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동지회와 암수바위굴 김미화(한내 회원)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공이리는 국립공원 월악산 자락에 위치한 산골마을이다. 동쪽은 망대봉 줄기를 경계로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접하고, 서쪽은 대미산을 넘어 수안보면 중산리, 남쪽은 수안보면 고운리와 사문리, 북쪽은 암수바위 부근에서 살미면 신당리와 접하고 있다. 공이리 마을 입구 계곡에는 집채만 한 바위 두 개가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데 언제부터인가 이 지역 사람들은 이 바위를 암수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숫바위 평평한 곳에는 정사각형 모양의 바둑판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고, 공동산수(空洞山水) 자웅암석(雌雄巖石) 암각자도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노닐었다는 전설처럼 계곡은 풍광이 수려하고 아름답다. 건너편으로 마을을 지켜주는 성황당이 수백 년 풍파를 겪어온 나무 아래 자리하고 있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을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공이리 마을입구 성황당> <암수바위굴 내부: 현재는 기도도량으로 사용> 마을 쪽으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월악산 천연동굴 기도도량 안내판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암수바위굴이 나오는데 석회암 동굴이다. 입구가 큰 입처럼 활짝 열려있어 암수바위굴로 들어서자 연일 계속되는 폭염경보가 무색하게 선득함이 느껴진다. 천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아주 큰 굴이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개인이 매입하여 불단 뒤로는 굴을 막아 그렇게 큰 굴이었는지를 직접 확인하지 못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암수바위굴과 깊은 연관을 갖은 이가 바로 노촌 이구영(1920~2006) 선생이다. 그는 고향 월악산을 중심으로 친구들 십여 명과 월악동지회를 조직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이구영은 최문용, 송원균, 김기한, 이의방, 이재승 등과 책을 돌려 읽으며 사회주의 사상학습을 하였으며, 징병이나 징용을 거부한 청년들을 숨겨주기도 하는 등 소규모이긴 하지만 항일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월악동지회가 이용하던 비밀 아지트가 바로 암수바위굴이며 신변에 위험이 닥쳤을 때는 이곳으로 숨어들어와 공동으로 생활하며 활동을 지속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길이 가파르고 넝쿨도 무성하여 찾기가 아주 힘들었다고 한다. 이구영은 해방 후에도 당 활동을 하면서 비밀회의나 비밀접선을 할 때 이곳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는 월악산의 빨치산들도 암수바위굴을 이용하거나 이 지역에서 활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활동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