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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작성일 2008-10-07 조회 1378
 

뉴스레터 [한내] 2008. 10 (제2호) 법정에서 만난 노동자

교통사고는 쌍방과실, 폭행사건은 쌍방폭행?

글 : 민주노총 법률원 송영섭 변호사 / 삽화 : 안태윤 (한내 회원)

사건은 반말을 했다는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상사에게는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벌건 대낮에 그가 있는 사무실로 찾아와서 숙직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다른 상사며 동료들이 있었지만 그 상사를 말리지는 못했다. 그를 데리고 들어간 상사는 갑자기 주먹으로 자신의 얼굴을 때린 후 숙직실 문을 열고 피 묻은 침을 뱉으며 ‘이 새끼가 사람 치네’라고 했다. ‘제가 언제 쳤습니까?’라고 항변했지만 다시 문을 닫은 상사는 ‘너 이 새끼 죽었어’하며 그의 옆구리를 가격하여 넘어뜨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황한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걷어차던 상사는 제법 위엄 있는 어투로 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했다. 그는 감히 상사에게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상사는 또다시 두어 대를 때린 후 당당하게 숙직실 문을 열고 나갔다.

만약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민중의 지팡이 경찰에 달려갈 수 있겠다. 허나 상대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매일같이 보아야 하는 상사이고 대낮에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까지 찾아와 보란 듯이 폭행을 휘두른 무서운 사람이다. 더구나 ‘또 까불면 갈빗대 한두 개 부러질 줄 알아!’라는 위협까지 당한 상황이고 보면 웬만한 강단이 있지 않고서야 신고는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다. 노동조합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조합이라면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노조의 도움에 힘입어 용기를 내어 생전 가본 적이 없는 경찰서까지 갔다.

그런데 경찰조사는 의외로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현장에 있었던 여러 직원들에 대한 조사요구는 무시되었고 당사자 쌍방 및 가해자와 선후배 사이인 다른 상사에 대한 조사만을 근거로, ‘목격자 없는 상황에서 양측이 피해 주장’, 결국 ‘쌍방폭행’으로 결론지었다. 반면 노조는 조금 집요했다. 조사단을 꾸려 사건 현장을 찾아가 당시 사무실에 있었던 직원들을 조사하고 진술서를 받았다. 상해진단서와 상해부위 사진 등을 수집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가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여러 정황들을 진술했고, 당시 숙식질에서 나온 그가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었다’고도 했다. 한편, 노조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상사는 사과하기는 커녕 ‘이런 사건은 무조건 쌍방폭행으로 되니 문제를 일으키면 다친다’며 그를 은근히 협박하고 고소취소를 종용했다. 노조는 더 이상의 2차 가해를 막고 직장 내의 전근대적인 상사의 하급자에 대한 폭력의 근절을 위해 홈페이지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조합원들에게 공개했다.

그가 혐의를 벗기까지는 험난한 법정공방을 견뎌내야 했다. 법정에서 수차례 자신이 당한 상황을 재연해 내야 했고, 오히려 떳떳해 하는 가해자를 지켜봐야 했다. 그는 재판을 할 때마다 모멸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한 자신이 한없이 수치스럽다고도 했다. 1심에서 선고유예 판결. 그러나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항소심에서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거짓말탐지기까지 신청했다. 대검찰청에 가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2번씩이나 받았다. 마침내 항소심 무죄판결. 그래도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어느 택시 노동자는 승객으로부터 폭행을 당했음에도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분신까지 하고서야 비로소 사건이 바로잡힌 적도 있다.

경찰이 틀렸고, 노동조합은 옳았다. 그런데 웬걸. 과오에 대한 반성은 없고 오히려 이번에는 노동조합을 형사처벌한다고 한다. 인터넷에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게재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수사와 재판이라는 법적 절차가 있는데 왜 인터넷을 통해 사건을 공개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았다면 그는 혐의를 벗기는커녕 혼자서는 고소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가 가해자의 폭행과 협박으로 공포에 시달릴 때 정작 경찰은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현장에 있던 직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조사도 없이 ‘쌍방폭행’으로 결론짓는 경찰의 안이한 수사관행에만 의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하다. 오히려 수사와 재판에 일조한 노동조합에게 벌금이 아닌 포상금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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