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무죄’
권두섭(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사법연수원생 시절 노동정책연구소라는 단체에 노동상담활동을 나가면서였다. 그러다가 민주노총에 오고 보니 그는 모 지역본부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재능교사노조를 시작으로 한 학습지 노동자들의 투쟁이 민주노총에 와서 내가 처음 접한 사건이었는데, 그도 당시 그 사업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가끔 회의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는 것이 법이다’인가 아마 그런 제목의 교육을 지역본부에서 개최했는데, 강권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를 맡게 되었다. 그 때 참가한 조합원들을 잠들게 하였다는 이유로 이후로 만날 때마다 나를 괴롭히곤(?) 한다.
법률원이 만들어진 이후에 그는 여러 사건들을 가지고 왔었는데,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법률원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돈을 한 번도 낸 적이 없었고 그것을 당연시하였다. 어느 날 들고 온 사건이 이랜드 사업장 투쟁 당시 입점상인들로부터 폭행치상으로 그 자신이 고소를 당한 건이었는데, 내용인즉 집회 이후 상인들과 말싸움하는 과정에서 상인 1명을 폭행하여 팔이 빠지는 상해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죄를 강변하였으나, 이미 고소한 상인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여러 명의 목격자들이 있었고 진단서가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그의 증명사진을 보면 그야말로 생래적 범죄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실게임 사건’인 이 사건을 법원에서 이길 승산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아직도 판사를 설득하는 것보다 변호인을 설득하는 것이 더 힘들었노라며 내가 유죄의 심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안주꺼리 삼아 이야기하지만, 사실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의 무죄를 믿었었다. 그가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정황이 너무 어슬펐다고 해야 하나.
무죄의 요인을 보자면 그의 집요함, 재판을 하기 전에 목욕재개와 명상의 시간을 가진 다음에 법정에 들어온다는 판사, 거짓말 탐지기, 동영상에서 찾아낸 진범 육척 장신 모 인사, 이 4가지라고 할 수 있다. 목격자들은 증인으로 나와서 한결같이 피고인인 그의 폭행 사실을 진술하였으나, 피해자가 다른 장소에서 다친 것이 아닌가가 의심되는 동영상을 찾아냈고 그 동영상을 보면 우리만이 알 수 있는 모 인사가 피해자로 보이는 상인과 말싸움을 하는 장면, 그 상인이 모 인사의 멱살을 잡자 그 육척 장신의 모 인사가 뿌리치는 장면, 조금 뒤 그 상인이 돌아가면 어깨부위를 다쳤는지 만지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어둡고 순간적인 장면을 찍은 것이라, 그 동영상의 내용을 알아내려면 10여회 설명을 반복하여 들어가면서 봐야만 가능하다보니 판사를 100% 설득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관심법으로 진실을 추구하려는 심성을 가진 그 판사는 고소한 상인과 피고인 모두에게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도록 명하였다. 그러자 그 상인은 판사에게 횡설수설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고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거부하였고 그는 응하였는데 진실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스스로 무고를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무고 고소를 주장하면서 나를 한참 괴롭혔지만, 아마 무고로 고소까지는 하지 않은 것 같다.
그 뒤로도 그는 주로 수임료를 받지 못하는 사건을 많이 가져다 주었는데, 그 갚음을 하는 것인지 요즘에는 법률원 환경개선 작업에 많이 고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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