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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를 대상화한 적은 없었나요?_강은주(117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9-10-14 조회 539
 

제주를 대상화한 적은 없었나요?

 

강은주 (한내 제주위원회 사무국장)

 

“잘 다녀오세요”, “좋은 여행 되십시오”

  

제주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릴 때 스튜어디스들이 승객에게 많이 하는 인사입니다. 예전에 여행이나 출장으로 제주에 들를 때는 아무 거부감이 없던 인사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제주에 살기 시작한 후로는 들을 때마다 갸우뚱해지는 말입니다. 비행기 승객 비율로는 관광객이 더 많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제주도민도 꽤 섞여 있을텐데...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만? 혼자 머릿속으로 그런 의문들을 둥둥 띄워봅니다. 

 

여행지이자 동시에 여기도 사람사는 곳

 

제주 사람을 만나서 제주도에 살기 전까지는 필자도 오랫동안 제주를 막연히 아름다운 공간으로만 대상화해서 생각해왔기 때문에 한편 이해되는 고정관념이기도 합니다. 4년 전쯤 제주와 육지를 놓고 어디에 살지 결정할 때만 해도, 저 역시도 노래 ‘제주도의 푸른 밤’ 가사 속의 낭만과 환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생면부지의 스튜어디스 보다 조금 더 안면이 있는 육지의(제주에서는 섬과 대비해 ‘육지’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지인들에게 많이 듣곤 하는 말은 “제주에 사니 얼마나 좋으냐”, “바다 자주 보지 않느냐”, “오름 (또는 한라산) 많이 가봤냐” 등의 말을 많이 듣곤 합니다. 그러나 주말엔 피로를 풀겠다고 자주 집에 콕 박혀있고, 여기에서도 큰 맘 먹고 나서야 경치 좋은 바다에 가게 됩니다. 

 

제주를 대상화해온 역사는 지금도 계속 된다  

 

역사 속에서도 제주를 육지와 같은 주체로 보지 않고 대상화해서 수탈하고 억압했던 역사는 아주 오래 전부터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난의 역사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 맞서 저항으로 이어온 것이 제주의 역사였습니다.

 

목호의 난, 1901년 제주항쟁(이재수의 난), 제주4.3항쟁 등 과거 민중의 저항이 학살로 진압됐다면, 현재의 제주는 곳곳의 난개발과 군사기지화로 또 다시 대상화되고 있습니다. 

 

제주도라는 크지 않은 섬에 진행되는 군사화와 난개발을 열거해보면 징그러울 정도입니다. 이미 강정마을엔 해군기지가 들어섰고, 성산 일대에는 제2공항을 앞세워 공군기지가 들어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2공항 연계도로인 비자림로 확장공사, 중산간 마을인 선흘리에서는 보전해야 할 곶자왈을 밀고 대명그룹이 생뚱맞게도 사파리 공원을 추진하려고 있습니다. 송악산 입구의 알오름 언덕은 많은 일제진지동굴이 있는 역사유적이기도 한 곳인데 중국자본이 리조트를 지으려 하고, 이호 해수욕장에도 중국자본이 리조트를 세우려고 계속 노리고 있습니다. 제주시내 신도심에는 중국건설이 제주 최고층 높이의 드림타워 공사를 진행 중이고, 원도심에는 신항만 매립공사를 시작하겠다고 최근 공표했습니다. 인기 있는 생수인 삼다수는 중산간에서 제주의 지하수를 무분별하게 너무 많이 뽑아내다 보니 향후 몇 년 후엔 생산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제주의 쓰레기와 하수 처리는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간 지가 오래 되었지요. 하수를 제대로 처리 못한 채 그대로 바다로 방류하기도 했고, 제주시의 최대 규모인 봉개동 쓰레기 처리장에서는 지난 8월 봉개동 주민들이 더 이상의 쓰레기 반입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봉개동은 4.3 평화공원이 있는 곳이기도 한데 평화공원에서도 이 쓰레기장의 악취가 심하게 나곤 합니다. 

