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가보는 내 나라
한강 하구에서 봄을 기다리다
서동석 (통일문제연구소 회원)
겨울다운 겨울이었습니다. 몇 십년 만의 강추위, 큰 눈이 내리기도 했습니다. 서울 토박이인 내가 꽁꽁 언 한강이 온통 눈으로 하얗게 덮힌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싶은데 올해 그런 장관을 봤습니다. 과연 겨울을 장군으로 빗대어 동장군이라 할 만하였습니다. 그런데 위세가 당당한 동장군의 가는 꼬락서니는 영 시답지 않습니다. 고양이걸음으로 오는 봄처녀를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지루합니다. 장군이면 장군답게 갈 때도 앗쌀하게 가야하는데 말입니다.
그런 시샘으로 바람이 엄청 세게 부는 날 김포 끝자락의 문수산성 마루에 올랐습니다. 거기가 땅 끝인지 아니면 땅의 처음인지는 갖다 붙이기 나름입니다. 그렇지요. 저 남도 어드메에 ‘땅끝마을’이 있다는데 사실은 거기가 어디 끝이겠어요, 바다랑 맞붙은 처음인 게지요. 여기 한강이 바다를 만나는 자리인 문수산성 아래, 민간인출입금지구역도 그렇습니다. 어쨌든 산성의 마루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불었습니다. 전날엔 황해를 건너오는 된바람에 최악의 모래먼지가 실려 왔습니다. 온 나라가 누래서 꼭 빛 바랜 사진을 보는 듯 했습니다. 오늘은 찬바람만 드셉니다.
나이 쉰 줄에 들어 자전거여행을 하게 되면서 한강의 처음에서 끝까지를 자전거로 돌아보려고 별렀습니다. 2004년 8월. 드디어 강원도 태백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새벽에 삼수령을 넘어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를 찾아 갔습니다. 한여름 더위도 물러나 있는 울창한 숲, 오솔길을 자전거 바퀴로 누르며 들어가니 길이 끝난 곳에 신비로운 못이 있었습니다. 하루 2천 톤이나 되는 물이 솟습니다. 그리하여 자신보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물길이 이곳에서 차름(시작)합니다.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이무기가 용이 되고자 이 못에 잠겨 때를 기다렸다 합니다. 손을 오그려 바가지를 만들어 떠먹었는데 그 물맛이 신비 그 자체입니다.
흐르는 물길 따라 자전거 발판을 밟았습니다. 물길 따라 찻길이 있는가 하면 어느 곳에서는 찻길이 끊긴 곳을 만났는데 이런 데가 있어 자전거여행의 묘미를 느낍니다. 강은 산 밑동을 훑어 벼랑을 만든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높다란 벼랑길에서 내려다보며 따라 갔습니다. 꼬박 이틀을 내달린 여정은 단양에서 멈췄습니다. 뒷날 단양에서 다시 차름하려 했습니다만 아직 못가보고 있습니다. 언제든 꼭 소백산을 넘어 충주를 거쳐 여주를 지나 북한강과 만나는 두물머리까지 이어보렵니다.
두물머리부터 이곳 문수산 아래까지는 진즉 자전거로 밟아 보았습니다. 문수산 아래 철조망이 쳐진 곳에 논두렁같이 순찰길이 있습니다. 초지진까지 이어진 이 길은 초병이나 이곳 농사짓는 이들이 다니는 길입니다. 외지사람은 통제를 받습니다. 이곳을 자전거로 가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해병대원의 호통에 놀랐던 적도 있습니다. 여기처럼 찔레꽃이 그렇게 아름다운 길은 보지 못했습니다.
한강은 황해로 들어가는 하구에서 임진강을 만납니다. 경기도 남양주 두물머리에서 합쳐진 한강이 여기에 이르러 ‘통일’이 됩니다. 강원도 북한땅에서 솟은 물이 휴전선을 지나 한탄강과 합쳐진 임진강은 인간의 분단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강을 만납니다. 그런데 혹 조강(祖江)이라고 들어봤나요? 임진강과 한강이 통일된 곳에서 황해까지, 황해도를 지나온 예성강과 만나는 여기까지를 그렇게 부릅니다. 왜 할아버지강이라 했는지 모릅니다. 아니 아예 이 명칭은 바닷물에 잠긴 듯 잊혀 진 이름입니다.
