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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노동조합연합 건설
⦁ 시기 : 1989년 11월 8일
대구지역노동조합연합(대구노련)은 1989년 11월 8일에 출범했다. 이는 지역별노조협의회 중 비교적 늦게 결성된 것이다. 그러나 대구노련은 1988년 12월 7일, 21개 노조가 참여한 ‘대구경북노동조합연합 준비위원회(대경노련준비위원회, 위원장 양재복 대동공업노조 위원장)를 통해 연대투쟁과 조직활동 과정을 1년간 거쳐 결성돼 다소 지연되었을 뿐이다.
대구노련은 주요 기관과 회의로 △조합원들로 구성된 총회 △각 노동조합에서 선출된 대의원으로 구성된 대의원대회 △임원과 노동조합 대표자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의장과 부의장, 사무처장과 운영위원회로부터 선출된 각 국·실장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를 두었다. 대의원은 200명 미만 사업장 2명, 400명 미만 사업장 3명, 600명 미만 사업장 4명, 800명 미만 사업장 5명, 1,000명 미만 사업장 6명, 1,000명 이상은 7명을 선출했다. 집행부서는 사무처 산하에 조직국(조직국 산하에는 섬유노조회와 선봉대를 두었다), 교육선전국, 쟁의지도국, 문화체육국, 총무, 정책기획실, 편집실 등을 두었다. 또한 의장, 부의장, 사무처장, 편집실장, 편집차장으로 편집지도위원회를 두어 기관지 발행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으며, 운영위원회의 결의로 특별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게 했다.
대경노련 준비위원회에서부터 대구노련 결성 때까지 약 1년간의 재정 결산을 보면 수입총액이 300만 원, 지출총액이 350만 원에 불과해 월 집행액이 불과 30만 원 정도밖에 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사무처 상근자에 대한 인건비가 연간 15만 원에 불과하다는 것은 활동비조로 조금씩 나가다 그나마 중지되었던 적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구노련 결성 당시 경북대직원, 경북대병원, 건축설계, 남선물산, 남선물산 이현지부, 남선경금속, 남선경금속 논공지부, 동원산업, 대우자동차정비사업소, 대하염공, 대동공업, 매일신문, 열병합, 엘비아이, 오대금속, 태양어패럴, 파티마, 태화염공 등 18개 노조에 상신브레이크, 일광전구, 제일섬유노조 등이 바로 가입해 21개 노조로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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