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인, 너무나 이성적인
이승원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동지들의 죽음을 놓고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이후 발생한 19번째 죽음에 이제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고 절규하며 사생결단 하고 있으며, 희망연대노조는 KT공대위와 함께 KTcs지부 고 전해남지부장(50세)의 분신에 ▲이석채 KT 회장과 김우식 KTcs 사장의 사과 ▲강제사직 강요한 책임자 처벌 ▲부당한 전환배치-일방적 임금 삭감 철회 등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또한 철도노조 해고자이자 노동조합 간부였던 고 허광만동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철도노동자들은 사측의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세 조직 간의 연대 투쟁도 진행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쌍용자동차, KT와 KT의 자회사들(KTcs 전직자 중 21명이 죽고 그 중 5명이 자살함)에서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어져 왔다는 것이다. 철도도 수많은 산재사망자와 길거리로 내쫓긴 해고자들을 생각한다면 죽음이 이번에만 생긴 일회적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 냉정하다. 수많은 사회문제들이 TV토론과 시사 방송에서 다뤄지기는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방송매체의 많은 시간들은 한나라당 수습책과 민주당을 위시한 야권 통합에 할애되어 있다.
노동자의 죽음은 일회성 뉴스에 국한되고 있고, 그냥 안타까워 혀를 차는 정도이고 조문하는 정도이지 어느 누구도 해결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 죽음들을 책임져야 할 자본과 정권은 당당하다.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는 노동자들 몇 사람 죽는 거야 관심 꺼리도 아닌 것이다. 당사자들만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 가운데 한을 품으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자본과 권력이 노동자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한 적은 없다.
다만 그 죽음이 몰고 올 여파에 대해 고민하고 무서워했을 뿐이다. 노동운동의 목표가 무엇인가? 노동해방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가? 죽음 앞에 무슨 논리와 법이 필요한가? 노동자들이 죽음을 택하는 세상이라면 그 운동도 한계에 다다른 게 아닌가? 우리의 과거에는 열사정국이라는 것이 있었다. 앞이 깜깜하고 다들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열사들이 나섰다. ‘나의 죽음을 딛고 일어서...’ 라고, 동지의 죽음 앞에 물불을 안 가리고 일어서 어깨동무하던 노동자들이 열사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어 왔다.
2003년도 열사 정국이 있었다. 연초 배달호 열사로부터 하반기 김주익, 이해남, 이현중, 이용석, 곽재규 열사의 죽음 속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몇 년 만에 꽃병과 파이가 등장하였다. 여론이 안 좋을 것이란 걱정과 달리 여론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 사회적인 사안이 너무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조용하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노동조합의 간부들과 노동자의 모습보다는 감성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 이렇게 가다가는 다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야 할 때 아닌가? TV오락 프로에서 이야기 하는 ‘나만 아니면 돼?’인가? 몇몇 정규직 노조에서는 전임자 임금 때문에 돈을 쌓아 두고도 사업과 연대를 안 한다고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정책 노조, 법을 잘 아는 노조, 정치적인 노조.....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인간애와 동지애로 뭉친 감성적인 문화에서 출발했음을 잊지 말자. 지금 시기라면 민주노총에서 전국노동자대회라도 열고 노동자들의 죽음을 해결하기 위한 비상시국임을 선언하고 투쟁해야 이 죽음의 행렬을 지연이라도 시키고 진정한 희망을 갖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