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유의 ‘12월’은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쟁취하기 위한 어둡고 추운 날을 ‘정복하는 태양이 탄생’하는 때, 뜨거운 열정의 계절이었다. 또한 이재유의 ‘크리스마스날’은 가롯 유다 같은, 1%를 대변하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큰 감옥’에서 ‘작은 감옥’으로 그의 육신이 공간 이동하는 날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99%의, 99%를 위한, 99%에 의한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향한 투쟁을 ‘작은 감옥’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재유(李載裕)의 ‘12월’, ‘크리스마스’
-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위해 ‘새로 시작하고 또 새롭게 시작하자!’
이재유(李載裕)
‘12월’은 동짓달이기도 하다.
동지(冬至)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그리하여 옛 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여겼다.
또 ‘12월’은‘크리스마스달’이기도 하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이라는 로마의 이교(異敎)축제와 같은 날에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하기를 원했다. 이교축제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冬至)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 관습들은 이교도들이 한겨울에 벌이던 농사 및 태양 의식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기념이 합쳐져서 생겨났다.
이 땅에 크리스마스는 1893년 무렵부터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된 후 1920년대까지는 교회의 행사로 치러졌다. 1930년대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소비문화’와 어울러 크리스마스가 사회적으로 즐기는 날로 되기도 했다. 1945년 10월 미군정에 의해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제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981년까지 시행되었던 통행금지 속에서 12월 24일(크리스마스 이브)은 통행금지가 없는 ‘올 나이트’ 문화가 교회 안팎에서 형성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자가 천당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하여 ‘99%의 벗’으로 살았듯이 살았다. 그러다가 그 뒤 그리스도교들의 상당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가롯 유다처럼, ‘1%의 벗’이 되어 억압자이고 수탈자인 제국주의나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살았고 살고 있다.
불굴의 자주적 공산주의자였던 이재유(1905.8.28-1944.10.26)의 생애를 잠깐 보면, 그의 ‘12월’은 새로운 공산주의운동의 한 ‘계기’로 되었다.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에서 식민지조선이 “각 방면의 속박 ? 채찍질 ? 구박 ? 압제를 받아 바다로 둘러싸인 삼천리가 한 개의 큰 감옥”이라고 말했다. 이재유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본제국주의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제한 식민지조선이라는 ‘큰 감옥’ 속에서 태어나서 형무소라는 ‘작은 감옥’ 속에서 죽을 때까지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위해서 착취자이며 억압자인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했다.
이재유는 1925년 개성 송도고보에서 사회과학연구회를 만들어 학생운동을 하다가 퇴학을 당한 뒤, 1926년 ‘12월’에 일본 동경으로 갔다. 일본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위해 투쟁하다가 일본제국주의 경찰에게 무려 70여 차례나 검속되었다. 1928년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재유는 ‘나에게는 공산주의의 대학이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형무소에서 ‘『자본론』번역본 등을 정독하여 마스터했다’. 그는 형무소에서 노동운동가인 김삼룡, 농민운동가인 이성출, 학생운동가인 이현상 등의 옥중 동지를 만났고, 메이데이 기념투쟁과 석공 파업투쟁 등을 벌이기도 했다. 이재유는 그가 있는 곳이 어디든 끊임없이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위해서 싸웠다. 마르크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란 우리가 성취해야 할 어떤 상태가 아니며, 현실이 지향해야 할 어떤 이상도 아니다. 현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을 우리는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이 운동의 제반 조건은 지금 실제로 존재하는 전제로부터 생겨난다”라고 말했다. 이재유는 형무소에서 이론적 실천적 공산주의자가 되어 1932년 ‘12월 22일’ 동지(冬至) 무렵에 만기 출옥했다.
그 뒤 이재유는 트로이카 조직과 운동 방식으로 공산주의운동을 벌였다. 그것은 종래와는 다른 공산주의운동이었다. “과거의 운동 경험과 같이 쓸데없이 조직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우선 노동대중의 불평불만이 있는 곳에서 공산사상의 선전선동을 하여 대중을 획득하고 상당한 그룹이 결성된 때에 비로소 조직을 가져야 할 것이다. … 종래와 같이 사람을 지도한다거나 지도를 받는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함과 동시에 자신도 지도되는 것에서 공산주의자로서의 제1보를 내딛어 스스로 최하층의 노동자들과 교유하면서 대중층에서 동지를 획득하여 서서히 상부조직으로 전개하려고 한 것이 나의 근본방침이었다”.
