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이시나요
이영기(노동자역사 한내 자료국장)

잘 보이시나요?
누가 어느 어느 건물에 있는지 보이시나요?
잘 안 보이나요?
죄송합니다. 여기에서도 잘 보이게끔 해 드리지 못하고 있네요....
“사람들은 그들을 보려 하지 않았다. 남자화장실에 여성노동자가 들어가도 그 누구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히 볼일을 본다. 강의 중에도 회의 중에도 그들이 일하는 것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자신들의 일을 그냥 했다. “아 저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구나....” 이렇게 유령으로 살던 분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통해 사람이 되고, 당당한 노동자가 되었다.
『우리가 보이나요』 서문 중에서....
홍익대에는 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을 맡아 해 주시던 170여명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2011년 1월 1일에도 출근, 정상적으로 일을 했는데 1월 2일부터 학교측에서 교직원들을 동원, 열쇠를 빼앗고 건물 출입 비밀번호를 바꿔 버리고 일을 못하게 한다. 그리고는 ‘우리는 책임이 전혀 없으며, 이제 당신들은 우리와 상관없으니 돌아가라’는 말과 면박만 되풀이한다.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집단해고를 당했는데 누구에게서도 아무런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2011년 1월 3일 오전 9시 홍익대 청소, 경비, 시설 노동자 150여명(비조합원 포함)과 연대단위 50여명이 학교 본관 6층 총장실 점거에 들어갔다. 2월 20일까지 진행된 49일간의 농성투쟁을 많은 사람들이 ‘유령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받아들이진 않았을까?
우리가 사진처럼 보고 있는 저 기록물은 사진이 아니다. 가로 1800cm에 세로 120cm의 크기의 나무합판 위에 홍대 미대생들이 그려 준 학교 조감도 실물이다. 우리 눈에 보여도 보이지 않는 듯, 유령이 아닌데도 유령취급을 받았던 노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일터와 이제야 오가기 시작한 마음을 노동자와 학생들이 직접 표시한 것이다.

“‘유령 캠프’ 일정을 시작함. 50여명의 홍익대를 비롯한 타 대학 학생들이 캠프에 참여함. 인권운동 사랑방 명숙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주제로 강의를 들음. 이어 농성 조합원과 조별 간담회 시간을 갖음. 농성 노동자들의 살아온 이야기와 일터에서 유령처럼 일했던 아픈 이야기를 나눔. 이어 홍대 미대생들이 직접 그려준 홍익대 건물 조감도에 농성 노동자들이 일한 장소에 농성 조합원의 이야기를 담은 깃대를 표시하고 ‘더 이상 유령이 아님’을 기억하기로 함.”
......농성투쟁 일지 18일차(2011년 1월 20일) 중에서....
2011년 2월 20일, 49일간의 농성투쟁은 원직복직과 단체협약 체결,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 등을 쟁취라는 성과 속에 마무리 되었다. 노동자역사 한내는 농성장을 정리하던 그날 홍익대 농성장에서 다른 기록물들과 함께 저 조감도를 수집했다. ‘더 이상 유령이 아님’을 기억하기로 약속한 저 기록을 보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여긴다.
다만, 아직 그 때의 기록물들을 다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종이가 아니거나 크기가 남다른 기록물들을 적절히 보존할 환경을 다 갖추고 있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이 기록물이 유령 같은 존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반성과 다짐으로 소개의 글을 쓴다.
<참고자료>
* 공공노조 서경지부 홍익대 분회 외,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 투쟁 기초자료집』, 노동자역사 한내 엮음, 2011
* 이승원, 정경원, 『우리가 보이나요-홍익대 청소 경비 노동자 이야기』, 한내, 2011
*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 까페(http://cafe.naver.com/voice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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