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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노동자들의 아프리 사무실 점거농성
⦁ 시기 : 1981년 1월 30일
⦁ 요약 : 1980년 말 전두환군부의 정화조치로 강제 해산당한 청계피복노동조합이 아시아 아메리카 자유노동기구 한국사무소를 점거, “노동조합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1980년 전두환 군부의 정화조치에는 청계피복노동조합도 당연히 포함되었다. 전두환 군부는 청계피복노조에 대해 ①정화대상자 4명(노동운동으로 구속된 적이 있는 조합간부)의 사표를 신속히 받을 것 ②평화, 동화, 통일상가 이외의 건물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조합원이 될 수 없으니 조합비 징수 중단 ③이소선 어머니에 대한 월급 지급 중단 등의 정화지침을 내렸다. 노동조합은 존립을 위해 ②, ③항은 받아들였지만 ①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요구의 일부를 받아들였음에도 군부는 1980년 10월 11일 이소선 어머니를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이어 12월 8일에는 조합 간부 8명을 체포해 2주간에 걸쳐 조사한 후 12월 20일에 석방했다.
보안사령부 조사과정 중 조사관의 입에서 “청계노조는 노조가 아니다. 청계노조는 내가 해산시키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서울시 노동위원회 의결사항이라며 1981년 1월 6일 자로 박영수 서울시장 명의의 해산명령서가 전달됐다. 노동조합은 당시 사회 전반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어떠한 대처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하루 이틀 날짜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81년 1월 21일 새벽, 경찰은 기습적으로 노조사무실에 난입해 장부와 집기를 탈취해 집기는 중구청 지하실에 집어넣고, 장부는 연합노조 본부로 빼돌렸다. 다음 날부터 600여 명의 정사복 경찰이 노조사무실을 중심으로 평화시장 일대를 포위해 조합 간부가 사무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봉쇄했다. 그동안 투쟁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던 조합 간부들은 해산명령에 맞서 노조 원상 복귀를 결의했다. 투쟁 방법으로 ‘아시아 아메리카 자유노동기구 한국사무소(아프리사무소)’ 같은 외국기관을 점거해 외국인을 감금, 인질로 잡으면 경찰이 진압하기 어려우리라 판단하고 그 실행 일자를 미국 대통령 취임식 이후로 잡았다.
1981년 1월 30일, 아프리사무소 본부장 모리스 파라디노는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국제노동연맹 아시아지역기구 연사로 참석했다가 돌아와 오후 4시경 청계피복노조 지부장과 면담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조합원 22명이 오후 4시 30분 기습적으로 아프리사무소를 점거하고 지부장과 면담이 예정돼 있던 파라디노를 인질로 잡으려 했지만, 마침 그가 그 시간에 사무실에 없어 아프리 한국사무소 죠지 커틴 소장을 인질로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자들은 “청계노조 해산명령을 즉각 철회하라” “서울시장 퇴진하라” “청계노조를 원상회복시켜라”고 농성을 계속하며 아프리 본부장 모리스 파라디노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그는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같은 시간 이른바 ‘노동계 인사’들을 초청해 호텔에서 호화 리셉션을 개최했다.
농성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미국이 동의했겠지만, 기동경찰들이 난입한 것이다. 기동경찰이 소방차 사다리를 동원해 눈부신 라이트를 비추며 건물 벽을 뚫고 들어오자, 농성노동자들은 소장실에 들어가 사무실에 석유를 뿌리며 진압하면 불을 지르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경찰은 새벽 0시 5분에 일제히 사무실로 난입해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며 농성을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의 난입을 막으려던 노동자 두 명이 3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그중 한 명은 크게 다쳤다. 이 사건으로 11명이 구속돼 최고 2년의 실형을 살고서야 석방됐다.
⦁ 참고자료 : 청계피복노동조합, <영원한 불꽃 청계노조 20년 투쟁사>(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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