이런 방침에 따라 이재유는 1933년 7월 ‘조선공산당 재건 경성트로이카’를 결성하여 혁명적 노동조합 ? 농민조합운동, 반제운동과 학생운동, 좌익전선 통일운동 등을 벌였다. 그러다가1933년 ‘12월’경성제대 법문학부 교수이면서 공산주의자인 삼택녹지조(三宅鹿之助)를 만나서 운동의 범위를 넓혀갔다. 이재유는 1934년 1월 서대문경찰서에 잡혔지만, 4월에 탈출하여 삼택의 동숭동 대학관사에 은신해 있다가 5월 21일 삼택이 체포되자 탈출하여 활동했다.
이재유는 1934년 10월 이관술과 박영출 등을 만났다. 이재유는 그들을 만나 ‘공산주의운동자들 중에서 혁명분자는 파벌을 혐오하고 통일을 희망하고 있으며 따라서 운동선의 통일은 당면의 급무라는 점 등에 인식을 같이하고 함께 제휴하여 운동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1934년 ‘12월’ 조선공산당재건 경성트로이카 운동을 계승하여 ‘조선공산당재건 경성재건그룹’을 결성하고 이재유가 지도자 겸 출판부 책임을, 이관술이 학생운동을, 그리고 박영출이 노동운동 부문 등을 각기 맡아 활동했다. 그 뒤 이재유 등은 1935년 5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에 정착하여 활동했다. 그는 1936년 6월 ‘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에 동지를 만나려 노해면 창동에 갔다. 그는 그곳에서 잠복하고 있던 일본제국주의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이재유는 ‘큰 감옥’ 속의 ‘작은 감옥’으로 공간 이동을 했다. 그는 ‘작은 감옥’ 속에서도 역시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위해 '조선어 사용금지 반대', '수감자 대우개선', 간수들에 대한 사상 고취 등의 투쟁을 벌였다. 그는 형기가 끝나고도 전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주보호교도소에 갇혔다. 1945년 8.15 ‘해방’을 10개월 남짓 남긴 1944년 10월, 그는 고문 등으로 병을 얻어 40살의 나이로 옥사했다. 이재유가 최종적으로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살해됨에 따라 이 땅의 자주적 공산주의운동의 흐름은 ‘해방’ 이후 남조선노동당 시기까지 일시 단절되었다.
이렇게 이재유의 생애를 잠깐 볼 때, 그의‘12월’은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쟁취하기 위한 어둡고 추운 날을 ‘정복하는 태양이 탄생’하는 때, 뜨거운 열정의 계절이었다. 또한 이재유의 ‘크리스마스날’은 가롯 유다 같은, 1%를 대변하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큰 감옥’에서 ‘작은 감옥’으로 그의 육신이 공간 이동하는 날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99%의, 99%를 위한, 99%에 의한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향한 투쟁을 ‘작은 감옥’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러시아혁명의 진실』은 쓴 혁명가 빅토르 세르주는 러시아혁명을 소재로『우리 힘의 탄생』이란 소설도 썼다고 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화자가 한 말들 중에 “새로 시작하고 또 새롭게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낡아빠진 제국이, 흰개미들에 의해 살금살금 잡아먹히듯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고 만다”라는 부분이 있다. 이재유의 생애를 잠깐 볼 때 그는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쉬지 않고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위해 ‘새로 시작하고 또 새롭게 시작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와 같이 지난날에 무수한 이재유들이 ‘큰 감옥과 작은 감옥’에서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위해 멈추지 않고 투쟁을 ‘새로 시작하고 또 새롭게 시작했다’. 그리하여 “낡아빠진 제국이, 흰개미들에 의해 살금살금 잡아먹히듯 하다가”, 마침내 일본제국주의는 깨지고, 1945년 8.15 ‘해방’이 왔다.
마찬가지로 이재유의 ‘12월’ 처럼, ‘크리스마스’ 처럼,오늘날의 어둡고 추운 억압과 착취의 계절 자본주의 제국을 깨부수고, 우리 모두 밝고 따뜻한 태양의 계절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향유하는 세상을 위해 쉬임없이 ‘새로 시작하고 또 새롭게 시작하자!’ 그리하여 ‘마침내 낡아빠진 자본주의 제국이, 흰개미들에 의해 살금살금 잡아먹히듯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날이 오게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