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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한내] 2008년 12월호 (제4호) : 이달의 노동자역사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역사, ‘청산’이 아닌 ‘복원’, ‘종말’이 아닌 ‘부활’
글 : 김영수 (한내 연구위원) / 사진 : 전국철도노조, 한길사, 네이버
제목부터 모순적이다. 철도 노동자들의 역사와 현실도 모순이다.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도 모순이다. 철도노조가 최근 파업을 철회하였다. 사측에서 앞으로 전향적인 협상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것 말고는 얻은 게 없는 것 같다. 이명박 정권의 공기업을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에 저항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투쟁이라는 첫 걸음조차 떼지 못하는 우를 범하였다.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이라는 목소리만 남아 있지, 투쟁의 몸짓은 사라질까 두렵다.

사진 1. 1946년 9월 총파업에 참여한 철도노동자들
역사 속의 과거를 알고 있는 철도 노동자들은 선배님들의 투혼을 기리면서 60년 전의 철도 노조를 회상했을 것이다. 철도 공무원들은 1947년에 노동조합을 결성하였고, 해방 정국에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946년 9월 23일, 철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조차 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파업을 단행하여 해방 정국의 대표적 투쟁인 ‘10월 인민항쟁’의 디딤돌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철도 노동조합은 1948년 이후에는 조합원들의 이해를 추구하는 활동보다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전두환 정권의 4.13호헌조치 등을 지지하면서 관제동원시위까지 했었던 조직이다.
참으로 아이러닉한 역사의 모순이다. 세월이 흘러서인지 노조 지도부가 문제인지, 어용권력의 쓰레기를 줍고자 했던 노동조합과는 달리, 노동현장에서는 거수경례를 시작으로 조회와 점호를 받고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고, 틈틈이 시간을 내서 대통령 각하 어록, 국무총리 지시사항, 장관 지시사항, 청장 지시사항, 지역소장 지시사항, 관리역장 지시사항 등을 달리는 열차에서 혹은 갱목을 운반하면서 외워야만 했던 철도 노동자들. 이 외에도 상명하복의 노동문화가 정착된 상태에서 상 한 번 받아보려고 상급 관리자에게 온갖 아부와 친절을 베풀어야만 했던 철도 노동자들. 식민지 지배의 잔존이긴 하지만, 너무나 어려운 용어 때문에 밥 대신 배부르게 먹어야만 했던 온갖 욕설. 철도 노동자들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열을 올렸던 안전지도관에게 잘 보이려 했던 철도 노동자들.
물론 철도노동조합도 역사 속에서는 단체협약에 근거하여 투쟁을 전개하였다. 1960년 10월 8만환 기본임금 인상 쟁의, 1963년 9월 생활급 확보를 위한 임금인상투쟁, 1967년 12월 처우개선 쟁의, 1968~69년에 걸친 인천공작창 민영화 저지투쟁, 1970년 5월 단독신분법과 생활급 확보를 위한 쟁의투쟁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리고 한국노총과 결합하여 연가보상 지급투쟁, 근로시간과 근로수당 등과 같은 각종 근로조건 개선투쟁, 공무원 연금법 개정운동, 노동법 개악저지운동 등도 전개하였다. 비록 이러한 투쟁들이 조합원들을 동원하는 투쟁이 아니라 간부들을 중심으로 하는 투쟁이었다 할지라도, 1961년 1월에 전개된 1시간의 통신파업과 1968~69년의 인천공작창 민영화 저지투쟁에 조합원들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사진 2. 1988년 투쟁에 나선 철도 노동자
철도 노동자들은 역사 속에서 잘 알고 있다. 민영화의 역사, 구조조정의 역사, 노동조건 개악의 역사가 철도 노동자들의 과거를 현재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명박 정권은 철도 노동자들에게 과거의 악취를 강요하려 하고 있지만, 철도노동조합은 역사 속의 과거로 존재하고 있는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을 계승하지 못하였다.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에 대해, ‘종말’이 아닌 ‘부활’의 시각으로, ‘청산’이 아닌 ‘복원’의 시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사진 3. 1994년 전지협 파업투쟁에 참여한 철도 노동자
철도 노동자들은 1988년과 1994년에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파업투쟁을 전개하면서 투쟁의 역사를 부활시켰으며, 노동조합을 민주화하기 위한 조합원들의 운동이 노동현장에서 복원되었다. 청산된 것으로 치부되었던 해방 정국의 투쟁 역사가 2000년에 민주적인 철도노동조합으로 부활하였다. 민주적인 철도노동조합은 2000년 이후에 몇 번의 파업을 전개하거나 시도하였다. 또 다시 사유화(민영화)정책 반대, 인력 감축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정책 반대, 그리고 노동현장 노동조건 개선과 인력 충원 등이었다.
이러한 요구와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싸울 때마다 승리할 수 있는데도,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싸운다고 하면서, 교섭과 양보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패배하는 순간에 발생할 너무나 많은 희생의 두려움이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장을 뒤덮는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이길 수 있다고 소리 높여 외친다.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득의양양하게 짐 보따리를 매고 나온 조합원만이 눈물을 흘린다. 노동조합의 지도부는 씁쓸해 하면서도 또 다시 진군이라는 투쟁의 목소리를 높인다.

사진 4. 2008년, 집회에 참여하는 철도 노동자
철도 노동자들의 역사는 모순의 연속이지만, 승리와 패배의 역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한 역사의 과거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철도 노동자들의 노동현장에서 뿌리 깊이 내리고 있다. 청산해서 없애버려야 할 역사는 패배의 과거이지만, 복원시키고 부활시켜야만 할 역사는 바로 승리의 과거이다. 승리의 역사는 힘이자 투혼이자, 마지막까지 버리기 어려운 자신의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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