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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1986.3. 민주노동 15호
하나가 되자
1986년 3월 10일 홍제동 천주교회에서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가 주최한 노동운동탄압규탄 및 최저임금제쟁취대회가 열렸는데, 그 때 2부 행사로 마당극을 했다. 그 대본 중 1마당 부분이다. 대본 내용은 학생들이 역사시간에 노동박물관을 견학하는 장면이다. 당시 상황을 ‘과거’로 설정하여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매끄럽지 않은 면도 있지만, 읽으면서 노동자가 만든 노동박물관, 노동운동 현장이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한내)
(탁자위에 의수족, 안경, 타이밍, 온산물고기, 라면, 연탄, 라면박스, 곤봉, 최루탄, 소총, 군모, 군화, 노동관계 유인물, 노래테이프 등이 놓여있다. 노래 맞춰 율동하며 학생들이 등장한다.)
"백두산 함께 올라 갑시다.
금강산 함께 구경 갑시다.
민중이 다스리는 새나라가 됐으니
민족이 통일 되었네
들판에는 오곡이 무르익고
공장에는 기쁨이 넘치는
참 평화와 평등의 이 나라가
우리세상 되었네"
선생: 어제 역사시간에는 동일방직 똥물사건의 현장을 보셨고, 오늘은 노동박물관 견학이 되겠습니다. 이곳을 안내해 주실 분은 자랑스런 투사이며, 현재 동일기계 공작소에서 노동자로 계시는 한반도 동지이십니다. (인사. 박수)
한반도 동지께서는 앞으로 정년퇴직 후에도 지방 자치회의 추천을 받아 우리 지역대표의 한분이 되어 계속 조국을 위해 수고하실 것입니다. (인사, 박수)
안내: 반갑습니다. 이곳 노동박물관은 오늘날 우리들이 이렇듯 자유롭고 기쁨에 찬 노동과 보람찬 생활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하기 위해 고난에 찬 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하여 왔던 선조들의 그 시절 참담했던 생활의 흔적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옛날을 회상하는 표정). 여러분들! 어제는 동일방직 똥물사건의 현장을 보셨다면서요?
학생: 예!
안내: 어땠습니까?
학생1: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웠습니다.
안내: 예......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으며, 바로 그곳에서 투쟁하시던 분들 중에 한분이신 이기리 투사님이 저의 할머니이시며 대우어패럴 해고노동자 중에 한 분이신 한목숨투사님이 저의 할아버님이십니다. (학생들, 어제 똥물사건 현장을 확인하듯 서로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 예, 오늘이 있기까지 여기 한반도동지의 조부님을 비롯하여 역사를 이끌어 온 수많은 노동선조들의 살아온 발자취를 되새기며, 전시 된 유물들을 보고 당시 상황에 대해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즉시, 즉시 질문하세요.
학생들: 예~
안내: (의수족을 가르키며) 이모형의 수족은 열악한 작업조건과 장시간 노동, 즉 잔업과 철야 특근에 시치도록 일 하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의 팔다리를 대신하던 것입니다.
학생2: 노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다니!
안내: 예, 인간을 위한 기계가 아니라 기계에 매어 달린 가축 같은 생활을 강요하다가 잘려나간 팔다리를 대용했던 것입니다. 그 때는 매년 수천 명이 죽거나 수십만 명이 팔다리가 잘려나가 평생 불구로 살아야 했습니다.
학생: 사람잡는 기계였군요.
안내: (안경을 들며) 그 당시에는 노동자들에게 강한 화력 앞에서 또는 화학물질의 오염 속에서 정밀작업들의 대책을 세우지 않고 강제해서 시력장해라는 병이 만연했었습니다. (학생들 서로 끄덕이며 안경을 써본다.
안내: 점잖게 제지하며) 이 물건들은 앞으로 많은 학생들이 노동의 역사의 학습도구로 보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겠죠. (학생들이 서로 끄덕이며 얌전히 놓는다.)
안내: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다시 타이밍약을 가리키며) 이 약은 야근이나 철야를 할 때 밀려오는 잠을 쫓기 위해 복용했던 것이며, 이 약으로 인해 더욱 많은 병이 생겨났지요. 예를 들어 위장병!
학생들: 위장병~ (하고 외친다.)
