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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6월 항쟁』, 김원 지음, 책세상
첨부파일 -- 작성일 2009-09-27 조회 967
 

기억과 상상력으로 불러일으키는 87년 6월 항쟁 

양돌규(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김원 지음, 책세상, 2009

『87년 6월 항쟁』은 비타 악티바 시리즈의 13번째 책이다. 비타 악티바 시리즈는 책세상 문고에서 내는 문고 시리즈의 제목인데, 개념사 시리즈라고 한다. 『87년 6월 항쟁』이 출간되기 전에 나왔던 시리즈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했다. 그 제목들을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인권, 아나키즘, 시민, 아방가르드, 계급, 폭력, IMF 위기, 노동가치, 인종주의, 비정규직, 정당, 68운동.

정말 생각해보면 ‘87년 6월 항쟁’은 인권, 계급, 노동가치처럼 ‘개념’의 하나로 등록될 정도로 인구에 많이 회자되고 입말에도 오른다. 특히 올해처럼 사람들의 입에 과거 민주화운동 시대가 오르내렸던 해라면 더더욱 그렇다. 87년이 ‘지나갔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현재진행형이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우린 그 시대를 많이 이야기하고 또 되씹곤 한다.

그런데, 사실 ‘개념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 개념이 무슨 뜻인지 알고 말하기보다는 그냥 말하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알고 말해야 하기 때문에’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87년 6월 항쟁에 대해서 다 알았다!”고 선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릇 모든 개념이 그렇듯이 그 개념은 보는 이에 따라, 말하는 이에 따라,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87년 6월 항쟁만 해도 그렇다. 어떤 이에게는 정확히 4.13호헌조치부터 대중시위, 그리고 6.29선언까지를 연상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그 이후 벌어진 노동자 대투쟁까지를 포괄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87년 되찾은 직선제 대통령 선거를 더 가슴 아프게 떠올릴 수도 있다.
또 87년 6월 항쟁은 지역에 따라, 성별(젠더)에 따라, 계급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으로 떠올릴 수도 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광주에서의 87년 6월 항쟁은 80년 5월 광주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부산 광복동과 서면로터리를 채운 시민들에게 5월 광주의 무게감은 덜했을 것이다. 또 울산 성남동 주리원 백화점 앞을 매일 나왔던 노동자들에게도 역시 6월 항쟁은 다른 의미였을 터이다.

김원은 그러한 경험의 차이, 기억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이 책에서 공장으로 간 여성 학출 노동자, 대학생 그리고 부산 배달 노동자라는 세 명을 등장시켜 1인칭으로 얘기를 풀어간다. 이들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80년대와 87년 6월을 맞춰간다. 각각의 87년 6월 항쟁은 어떻게 다른지가 선명하게, 대조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백과사전처럼, 혹은 무슨 교과서처럼, 87년 6월 항쟁을 정연하게 정의하고, ‘이 한 권으로 6월 항쟁을 집대성했다’고 우기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김원의 책 『87년 6월 항쟁』은 87년 6월 항쟁에 내재되어 있던 다양한 균열을 드러내고, 그 균열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어쩌면 ‘개념사 시리즈’에 어울리지 않게 이 책을 읽고 나면 더욱 더 혼란스러운 기분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역사를 지금 생환(生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통과의례라면, 우리는 그 독서과정과 독서 후의 혼란을 기꺼이 감내해야만 한다.

87년 6월 항쟁의 기억이 어찌 이 셋 - 공장으로 간 여성 학출 노동자, 대학생 그리고 부산 배달 노동자 - 뿐이겠는가. 우리 모두도 그 6월 항쟁에 대해서 각각 다른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가. 저자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87년 6월 항쟁’이라는 말로 두꺼운 백과사전 속에 갇혀 있는 개념을 우리의 기억과 상상력으로 불러일으켜 지금 우리에게 그 항쟁은 무슨 의미인지를, 그리고 무슨 의미여야 하는지를 되묻게 만드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가 개념 속에 갇히지 않고 개념을 도구처럼 활용할 줄 아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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