 


 

▲ 중국자본이 리조트를 지으려 하고있는 알오름 언덕 부지. 리조트가 들어서게 되면 이와 같은 경관이 사유화 되곤 한다 ⓒ노동자역사한내  

 

 

제주의 현실이 이 정도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지인은 몇 달 전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제주에서 어떻게 살아? 그 이슈들에 어떻게 다 대응해?” 그래서 저는 다 대응할 수가 없어서 한 눈 감고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외면하고 살더라도 최전선에서 자본과 정부, 지방정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과 콕콕 쑤시는 불편한 마음까지 외면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또 다른 현대식 수탈- 난개발과 군사기지화  

 

제주는 뽑아먹고 버려도 그만인 콩고물, 육지와 동떨어져 포화를 맞아도 괜찮을 군사기지. 이렇게 대상화 하는 주체는 자본과 정부 뿐만이 아니고 제주 안에도 제주를 대상화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곳의 미래는 염려하지 않고 단시간에 제주가 가진 것들을 이용해 더 큰 돈이나 이력을 얻으려는 이들이지요.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로 주말마다 공중파 예능 방송에서 보이는 원희룡 도지사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제주도지사가 중앙정치의 발판으로써 제주를 대상화하고 이용한다는 것은 도민으로서 참 서글픈 일입니다. 얼마 전 방송에서는 마라도의 한 주민이 도지사를 제주에서 볼 수가 없고 방송에서만 본다고 성토를 했다지요.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 관련 기사마다 달린 원희룡 지사에 대한 악플을 보며 잠깐씩 속이 시원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꼭 함께 달리곤 하는 댓글이 제주도민에 대한 비난의 댓글입니다. 제주도민이 저런 도지사를 뽑았다는 비난이 꼭 세트처럼 함께 달리지요. 

 

여당 출신이 아닌 정치인이 당선된 지역이 드물었던 지난 총선에선 제주도민을 비난하는 글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선거운동 초반엔 지지율이 저조해서 재선 가능성이 낮아보였던 원희룡 당시 후보는 상대편 여당 후보가 많은 비리 의혹들이 불거지고 비전 제시에 실패하면서 운 좋게도(?) 재선하게 됩니다. 4.3 70주년 홍보가 한창이던 그 즈음에 선거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 저에겐 약간 충격이었습니다. “제주사람들 4.3해결 반대했던 원희룡 뽑으면서, 우리(육지사람들)한테 4.3 이해시키려고 하지 마라”는 글이었습니다. 제주 선거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리하여 도민은 도지사가 흠결을 보일 때마다 같이 욕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제주도지사까지 제주를 대상화하고 이용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하지만 도지사가 먹는 욕, 도민은 이제 그만 먹으렵니다. 더 이상 자본에게 제주를 내주는 하수인, 국토부와 국방부의 심부름꾼 노릇에 그치는 도지사와 도정의 행태에 반대합니다. 개발로 만들어준다는 일자리가 결코 오래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고, 삶터를 돈에 뺏길 뿐 삶은 더 나락으로 떨어져왔던 경험들이 개발의 환상을 깨부숴 갈 것입니다. 개발로 인한 이익의 파이가 자본에 한정될 뿐 절대 도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물가 최고, 임금 최저인 제주의 현실이 보여줍니다. 

 

당장 10월 중에는 국토부가 제2공항 건설 착수를 위한 기본계획 고시를 강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의회에서 제2공항 건설에 대한 공론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을 무용지물로 만드려는 계획으로 보입니다.  

 

민중저항의 역사가 빛나는 제주에서 그 옛날 사람들의 마음을 복기해본다 

    

그 옛날 민중들도 뾰족한 승산이 있어서 항쟁에 나선 것만은 아니겠지요. 옳은 길에 올라섰을 뿐이고, 수탈에 맞서 살기 위해 싸웠을 것입니다. 지금도 정부와 지방정권, 토건 자본에 맞서서 생존과 평화를 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길에서 공론화 서명을 받고 행진하며 뜻을 모아보기도 합니다. 

 

4년 전까지 제가 그랬듯이 제주를 여행지로만 대상화하진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제주의 고민이 너무 동떨어진 먼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군사기지고 관광지이기만 한 제주가 아닌, 민중저항의 역사가 빛나는 제주에서 복작복작 오늘을 사는 이야기를 또 전하겠습니다. 

 


 

  ▲ 지켜가야 할 자연과 역사 ⓒ노동자역사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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