안내: 무좀, 변비!
학생들: 무좀, 변비~ (하고 외친다.)
안내: 만성두통!
학생들: 만성두통~ (하고 외친다.)
안내: 폐결핵!
학생들: 폐결핵~ (하고 외친다.)
안내: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게 살았다고 합니다.
학생3: 그때는 의료시설이 없었나요?
안내: 예, 좋은 질문입니다. 그 당시에 병원비는 엄창나게 비싸서 일반 노동자들은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고, 의료보험이란 할인제도가 일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적용되고는 있었지만 공장일이 끝나자마자 병원에 달려가도 병원문이 닫혀 활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생들: 어머나! 병원엘 돈을 내고 간대. (폭소)
안내: 그리고 여기있는 이 유리상자는 텔레비전이라는 바보상자라고 했죠.
학생들: 바보상자라니요?
안내: 이 TV로 하여금 특권층의 생활을 부각시켜 노동자, 농민들을 환상에 빠져들게 하고 소비와 사치풍조를 조성시켜 지배층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대단히 큰 역할을 했지요.
학생들: 특권층이 노동자들을 지배?
안내: 이해가 잘 안되죠? 지금은 모든 사회제도와 정치제도가 민중의 의사를 수렴하여 진행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자의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기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시와 탄압이 아주 심했으며, 잘못을 감추기 위해 왜곡보도의 도구로 활용했어요. 이렇듯 노동자를 바보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바보상자라고 하는 것이예요.
학생4: 우리 사회는 노동자, 농민, 교수를 구별하지 않고 자질에 따라 선택하며 또한 원활한 정책수립을 위해 여의도 공동체 놀이마당이라든가 삼청동 만남의 정 등이 있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데 그 당시는 그렇지 못했나 보죠?
학생5: 집안에서는 서로 생활을 나누는 곳인데 저 상자를 보고 있었다니 정말 바보같아요.
안내: 여러분! 독재란 말을 들어보셨어요?
학생: 예, 사전에서 봤어요.
안내: 독재를 하기 위해 빈부의 극심한 격차와 모순들을 은폐시키는 데 급급했었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관계들이었지요.
학생: 신뢰? 신뢰? (뇌까리며 서로 손을 잡는다.)
안내: (안타까운 표정) 즉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 선조들은 살았던 거죠.
학생: (흉칙하게 생긴 물고기를 기리키며) 이것은 물고기 비슷한데 무엇인가요?
안내: 예, 희한하게 생겼죠. 이 물고기는 당시 기업주들이 공장에서 무책임하게 버린 화학물질과 폐수 등으로 인하여 오염된 물속에서 자라던 기형물고기예요.
학생: 기형물고기?
안내: 그뿐입니까, 중금속으로 인해 오염된 땅에서는 농작물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으니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학생: (기가막힌 듯이)어어!!
안내: 일단 한번 공해로 오염된 땅과 바다는 원상회복이 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학생들 끔찍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학생: (라면을 가리키며) 선생님 비닐 속의 물건은 뭐예요?
안내: 예, 그것은 라면이라는 것으로 그 당시 생활에 찌들리던 노동자들이 주식으로 삼았던 것이데, 이 라면은 방부제가 범벅된 가공식품이예요. 한 예를 들면 각 나라에서 생산된 라면을 실험용 쥐들에게 먹인 결과(라면을 들면서) 이 라면을 먹은 쥐만 죽었다는 실험결과가 있었습니다. 저임금에 허덕이던 그 당시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가격이 저렴한 라면을 법보다 자주 먹게 되어, (관객중 한명을 기리키며) 여기 이분처럼 얼굴이 누렇게 떠 마치 퇴색한 낙엽과 같은 모습들이었으나 특권층 집의 강아지들은 고기를 하루에 몇근씩 먹는 불쳥등한 사회 속에서 우리 선조노동자들은 살았답니다.
학생: 세상에 먹지 못할 것을 팔아먹다니 그런 일을 자치관청에서 가만 두었나요?
안내: 그냥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최고통치자 측근의 아누머니가 차린 공장이었기 때문에 입도 뻥끗하지 못했던가 봅니다. (라면 박스를 가리키며) 그리고 이 박스로 말할 것 같으면 가난하게 사는 노동자들이 옷장으로 사용했던 물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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