문수산성 마루에서 톺아 한강의 하구와 그 조강을 바라봅니다. 바로 곁에서 보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그곳에 아주 작은 섬이 하나 있습니다. 유도라던가요? 1996년에는 북한에 큰물난리가 나서 떠내려 온 소가 거기서 여섯 달을 살다가 구출되어 ‘평화의 소’라는 이름을 얻었지요. 노녁(북)도 마녁(남)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곳이 그곳입니다. 우리의 가슴을 애달프게 하는 ‘분단의 상징’입니다.
문수산에서 바라본 한강 하구. 멀리 황해도 개풍군이 보인다.
사진 왼쪽편으로 황해로 접어드는 물길은 아래쪽으로 들어 염하가 된다. (사진 서동석)
조강도 낯설지만 염하도 아는 이가 드물 겁니다. 소금강이라는 말이지요. 한강이 조강이 되어 황해를 흘러드는 한편 다른 물길이 되어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지나면 염하가 됩니다. 바다는 바다이되 뭍과 섬 사이에서 강이 되어 이렇게 부릅니다. 밀물 때는 너른 바다가 되지만 썰물 때는 개펄이 훤하게 드러난 골에 강처럼 바다가 흐릅니다. 물이 들고 날 때에는 엄청난 소리로 사람을 두렵게 합니다. 뭍과 섬 사이를 가득 채운 바닷물이 멀리 물러가는 동안 바닷물은 엄청나게 휘몰아칩니다. 그 물살에 질려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사도 문수산성에서 진군을 멈춰야 했습니다. 강화로 수도를 옮기고 장기전에 들어간 고려왕조를 문수산성에서 꼬나보기만 했을 뿐 어찌 쳐보지 못했습니다. 1232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에서 왕조를 지켜낸 공로는 순전히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는 염하의 드센 물살입니다.
염하에는 손돌목이라는 구간이 있습니다. 고려왕이 강화도로 피난을 가려고 바다를 질러왔는데 섬은 도시 보일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때 뱃사공이 손돌이었습니다. 엄청난 물살에 시달리던 고려 고종은 ‘필시 이놈이 나를 죽이려고 엉뚱한 곳으로 배를 몰아가고 있구나’하는 의심으로 그를 죽입니다. 그런데 손돌은 죽어가면서도 염하에 바가지를 띄우고는 ‘나는 죽어도 그만이지만 이 바가지를 따라 가면 강화도에서도 안전하게 배를 댈 수 있는 곳이 나오니 꼭 그리하시오’라고 당부합니다. 그는 죽고 왕은 몸을 안전하게 피합니다.
우리시대 영원히 가슴에 남을 전사 김남주 시인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고 핀잔을 하는 주인을 그 낫으로 죽인 머슴을 시로 그려내기도 하였으나 우리의 역사에는 주인을 위해 착하게 죽은 머슴이 설화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객쩍게 된 왕은 머슴을 기리기 위해 손돌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고 백성은 손돌의 원혼을 달래려는 제사를 해마다 음력 상달(시월)에 지낸다고 합니다.
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 소설에 빠지지 않는 김동인의 「배따라기」도 비슷한 내용인데요, 그 소설의 주인공 ‘나’는 오해로 죽게 한 아내를 그리워하고 그 때문에 집을 나간 아우를 찾기 위해 황해 바닷가를 헤맵니다. 대동강에서 인천까지 다녔다 하니 어느 때에는 이 염하를 지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문수산성에서 그냥 눈으로도 황해도 개풍군을 볼 수 있습니다. 반세기 전에는 나룻배로 오가던 뱃길이었건만 그 길은 끊긴 채 긴 세월동안 서로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봄은 수 십 번 오고 갔지만 겨레의 봄은 언제 올지 아득합니다. 철책으로 막아 놓은 그 너머엔 한강과 황해가 서로 얼싸안고 돌아 거센 물결이 일게 합니다. 휘몰아치는 물살에 뭔들 남아날 수 있을까 싶은데 여기서 겨레의 아픈 사연은 때때로 일어납니다.
그 앞바다에서 난데없이 군함이 침몰하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 떼로 희생되었습니다. 심청이가 눈 먼 아비를 위해 몸을 바친 임당수도 그리 멀지 않은 황해의 이쪽. 심청의 정성으로 아비는 눈을 뜨는데 오호라,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참에 바다가 걷어 가신 모든 넋의 공덕으로 이 하구에 겨레의 봄이 오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