데,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밤 11-12시까지 연장을 하지만 그에 대한 수당은 지급되지 않으며, 결근자가 있어도 그 반의 전체 작업목표량을 줄여주지 않는다. 몸이 아파 출근하지 않으면 일이 바쁘다고 기숙사나 집까지 데리러 보내서까지 일을 시킨다.

그리고 하루를 결근하면 7일치 일당이 빠지는데, 결근한 그날치, 주휴수당 4일치, 월차, 생리수당 모두 빠지게 되며, 일요일 특근을 해도 특근수당은 지급되지 않으면서 결근하면 평일과 마찬가지로 7일치 수당이 빠진다.

작업할 때 쓰는 쪽가위와 핀셋트도 주지 않아서 작업자가 시중에서 사다가 쓰는 실정이다. 현재 임금수준은 일당으로 견습초임 1,980, A3,500원이며 공원들의 나이는 14-27살이다. 한참 일을 하다보면 손가락이 닳아서 피가 맺히기 때문에 반창고를 손가락 끄트머리마다 붙이고 일해야 한다. 빈혈과 영양실조로 일을 하다가 쓰러지는 사람도 많다.

6년만에 급성장한 회사에서 일하는 우리들의 근로조건은 너무나 가혹하여, 입사 후 일주일 이상 견뎌 내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오랫동안 다니고 있는 사람을 오히려 이상하고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내가 처음 입사할 때는 600여명이나 되던 공원이 이제는 350명밖에 없다. 퇴사하려고 해도 기숙사에서 소지품을 내주지 않으므로, 그냥 탈출했다가 한달 뒤 월급날에 퇴직금이나 지난달치 월급 받으러 회사 정문 경비실에 오면, 그전보다 조건을 낫게 해줄테니 재입사하라고 권하다가 듣지 않으면 밀린 임금도 소지품도 내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10년동안 봉제여공의 근로조건은 나아지지 않았는데, 이는 내가 다닌 현장뿐만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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